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데스크 시각] 달님, 소원을 들어 주소서

안순택 논설 실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17.02.09 19:22
  • 기자명 By. 충청신문
[충청신문=안순택 논설 실장] 생솔가지를 모아 묶어 달집을 세웁니다. 불이 잘 붙도록 볏짚도 넣고 뻥하고 터지는 소리에 악귀가 달아나도록 대나무도 넣습니다. 적어도 옆 동네의 것보다는 높이 쌓아야 했습니다. 달집이 준비되면 동네 사람들은 저마다 소원을 적은 종이를 달집에 매달았지요.
 
어둠이 깔리고 둥두렷이 보름달이 떠오르면 달집에 불을 붙입니다. 불길이 보름달을 향해 오르고 풍물이 신명을 부릅니다. 하늘소리-꽹과리 징 같은 쇳소리, 땅소리-장고 북 같은 가죽소리에 사람이 더해져 하늘 땅 사람, 천지인(天地人)이 하나로 어우러집니다.
 
사람들은 보름달을 보며 손을 모아 마음에 담긴 소원을 빕니다. 달집 앞에서 저마다 소원을 비는 이웃들의 모습에서 달집 불빛에 얼굴이 붉게 물들듯이 한 해의 삶에 불길과도 같은 뜨거운 열정이 스며드는 듯합니다.
 
해와 달과 같은 천지신명 앞에 손을 모아 소원을 비는 일은 누가 시키거나 가르치지 않더라도 저절로 그렇게 하고 싶은 원초적인 신앙심입니다. 종교의 교리나 이론은 이 원초적인 순수한 신앙심에 견주면 공허하고 관념적이지요. 신학자나 종교학자의 신앙심이 그 순수성에서 보통 사람들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종교는 말이나 이론에 있지 않고 일상적인 행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옛 사람들은 설날부터 12일 동안은 12지(支)를 상징하는 동물의 날로 정해 날마다 풍속에 따랐습니다. 털 있는 동물의 날(有毛日), 털 없는 동물의 날(無毛日)로 나누는데, 정월 초하루가 유모일, 곧 털 있는 동물의 날이면 그 해에는 풍년이 들고 무모일이면 흉년이 든다고 했지요. 유모일 가운데서도 소 토끼 호랑이날이 그 중 좋다고 했습니다.
 
아마 털을 곡식의 성장과 비겼던듯한데, 올해 정월 초하루는 ‘을묘(乙卯)’, 즉 토끼날이었으니 올해는 풍년이 드는 좋은 해입니다.
 
설날 다음날, 그러니까 지난달 29일은 첫 용(龍)날이 됩니다. 혹시 이날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오셨습니까. 용날 새벽에 용이 내려와 알을 놓고 간다고 하고 누구보다도 먼저 물을 길어다 밥을 지으면 그해 농사가 대풍이 든다고 했지요. 이걸 ‘용알뜨기’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날은 첫 뱀(巳)날인데 머리를 빗거나 이발을 하면 뱀이 나온다네요.
 
정초 12지일을 지나며 시나브로 숙지던 명절분위기는 대보름을 앞두고 다시 살아납니다. 소보름, 작은 보름인 음력 정월 14일엔 다른 성(姓)씨 세 집 밥을 먹어야 좋다고 해서 이웃과 음식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복토(福土) 훔치기’도 이날의 풍속입니다. 저녁에 부잣집에 몰래 들어가 마당이나 뜰의 흙을 훔쳐와서 부뚜막에 발랐습니다. 그러면 부잣집 복이 전해져 잘 살게 된다고 여겼습니다.
 
새해 명절 분위기는 대보름날 절정을 이룹니다. 새벽에 일어나 귀밝이술을 마시고 부럼을 깨물며 오곡밥을 먹습니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달맞이와 달집태우기입니다. 
 
학계에선 다양한 방정식으로 대보름을 해석합니다. 특히 설과 대보름의 상호보완적 관계에 주목하지요. 설날에는 쌀로 만든 떡을 먹으며 논농사의 풍요를 기린다면, 대보름엔 오곡밥을 먹으며 잡곡을 생산하는 밭농사의 풍작을 염원했다는 게 그렇습니다. 또 설이 친족 위주의 혈연들이 모여 가족 단위의 차례를 지내는 수직적·폐쇄적 명절이라면, 대보름은 공동체 구성원들이 모두 어울리며 동제(洞祭)와 놀이를 통해 결속을 다진 수평적·개방적 집단 축제의 날이라는 해석이지요.
 
줄다리기, 고싸움, 차전놀이, 외바퀴 수레싸움이 대표적입니다.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소속감과 책임감을 갖게 하는 대동놀이입니다. 특히 줄다리기는 집단이 움직이기 때문에 혼자 힘으로는 이기는 게 불가능한 놀이입니다. 암줄과 수줄을 꼬아 마을 또는 남녀가 편을 갈라 당겼는데, 개인과 집단의 관계를 깨닫게 해주는 줄다리기 정신은 개인화·고립화로 치닫는 현대사회에서 새길 만한 교훈을 줍니다.
 
내일이 공동체의 의미를 되짚게 하는 정월 대보름입니다. 지긋지긋한 갈등은 달집태우기로 청산하고 새 시대의 줄다리기 정신을 찾았으면 하는 대보름날입니다.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