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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포럼] 피아니스트 백건우, 거장의 끝없는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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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07.06 17:06
  • 기자명 By. 충청신문
▲ 박상희 피아니스트

피아니스트 백건우를 처음 본 것은 원대한 피아니스트의 꿈을 품고 있었던 아주 어렸을 적, 한 작곡가의 작품 전곡 연주를 했던 때였던 것 같다. 너무 오래 전이라 스크리아빈이었는지 무소르그스키였는지 확실치 않지만, 한 작곡가의 작품을 집요하게 연주해내는 모습이 매우 낯설었다. 보통의 연주 프로그램과도 확연히 달랐던, 그리고 통상 생각하는 연주 시간보다도 한 시간여 더 길게 연주했던 그의 연주회에서 어린 마음에 연주자의 숭고함 마저 느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의 연주는 감히 무어라 덧붙일 말이 없다. 연주 그 자체로 믿음을 주는 피아니스트이다. 음 하나하나로 시를 읊조리는 듯한 소리를 선사하다가도 가슴이 통렬히 깨지는 듯한 비통함을 전하기도 하고, 마음 깊은 곳까지 시원하게 뚫리는 명쾌함까지 전달해주는 그야말로 피아노를 빛나게 하는 연주자가 아닌가싶다. 피아니스트 자아가 돋보이는 피아니스트들도 많은데, 유독 그의 연주에서는 피아노와 작품이 빛난다. 그리고 그의 모습은 조명에 반사되어 길게 뻗어진 그림자처럼 함께 서있다. 피아노가 그인지, 그가 피아노인지 모를 정도로 흡입력이다.

그는 10여년 만에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의 여정을 다시 떠나고 있다. 지난번에는 7일 만에 모든 곡을 서울에서만 연주한 것에 비해, 이번에는 지난 3월부터 7개월에 걸쳐 전국을 돌며 30여 개 무대에서 32곡 전 작품을 선보인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는 성경의 신약성서에 비유할 정도로 건반악기 작품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베토벤의 인생 전체가 담겨있는 이 작품들은 피아노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작품들을 연주해낸다는 것은 어쩌면 연주자에게 거대한 소설을 완성하는 것과도 같을 것이다.

필자는 대전에서의 연주를 다녀왔다. 이번 독주회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작품 중 4번 내림 마장조 Op.7, 24번 올림 바장조 Op.78, 13번 내림 마장조 Op.27 No.1, 26번 내림 마장조 Op.81a로 진행되었다. 기존에 프로그램 책자에 적힌 내용과는 완전히 달랐다. 아마도 연주전에 무언가 다른 그림이 번뜩여 그렇게 구성을 하였는지도 모르겠다.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등장한 그는 서예가가 첫 획을 그을 붓을 화선지 위에 내려놓듯 고심하면서 그러나 거침없이 연주를 시작하였다. 너무나 담담하고 시적인 선율을 지나면 유쾌한 부분에 이르러서는 역동감이 가득 찼다. 다시금 섬세함과 유려함을 넘나드는 소나타의 향연이 많은 여운을 남겼다.

피아노의 구도자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움직임 하나하나, 호흡 하나하나가 그의 음악 인생을 얘기하는 듯 했다.악보를 보기위해 주머니에서 꺼내든 안경도, 악장 사이의 침묵의 시간도, 전반부와 후반부에서 이어졌던 두 작품 간의 연결 구도도, 모든 것에서 그가 음악과 함께 걸어왔던 시간들이 묻어나는 듯 했다. 마지막 순서에 연주했던 베토벤의 ‘고별’ 소나타의 여운은 압권이었다. 마치 긴 영화의 화려한 피날레를 보는 듯 가슴 속까지 환희에 찬 기쁨 같은 것이 느껴졌다. 마지막 음까지 완고하게 연주를 해내고는 가쁜 숨과 떨리는 손을 보였는데, 일흔이 넘은 피아니스트의 열의와 에너지에 감히 감사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는 이미 2007년 데카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녹음한 바 있다. 그 외에도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전곡 녹음을 하였는데 이는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베토벤 작품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인 바렌보임은 세 차례나 녹음을 하였다고 하고, 빌헬름 박하우스도 두 차례나 전곡 녹음을 했다고 한다. 안드라스 쉬프, 글렌 굴드, 에밀 길레스, 리차드 구드 등 많은 훌륭한 음반들이 소개되어 있고, 생전에 베토벤 전곡 연주회를 40여 회나 열었다는 타티아나 니콜라예바 음반도 들어보길 권한다.

끊임없는 여정을 펼쳐 보이는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건재함과 노력, 그리고 열정이 가슴 뭉클하게 다가온다. 연주자로서 나태함에 빠질법한 나에게 하늘에서 천둥이 치는 것처럼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받은 듯하다. 음악 안에서의 거듭되는 공부의 재미를 다시금 일깨워준 오늘의 연주를 깊이 기억하고 싶다.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여정이 끝없이 지속되기를 바래본다. 오래오래 좋은 음악으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주기를.

박상희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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