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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초대석] 올해의 수필가상 수상 반숙자 씨

“연소되지 못한 사랑이 남아 창작의 밀실에서 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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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04.19 17:13
  • 기자명 By. 김학모 기자
 

[충청신문=음성] 김학모 기자 = ‘음성문학의 어머니’로 불리는 수필가 반숙자 씨(78)가 한국수필가협회가 주는 2017년도 '올해의 수필가' 상을 수상했다. 수필가협회가 매년 뛰어난 문학세계를 구축한 수필가에게 주는 상이다. 반 선생은 2015년 문학비 ‘몸으로 우는 사과나무’ 제막과 함께 발간한 ‘거기 사람이 있었다’로 제34회 조연현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선생은 음성에서 태어나 초등교사로 활동했고 1981년 ‘한국수필'로 등단했다. 반 선생을 만났다.

“화단에 난초처럼 자라겠습니다”

반 선생은 음성군 음성읍 오성동 408번지에서 태어났다. 해군에 근무하셨던 아버지는 해방되면서 전역해 마을에서 구장(지금의 이장) 일을 보셨다. 3남6녀 중 차녀다.

“병약하고 소심한 아이였지요. 일곱 살에 초등학교에 입학을 시키고는 어머니가 반년을 포대기를 둘러서 업고 다녔어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어요. 대범하지는 못했지만 잔정이 많아 우리 반에 소아마비로 행동이 부자유한 친구와 오래 동안 우정을 나눴지요.” 

7살 때 맞은 6·25전쟁은 그녀의 기억 속에 지워지지 않는 사건이다. 음성 감우재전투는 국군과 인민군이 쫓고 쫓기는 가장 치열한 전투였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집 대문 앞, 마을 골목길에 군인들이 총에 맞아 죽은 시체들이 여기저기 너부러져 있었다. 동족간 비극의 상처는 어린 소녀의 눈에 생생히 남아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이다. 전근가신 3학년 때 담임선생님께 편지 써오기 과제가 주어졌다. 반 선생은 “편지에 ‘화단에 난초처럼 자라겠습니다’고 했습니다. 담임선생님은 내 편지글을 읽고 ‘너 이 다음에 시인 되겠다’며 극찬해 주셨지요. 그때 나는 시인이 뭔지도 모르면서 선생님의 말씀이 가슴에 깊이 남았습니다”고 했다. 

KBS방송국에서 현충일 기념 생방송 때 일이다. 조시 낭독을 맡은 반 선생을 아나운서가 ‘박숙자’로 소개해 조시 낭독을 거부했다. 결국 음악으로 대체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녀의 고집스럽고 정확한 성격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사범학교를 졸업한 반 선생은 첫 부임지로 음성소이초등학교로 발령받았다. 그녀 나이 19세 때다. 그녀는 이때 이광수의 ‘흙’을 읽고 감명받아 야학을 열고 문맹을 깨우치는데 힘을 쏟았다. 

한편 남편 이명용(84) 옹은 음성 평곡리에서 태어나 충북대 농학과를 졸업했다. 서울 변호사사무실에서 근무하면서 주말이면 고향에 내려와 사과나무를 심었다. 남편은 도시생활을 접고 귀향해 본격적인 과수농부가 된다. 이때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돼 결혼에 이른다. 슬하에 4남1녀를 두고 있다. 

반 선생은 과수원에서 생활하면서 교사의 길을 접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 상자에 1500원인 수익으로는 대학생 자녀를 교육하기엔 너무도 벅찬 현실. 소득이 더 나은 작목으로 바꿔야만 했다. 

어느 날 남편은 애지중지 자식같이 기른 450주 사과나무를 내 손으로 베어내어야 한다는 현실에 달빛아래 사과나무를 안고 흐느꼈다. 이를 소재로 수필 ‘몸으로 우는 사과나무’가 탄생했다.

반 선생은 1981년 ‘한국수필’에 ‘몸으로 우는 사과나무’로, 1986년 ‘현대문학’에 ‘손’으로 등단했다. 이후 서울에서 작품활동을 하다 1995년 음성으로 귀향해 음성문인협회를 인준 받는 것과 음성예총을 조직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음성문인협회 초대 지부장과 3대 음성예총 회장을 역임했다.

 

-올해의 수필상 수상 소감은? 

