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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회속으로] 반쪽엄마

김기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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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12.26 15:44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김 기 자 수필가
[충청신문 = 김기자 수필가] 텔레비전에서 두 번째 짝을 찾는 방송이 진행 중이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출연자들이 눈길을 끈다. 살짝 재미가 붙고 있다. 누가 누구랑 성사될까에 관심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배우자와 사별한 사람, 또는 이혼한 사람, 아니면 독신으로 살아온 사람들로 다양하다. 출연자들은 저마다 자기의 가치를 높이기에 열중이다. 두 번째 짝을 찾는데 있어서도 그만큼 자신 있어 보이는 모습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호기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변화된 세상이다. 예전 같으면 감히 공개적으로 두 번째 짝을 찾겠다며 나서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런 내 생각이 시대에 뒤쳐진 걸까. 요즘은 새로운 문화가 우리 곁에 생겨나서 의아스럽기까지 하지만 나름대로 정당한 이유가 있을 줄 안다.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한결 소통이 쉬워진 사회현상이 아닐 까 싶다.
 
한참 시청하는 가운데 딸아이가 내 앞을 지나고 있었다. 순간 야릇한 마음이 일었다. 농담처럼 불쑥 뱉고만 나의 이야기는 만약에 이 엄마가 저 상황이 된다면 어떤 생각이겠냐고 물어 보았다. 그 말은 만약에 우리부부도 헤어질 수 있다는 뜻이었다. 대뜸 딸아이 하는 말, "반쪽 엄마는 싫어요." 하고 내 뱉는 게 아닌가. 난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리고 덧 붙여서 하는 말, "저 사람들의 자식은 그런 부모를 이해하고 용납할지 몰라도 나는 못해요. 그리고 엄마 아빠 둘 다 안 보고 살 거 에요."
 
뒷말이 무섭게 가슴을 파고든다.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다. 어린 줄만 알았고 부모가 하는 선택에 대해서 이런 판단을 하리라곤 미처 짐작 못했다. 어느새 저렇게 커버린 걸까. 갑자기 딸이 어려워지고 있었다. 머릿속이 차갑도록 그 말에 골똘히 빠져 들어갔다. 딸의 의견이 무조건 옳다고는 판단하지 않지만 부모의 삶이 자식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짚어보는 기회가 되었다.
 
지금 주변에는 황혼이혼이란 말이 낯설지 않다. 한 평생 살았고 심지어 며느리, 사위를 맞고 나서도 부부가 헤어지는 경우를 본다. 오죽했으면 헤어질까마는 안타깝다. 나이가 들어서도 끝내 좁혀지지 않는 서로의 입장과 처지가 그런 결과를 불렀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식들의 정신적 부담이 클 것이다. 당사자들은 편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식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불편하고 걱정도 두 배로 늘어나지 않을까 싶다. 뜻하지 않게 정신적인 짐을 안겨주는 모양새다.
 
반쪽엄마라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자식의 입장에서는 한평생 부모가 사이좋게 사는 모습을 원할 것이다. 늘 그렇게 살아갈 수는 없지만 결혼이란 그만큼 합리적인 책임과 의무가 뒤따르는 것을 누군들 잊고 있을까. 불가피하게 헤어져야 하는 경우도 있을 줄 안다. 결과는 가족 모두가 또 다른 문제에 부딪히기 마련이고 상처를 치료하느라 애태우며 살게 될지 모른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상황인가.
 
지나온 날들을 돌아본다. 하마터면 나도 반쪽 엄마가 될 뻔 했었다. 혈기를 부리며 섣부르게 생각했던 순간이 없었다고는 말 못한다. 그러나 자식들의 눈망울을 바라볼 때 한 발 뒤로 물러나 판단을 거두고 또 거두어 왔다. 잘 견디어 냈다고 자부한다. 가족이 흩어지지 않고 함께 살아온 것만으로도 이제와 보니 참 감사한 일이다. 
 
숨을 편히 내 몬다. 반쪽엄마가 아니어서 다행스럽다. 가족의 구성이란 소중한 인연의 연속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였다. 내 딸이 날카롭게 던진 반쪽엄마라는 불편한 호칭은 내게서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지나온 세월의 무게가 지금의 나에게 부부사이에 있던 불협화음을 둥글둥글 강돌처럼 만들어 놓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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