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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아침에] 아궁이 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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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04.23 15:57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겸임교수

현대인들은 온몸이 찌뿌듯하고 나른할 때는 수시로 지친 몸을 이끌고 ‘사우나’를 찾곤 한다. 하지만 절절 끓는 온돌방 아랫목에서 한숨 푹 자고 일어나는 것만큼 좋은 특효약도 없을 것 같다. 요즘 한옥마을이나 고택체험이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닌가 싶다.

추운 겨울. 따끈따끈한 방바닥을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진다. 예로부터 우리민족은 온돌문화에 익숙해 왔다. 이 온돌이 세계화 바람을 타고 있다.

온돌은 한민족이 창조한 난방문화다. 몇 해 전 전주대학교에서 한국, 중국, 일본의 지식층이 모여 우리네 온돌문화와 온돌기술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온돌은 불이 타며 수직으로 올라가는 성질 때문에 불 주변보다 위가 더 따뜻하다는 성질을 이용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뜨거운 불 위에 직접 앉아 있을 수 없으니 열기가 닿는 범위를 넓혀 온도를 적당하게 식히고자 노력한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놀랍다.

고래를 만들어 열을 담은 연기가 방바닥 아래 골고루 통하도록 만들고, 구들장을 깔아 열전도의 범위를 넓혔다. 뿐만 아니라 아래서 위로 올라가는 열의 성질 때문에 방안은 아래서 위까지 골고루 따뜻해지고, 먼지도 대기의 이동에 따라 움직여 덜 쌓이게 된다.

이런 전통식 온돌의 효능을 입증하고, 이를 각 나라와 지역에 맞게 효과적으로 적용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중국의 한 연구자는 온돌의 이점을 농업 부산물 처리, 환경오염 방지, 건강 증진으로 분석하며 “현대적 방식으로 발전한 한국의 온돌 기술을 배우고 싶다”고도 했다.

한편 난방 방식이 전혀 다른 일본에서도 온돌의 이미지가 좋다. “일본에서는 코타츠나 다다미를 이용해 추위를 피하는 난방을 사용했지만 한국의 온돌은 방 전체가 따뜻해서 처음엔 너무 더웠다”고 하며, “지금 일본에서 온돌방식을 사용하는 곳은 공공기관인데, 자재나 설치 비용이 낮아진다면 일반 가정에도 적용하면 좋겠다”고 했다.

우리 민족이 개발한 전통방식의 온돌시스템이 우수하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입증되었다. 그렇지만 가옥 건축방식이 달라짐에 따라 불을 직접 때기가 어려운 불편함 때문에 현대인들이 사용을 하지 않아 사라진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아버지의 7주기 기일을 맞아 가족들이 어머니가 계시는 시골집으로 모였다. 대가족이 작은 온돌방에 옹기종기 모이니 집안이 떠들썩하다. 조카가 결혼을 한다고 하고, 다른 조카는 전국체전 태권도 예선전을 갖는다고 한다.공무원인 막내 동생은 승진을 했다고 좋아라 한다. 화기애애한 가족들의 만남에서 뿌듯함을 느낀다.

잠시 유년시절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친다. 학교에 갔다가 귀가하는 해 질 무렵이면 집집마다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풍경을 목도하곤 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훈훈해진다. 저녁 준비로 분주한 어머니의 가마솥 누룽지를 떠올리면 절로 신이 난다. 또래들과 어울려 해질녘까지 냇가에서 썰매를 타다 양말을 태우기도 했다. 눈싸움까지 벌이다 집에 들어서면 어머니는 혼을 내시면서도 아들 걱정하는 마음에 꽁꽁 언 내 손을 아랫목 이불 속으로 넣어주시던 기억이 새롭다.

마을 사랑방으로 나들이 갔다가 돌아오시는 아버지, 밖에서 뛰놀다 오는 우리 형제들을 위해 아랫목 이불 속에 고이 간직한 밥사발, 온가족이 함께 모여 숟가락을 부딪치며 저녁을 먹던 모습 또한 아랫목이 없으면 연출되지 못할 풍경이 아니던가. 지금은 가족들이 모여 식사 한번 하는 것이 행사로 여겨질 정도이니 그때를 떠올리면 상전벽해라는 말이 실감 나게 다가온다.

아랫목은 아버지나 귀한 손님이 오시면 기꺼이 내어드리는 우리의 소중한 온돌문화유산이 아닌가. 이제는 아랫목 문화를 찾아볼 수 없어 안타깝다. 실종된 아랫목의 위상과 함께 우리 아버지들의 권위도 덩달아 떨어지고 말았나 하는 아쉬운 생각도 해보게 된다. 아궁이 불쏘시개로 따스해진 아랫목에, 잘 쑨 메주로 만든 청국장과 뒷마당 장독에서 꺼내온 김장김치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진수성찬이었다. 어머니께서 사발에 소복이 담아주신 밥은 게 눈 감추듯 없어진다.

저녁 밥상을 물리기가 바쁘게 잘 익은 군고구마와 꽁꽁 얼었지만 달콤한 감을 나누며 가족들이 희미한 등잔불 밑에 모여 앉아 정을 나누던 겨울의 낭만이 그립다. 밤이 되면 한 이불을 덮은 형제들이 발장난을 치고, 커서도 우애 있게 지내라고 옛날이야기를 되풀이하여 들려주시던 아버지의 따스함이 아랫목의 온기처럼 묻어난다.

지금은 시골이라도 아궁이에 불을 때는 집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주택이 현대화되었다. 시골집 부모님도 아궁이를 선호했다. 보일러를 놓아 드린다고 해도 그때마다 극구 사양하면서 하시는 말씀이 “늙은이에겐 뭐니 뭐니 해도 아궁이에 불 때는 아랫목이 최고”라고 하셨다. 하는 수 없이 헛물 끓이는 솥은 불을 때는 아궁이로 만들어 놓았다.

굴뚝에선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아궁이에서는 장작이 빨갛게 불타오른다. 온 마을을 하얀 눈이 살포시 덮으면 시골의 겨울밤은 더욱 깊어갔다. 긴긴 겨울밤, 동면하는 산짐승처럼 타닥거리는 장작불 소리를 들으며 포근한 잠을 청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이 그립다.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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