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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문 밖 식구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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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04.24 16:54
  • 기자명 By. 충청신문
 
[충청신문=이혜숙 수필가] 며칠 집을 비웠더니 베란다가 너저분하다. 밥그릇은 비어있고 군식구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자장면 소스에 떡을 잘라 비벼서 밥그릇을 채워 놓았다. 문소리가 나면 달려오던 발걸음이 보이지 않는다. 삐쳤나? 
 
장거리 여행에 피곤해서 따듯한 방바닥에 누웠는데 가냘프게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창을 통해 밖을 보니 밥그릇 앞에서 밥은 먹지 않고 정원 쪽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부르고 있다. 형인지 동생인지 모르지만 밥이 있다고 어서 오라고 하는 것 같다.
 
작년 봄에 어미 고양이와 새끼고양이 네 마리가 우리 집을 찾았다. 처음엔 쓰레기를 뒤지고 있었다. 가까이 가면 도망가기에 그냥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는데 경계심이 풀렸는지 살금살금 베란다에 와서 놀더니 어느새 제집인 양 장난도 치고 놀더니 잠까지 자는 게 아닌가. 
 
사료를 사다 줄까 하다가 요즘 쌀값이 떨어져서 농부의 한숨소리가 높아졌다는 소식을 접하고 쌀 소비도 할 겸 밥을 해서 주었다. 생선을 구우면 살을 남겼고 닭고기 요리라도 할라치면 살을 발라 주기도 했다.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 베란다에서 냄새를 맡았는지 야옹거리며 나눠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야옹이들도 우리가 나누어 줄 것을 아는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어딘가에서 사고를 당했는지 새끼 두 마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다섯 식구 중 세 식구만 남아서 살을 비비며 뭉쳐서 자고 있다. 자식을 품고 자는 어미를 보니 자식 잃은 아픔이 전해지는 것 같다. 자식을 잃고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 그 이후 늘 물과 밥을 채워두었다.
 
겨울이 되자 추운지 웅크린 모습이 안타까워 박스에 옷을 깔고 집을 만들어주었다. 작은 박스로 만들어주었는데 공간이 좁아선 지 서로 들어가려고 밀치기에 큰 박스를 가져다가 더 큰집을 만들어 주었다. 넓게 쓰라고 두 개를 만들었는데도 한 곳에 들어가 셋이 꼭 붙어 자고 있다. 가족의 사랑이 느껴지며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사진을 찍어 남편과 딸에게 보내주기도 했다. 집 밖 식구가 늘어난 것이다.
 
하루는 밥을 주고 창을 통해 녀석들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미는 좀 떨어진 곳에 앉아 있고 새끼들은 정신없이 밥을 먹고 있다. 어미의 배로 보아서는 아마도 임신한 것 같다. 늘어진 배는 출산일이 멀지 않은 것 같다. 임산부라면 어미도 많이 배가 고플 텐 데도 새끼들이 다 먹고 얼마 남지 않은 빈 그릇을 핥고 있다. 
 
일 년 정도 밥을 주었는데도 곁을 주지 않는 녀석들이 얄밉다가도 서로를 챙기는 그들의 행동을 보면 미워할 수가 없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다. 그만큼 모든 면에서 우수하다는 뜻이다. 인간의 모성애를 제일로 치는데 과연 그럴까. 
 
얼마 전 아이가 잠투정을 한다는 이유로 엄마와 외할머니가 아기를 때려 숨지게 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열 달을 뱃속에 넣고 길렀으면서 어찌 그럴 수 있을까. 개탄스러웠다. 요즘은 자주 자식을 학대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럴 때마다 온몸이 소름이 끼친다. 우리 집에 오는 고양이도 자식을 위하는 데 인간이 어떻게 저런 행동을 할까 싶다. 요즘 나는 짐승만도 못하다는 말을 자주 하게 된다.
 
어미가 새끼를 낳았는지 보이지 않고 새끼 두 마리만 들락거린다. 이 추운데 또 어디서 고생을 할까. 밥은 먹고 있을까. 걱정이 되지만 어디에 있는 줄 모르니 속수무책이다. 
 
야생 고양이들이 참 많아졌다. 밤에 차를 몰다 보면 불빛이 놀라 뛰어가는 고양이들을 자주 본다. 
 
특히 아침에 길을 나서면 차에 치여 죽은 고양이나 개들의 사체가 많다. 정부에서는 새끼를 낳지 못하게 중성수술을 한다지만 그것은 도시에 있는 고양이들일 게다. 시골에 널려 있는 고양이를 누가 잡아 중성수술을 해 준단 말인가. 신중하게 생각해 볼 문제다. 시골에서는 개체 수가 불어나도 산이나 들에서 살면 보이지 않는다. 
 
어미가 또 다른 아기고양이들을 데리고 올 거란 기대를 해 본다. 오랫동안 밥을 줘도 곁을 주지 않아 얄미울 때도 있지만 그것은 누군가에게 입은 상처로 경계하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언제 올지 모르는 멀리 떠난 자식을 기다리는 엄마의 마음으로 어미 고양이가 배곯지 않고 건강하게 돌아오길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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