한국문협 수필분과 한국수필가협회에서 올해로 17회의 수필의 날을 맞이했습니다. 올해의 수필인상은 10회째인데 전국각지에서 모여온 많은 수필작가들 앞에서 수상하게 되어 더욱 뜻 깊었습니다. 40년 글쓰기에 대한 격려 같아서 기뻤고요, 특히 다른 데서 주는 상은 많이 받았지만 제 마음의 고향인 한국수필가협회서 처음 받는 상이라 의미 깊었습니다.

-문학의 스승은 누구인지요? 

십대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몰입하게 하는 도스토옙스키는 문학의 모태였습니다. 올곧게 문학을 하신 박경리 선생님을 정신적인 스승으로 삼고 있어요. 그분의 문학에 대한 집념과 세상만물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깊은 연민에 공감하면서요. 수필을 쓰면서는 이성과 감성이 조화를 이루는 정혜옥 선생님의 수필을 스승으로 삼고 있습니다.

-수필집 “거기 사람이 있었네”는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요?  

제 수필은 사람을 빼면 성립이 안 됩니다. 자연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거기 사람이 없으면 그림일 뿐이지요. 지난 번 세월호의 참사를 겪으며 사람에 대한 경각심이 더 절실해졌어요. 이 글은 사람이 있어서 1만 4000명을 구한 ‘빅토리호‘ 선장과 사람이 있음에도 자기 목숨만 생각하고 도망친 세월호 선장을 모태로 쓴 글입니다.

-창작의 원동력이 되는 사랑이야기는? 

지독한 사랑을 했지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데 후회 없을 사랑을 하고 떠났지요. 그 후로는 사랑이 아니고 연민으로 사는 생애지만 연소되지 못한 그것이 남아 창작의 밀실에서 살지요.

반 선생은 지금까지 ‘몸으로 우는 사과나무’ ‘그대 피어나라 하시기에’ ‘가슴으로 오는 소리’ ‘때때로 길은 아름답고’ ‘천년숲’ 등 6권의 수필집과 ‘사과나무’ ‘이쁘지도 않은 것이’ 등 2권의 선문집 등을 발간하는 등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

-앞으로 해야 할 일과 소망은?  

해야 할 일은 고향의 문단을 단단하게 할 후배를 기르는 일입니다. 두 곳의 수필교실 수업에 충실한 것이고요, 소망은 욕심으로 그칠 수도 있으나 수필집 한 권을 더 내고 싶어요. 아울러 지금 청주교구 주보에 한 달에 두 편씩 글을 쓰는데 모아서 묵상집을 엮고 싶어요.

-후학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치열해 지기를 주문합니다. 등단을 하고나면 몇 년 안에 수필집을 낸다는 목표를 정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글을 써야 문인입니다. 혼자는 외로우니 동아리나 문협에서 발표할 장을 만들어 함께 활동하면 좋겠습니다. 좋은 글은 어디에서 쓰던 빛이 나게 마련입니다.

반 선생의 문하생 양성은 18년째 계속되고 있다. 1997년부터 음성예총 문예창작교실을 열고 제자 양성에 나섰다. 수강생중 반 이상이 외지인이다. 서울, 청주, 충주, 제천, 평택 등 전국에서 찾아온다. 

어떤 이는 반 선생 곁에 머물고 싶다며 음성으로 이주하기도 했다. 이뿐 아니다. 2년째 매주 금요일 음성읍사무소 주민자치센터에서 ‘마음을 여는 수필교실’과 5년째 매주 화요일 대소면사무소 주민자치센터에서 수필창작강의를 펼치고 있다.

강희진(문예한국), 전현주(월간문학) 등 모두 51명의 제자들을 등단작가로 길러 내는 등 활발한 문학활동을 보이고 있다.

-최근 근황은 어떠한가요?  

축하 인사 받기에 바빴습니다. 이번 수상에 현수막을 걸어 축하해 주신 음성의 문학단체와 예술단체, 음성읍주민자치센터와 지역사회 여러분께 이 지면을 통해 감사드립니다. 일주일에 두 번 강의하고 농막으로 은둔해서 두더지처럼 일하고 하루하루를 선물로 감사하며 지냅니다. 큰 욕심은 없고 이만한 건강과 할 일이 있음에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반 선생은 “수필은 나의 마음을 넉넉하게 합니다. 늘 행복합니다”라며 주름진 얼굴에 웃음 가득 피우며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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