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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카네이션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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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06.19 16:14
  • 기자명 By. 충청신문
 
[충청신문=이혜숙 수필가] 환자복을 입은 가슴에 빨간 카네이션이 달렸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진다. 잠시나마 그분들의 자식이 되어본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을 시작으로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까지 가정의 소중함을 느끼고 서로에게 사랑을 주라고 만들었나 보다.
 
어버이날이 훨씬 지났다. 봉사하는 날이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날은 자식들과 함께 했으리라 생각하고 늦었지만 카네이션과 과일을 준비했다. 일일이 손을 잡아 자리에 앉혀드리고 가슴에 꽃을 달아드렸다. 처음에는 어정쩡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더니 금세 환한 얼굴로 변하며 뭘 이런 걸 다 해 주느냐고 하면서도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나는 양가 부모님이 먼 나라로 가신지 꽤 되었다. 어버이날만 되면 용돈 드리고 꽃 사 들고 찾아갈 부모님이 안 계시다는 것이 허전했다. 계실 때 몰랐던 사실이 안 계시니까 더 아쉽고 그립다. 그래서 옛 어른들 말씀이 살아 실제 잘하라고 했나 보다. 자식들은 언제나 뒤늦은 후회를 하는 것 같다.
 
딸이 어버이날이라고 와서 용돈을 주고 갔다.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자식에게 용돈을 받고 보니 부끄러웠다. 내가 부모님께 해 드린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나만 자식을 효도를 받는 것이 왠지 켕겼다. 카네이션 한 화분 사서 부모님 산소에 갔다. 부모님 생전에 하던 응석 어린 말 몇 마디 던져두고 돌아왔다. 
 
이번 5월의 봉사는 그래서 나에게 색다른 감정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지난해는 멋도 모르고 봉사랍시고 따라다닌 것 같은데 시간이 흐르면서 좀 더 세심하게 마음이 간다. 내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봉사하길 잘했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즐겁게 다닌다.
공연이 시작되고 흥을 돋우려고 한 어르신의 손을 잡아 흔들었다. 뒤에 계신 어르신이 “흥! 나는 사람이 아니야? 왜 나는 손 안 잡아줘.” 하신다. 분명 좀 전에 잡아 주었는데 그새 잊으신 것이다. 치매를 앓고 계신 분이기에 좀 전의 일도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을 보면서 어쩌면 잊고 사는 게 좋지 않을까 한다. 아픈 몸이지만 건강한 정신으로 요양원에 있다면 그 상심이 더 크지 않았을까.
 
자식들 키우느라고, 힘겹게 살아온 세월이지만, 이제는 몸과 마음에 병이 들어 자식들의 효도를 받지 못하고 시설에서 간병인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것을 맨 정신으로 견딘다면 너무도 큰 서글픔이 밀려와 하루의 삶도 힘들었을 것이다.
 
봉사회원들은 하나같이 자기 부모님을 대하는 듯 곱살스럽다. 육십을 넘어 곧 칠십을 바라보는 분들이지만 어른들 앞에 나이 들어감도 잠시 벗어놓고 어린애처럼 어른들께 재롱을 부린다. 얼마 후의 우리 모습이라고 생각하기에 열정을 다한다.
 
도회지에서 살 때는 어른들을 보살피고 살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한 달에 한 번,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식사를 함께하면 적지만 용돈도 주고 좋은 말도 해 주며 미래의 꿈나무들을 위해 작은 힘을 보탰다. 그 애들에게 공부를 잘하라고 말해 본 적은 없다. 오직 착하게 살고 사고만 치지 말라고 했다. 
 
지금은 어디서 다들 잘 살고 있을 것이다. 한 아이만 아직까지 연락하고 가끔 집에도 온다. 부모의 정이 그리웠는지 아들을 자처한다. 그런 모습이 안타까워 좀 더 많은 사랑으로 품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지만 봉사회장의 권유를 받고 망설임 없이 모자라는 재주를 선보이게 된 것도 어쩌면 아이들을 보살피던 그 마음이 있어서였던 것이 아닐까 한다. 
 
모자라는 재주로 어른들을 기쁘게 하는 이 순간은 부모님께 하지 못했던 효도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한 시간이 아쉽다는 분도 계시고 매일 오라는 분도 계신다. 여유가 된다면 한 달에 두 번씩 가고 싶다. 나야 그럴 수 있지만 다른 분들은 아직도 현직에서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이기에 시간 내기가 쉽지가 않다.
 
얼마나 더 봉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여건이 허락하는 한 어른들을 내 부모님처럼 생각하고 다닐 예정이다. 요즘 건강이 영 좋지 않다. 제발 건강하게 오래도록 봉사할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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