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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약비

한기연 시인. 평생교육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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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06.26 17:55
  • 기자명 By. 충청신문
 
[충청신문=한기연 시인. 평생교육강사] 어제는 오후가 되자 날씨가 흐려지고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비 내리기 전 분위기로는 많은 비를 내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막상 내린 비는 땅에 닿기도 전에 증발되어 버린 마른 비였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다. 일요일인 오늘도 아침부터 바람의 기운은 심상치 않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부을 태세이다. 오후 5시가 다 되어 반갑게도 장대비가 쏟아졌다. 올해 들어 처음 본 굵고 세찬 비였지만 아쉽게도 한 시간 남짓 쏟아지다 그쳐버렸다.
 
요즘 비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고 온 국민의 염원으로 전국 곳곳에서 기우제를 지내고 있을 것이다. 옛날에는 가뭄을 한발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중국 남방에서 사는 발이라는 귀신이 나오면 가문이 들어서 한발이라고 했고 이 귀신을 달래서 보내는 의식이 바로 ‘기우제’였다고 한다. 남편이 일구는 작은 텃밭에서 매년 유기농 야채를 마음껏 먹었다. 밭에 푸성귀가 어떻게 자라는 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지만 올해는 유난히 물통을 나르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면서 물을 아무리 줘도 비가 오는 것만큼 못하다며 푸념하였다. 농사를 짓는 분이 비에는 땅에 필요한 성분이 있는데 물에는 없어서 필요한 영양소를 섞어서 주어야 하고 많이 주어야 흙으로 스며든다는 얘기를 해 주셨다. 가끔 텃밭에 가보면 남편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작년에는 씨를 뿌리면 뿌리는 대로 잘 크고 씨가 퍼져서 심지 않아도 푸성귀를 키워내더니 상추만 겨우 버티고 있다. 
 
가뭄이니 기우제니 하는 것은 농사를 본업으로 하는 이들에게만 해당하는 일인 줄 알고 살았다. 가뭄이 심하면 농작물 농사가 어려워 정부의 관심도 농촌지원책에 있었다. 지난 22일 정부는 가뭄에 대한 대응상황과 추가 대책을 집중 점검하였다. 올해 누적 강수량은 186mm로 평년의 50%에 불과하며 가뭄이 계속될 경우 7월부터 일부지역은 생활용수 공급 등의 제한급수를 실시한다고 한다. 이제 가뭄은 농촌만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민의 문제로 확대되어 마실 물조차 말라가는 서민의 삶을 위협하는 자연재해이다. 
 
10여 년 전부터 세계에서는 물 부족으로 고생하는 나라가 생겨나고 물 전쟁이 시작됐다. 우리나라도 이제 안심할 때가 아니다.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의 일화가 현실이 되어 생수를 팔고 사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언제 어느 곳에 가든 정수기가 있어서 공짜로 물을 마음껏 마실 수 있고, 행사장에는 늘 생수병이 준비되어 있다. 생수병에 물을 한 모금만 마시고도 버리기 일쑤이다. 2년 전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갔다 온 후 우리나라의 넘치는 물 인심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는 식당에서도 돈을 주고 물을 사 먹어야 했다. 물 값이 비싸서인지 한 모금도 버리기가 아까웠다. 여행을 하면서 집에 돌아가면 물을 아껴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습관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음성군도 얼마 전 기우제를 지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음성에서 금왕으로 가는 길목인 사정리 저수지길을 가게 된다. 물이 차 있던 곳과의 경계가 분명히 드러날 정도로 말라 있다. 운전하면서 라디오를 즐겨 듣는데 가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비 온다는 기상예보라도 있는 날에는 지역 곳곳의 청취자를 연결해 비 오는 상황을 생생하게 전하기도 한다. 비에 대한 수십 가지의 우리말을 알려 주며 비를 향한 염원을 들려주기도 한다. 라디오나 TV를 통한 경각심이 ‘물’에 대한 생각을 바꿔 주었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가뭄을 잘 이겨 낼 수 있도록 비싼 물값 치른다는 심정으로 물을 아껴써야 할 때인 것 같다. 
 
비를 표현하는 우리말 중에서 어느 비라도 좋으니 하루에 한 번씩 내렸으면 좋겠다. 그 모든 것이 가뭄에 단비처럼 요긴한 때에 내리는 약비가 될 것이라 믿으며 그 어느 때보다 빗소리의 선율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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