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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여름은 늦고 가을은 이른

강희진 음성예총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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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07.04 19:03
  • 기자명 By. 충청신문
 
[충청신문=강희진 음성예총 부회장] 가끔은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픈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요 며칠 내 기분이 그랬다. 그래서 여행을 다녀왔다. 남도의 7월은 온통 푸른빛이었다. 가뭄에도 잘 자란 벼들은 진초록 빛을 띠며 흙냄새를 풍기고 있고, 담쟁이 넝쿨은 돌담을 온통 푸른 벽으로 만들고 있었다. 여기저기 밭에서 감자 수확이 한창이었다. 
 
며칠 전 아시는 분에게 감자를 부탁했는데 올해는 가뭄으로 감자알이 굵지 않다고 한다. 말라가는 감자 밭이 안타까워 아침저녁으로 물을 줬지만 자연적으로 내리는 비로 키우는 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했다. 전국적으로 가뭄이 심했으니 그분들도 감자 수확하는 재미가 덜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어쩌면 요 며칠 우울한 내 탓 일 수도 있겠다. 뙤약볕을 다 받고 가뭄 속에서도 품속에 알을 품고 키운 감자밭을 그분들은 감사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을지 모르는데 내 기분 탓에 재미 운운했다.
 
앉았다 일어서면 무릎에 통증이 심해 병원에 갔더니 정밀 검사를 받아봐야 한단다. MRI를 찍어야 한다고 했는데 폐쇄공포증 때문에 못 찍는다 했더니 의사선생님이 한참 쳐다보더니 2주분 약을 주었다. 그러면서 약을 먹은 후에 그래도 차도가 없으면 MRI를 찍을 각오하고 다시 내원하라고 했다. 2주분 약을 다 먹어 가는데 여전히 차도가 없어 우울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벌써 다리가 아파 병원에 다닐 나이는 아닌데 그동안 내 몸 돌보지 않고 뭘 했나 싶은 생각이 들어 쓸쓸하기도 하다.
 
오래전에 문학회 지인들과 여행을 갔었다. 휴게소 화장실에 갔다가 화장실이 비었는데도 안 들어가는 나를 보고 왜 들어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많은 사람들이 앉는 좌변기는 싫어서 화변기로 가려고 한다고 했다. 내 말은 들은 그분이 아직 젊어서 뭘 모른다며 자기는 무릎 수술을 해서 좌변기 아니면 앉았다가 일어날 수가 없다면서 나이 먹어보라 하셨다. 또 다른 분은 자기는 무릎이 안 좋아 뛰는 것은 물론 걷는 것도 힘들 때 우울증이 와서 극복하느라고 힘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내가 그분들을 100% 공감한다. 역지사지라고 했던가 이제야 그분들과의 대화가 퍼뜩 떠오르면서 그 기분을 알겠다. 젊음은 영원하지 않고 인간의 가장 큰 선물인 걷는다는 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느끼는 이 허무함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가 있을까?
 
이즈음 이채 시인의 6월에 꿈꾸는 사랑이라는 시가 내 마음을 울렸다.
 
"사는 일이 너무 바빠/ 봄이 간 후에야 봄이 온 줄 알았네/ 청춘도 이와 같아/ 꽃만 꽃이 아니고/ 나 또한 꽃이었음을/ 젊음이 지난 후에야 젊음인 줄 알았네/ 인생이 길다 한들/ 천년만년 살 것이며/ 인생이 짧다 한들/ 가는 세월 어찌 막으리/ 봄은 늦고 여름은 이른/ 6월 같은 사람들아/ 피고 지는 이치가/ 어디 꽃뿐이라 할까."
 
그런데 지금 나는 봄은 이미 가고 여름은 늦고 가을은 이른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는 일이 바빠 미쳐 내 몸 망가진 것도 모르고 살았다. 청춘은 영원할 줄 알았으며 내게만은 세월이 친절할 줄 알고 앞만 보고 달려만 갔는데 덜컥 한 군데 이상이 생기니 또 사는 게 너무 허무하다고 아우성이다. 피고 지는 꽃처럼 언젠가는 질 것이라는 불변의 법칙 앞에 힘없이 무너진다.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이 앞으로는 점점 몸 아플 일이 많을 것인데 벌써 상심하고 세상 다 사는 사람처럼 그러면 어찌하냐고 한다. 맞다 그럴 것이다. 그런데 통과의례라 생각한다. “이제 당신은 뛰지도 그리고 산에 오르지도 못하는 몸이다”라는 세월의 선고 앞에 어찌 태연할 수 만 있겠는가? 점점 노쇠해져만 갈 것 이라는 인정을 하려면 이 정도의 통과의례는 치러야 하지 않겠는가? 어찌 되었든 세월 앞에 너무나 힘없이 무너지는 나약함이 슬프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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