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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아침에] 곡선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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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07.09 15:54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겸임교수

땀을 훔치며 올라간 산 정상에 서니 시야가 트인다.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는 온통 노을을 지고 검은 실루엣을 이루며 서 있다. 붉은 태양이 굽이진 산의 능선을 따라 하늘을 붉은 물감으로 물들이고 있다. 일몰의 아름다움이 석양에 빛난다.

산자락을 빽빽하게 채운 직각의 아파트들이 황혼의 손길을 가로막아 타다 남은 재처럼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우리 주위는 아파트처럼 하나같이 딱딱한 직선의 건축물들이다. 옹기종기 모여 있던 주택들은 하루가 멀다않고 어느 샌가 직선형태의 복합주택으로 변했다. 구불구불한 길들도 직선으로 바뀌었다. 빠르고 편리하게 살아가려는 욕망이 둥근 자연을 바꾸어 버렸다.

우리 선조들은 집을 지을 때도 마루에서 산등성이의 곡선을 바라볼 수 있게 담장을 만들었다. 산등성이의 부드러운 곡선들은 자연으로 이어주는 마음의 탯줄과도 같다. 이상세계로의 길목인 듯 느껴지기도 한다.

하늘 속으로 뻗어나간 산등성이의 곡선들을 바라보면 어디선가 은은히 종소리가 울려 퍼질 것 같다. 산등성이의 곡선들은 하늘 강물이 되어 영원으로 흘러가고 우리의 마음에 닿아있다. 스페인의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는 ‘직선은 인간이 만들었고, 곡선은 자연이 만들었다.’고 했다. 자연이 만든 곡선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초가집의 지붕은 둥근 하향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어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정겹다. 기와지붕은 미려한 처마곡선으로 균형감 있게 보인다. 우리의 전통의상인 한복은 곡선미를 살려 만든 친자연적 의상이 아닌가. 한복의 풍성한 곡선은 자태를 우아하게 살려준다. 여인네의 치맛자락이 바람에 나부껴 하늘거리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즐겁다.

곡선의 아름다움은 보행자의 안전함과 편안함을 준다. 곡선형 도로는 자동차에 빼앗긴 길과 자연을 되찾아 주기도 한다. 직선도로는 커브가 없어 과속하기 쉽고, 교통사고의 위험도 크다. 직선의 고속도로는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느끼지 못하고, 스치며 지나친다. 겨우 목적지에 도착하기 급급할 뿐이다.

삶의 여정에서 대문을 나설 때 마다 매번 설레는 마음이다.

연륜이 거듭될수록 직선보다는 휘어진 곡선의 길을 택하게 된다. 고속도로보다는 국도나 지방도를 선호하는 편이다. 산 넘고 강을 건너 안개 낀 호수와 맞닥뜨리는 꼬불꼬불한 길 위에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드라이브를 즐긴다. 그럴 때 마다 눈에 들어오는 창밖의 풍경을 온몸으로 맞는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인생길을 달려가고 있다.

혹자는 인생의 속도를 자동차의 속도와 나이에 빗대어 말하기도 한다. 시간과 더불어 가는 속도경쟁에서 하루하루를 위태롭게 살아가고 있음에도 느끼지 못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제는 느리고 더디 가는 길에서 삶을 노래하고 싶다. 젊은 날의 한때는 거침없는 직선의 삶을 동경했었다. 속전속결로 잘 나가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경쟁사회에서 오로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직선도로를 질주하듯 앞만 보고 달려왔다. 조급한 마음은 피폐해지고 공허할 뿐이다.

직선은 굽힐 줄 모르는 옹고집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제는 직선이기보다는 곡선의 길을 가고 싶다. 웬만한 일이면 곡선의 길과 소통한다. 그 길에서 지나온 날들을 반추해보며 다가올 날들을 그려보기도 한다. 한 굽이돌아 쉼을 갖고 두 번 휘돌아 웃음 짓는 여유로움을 떠올린다. 이제 서야 철이 들었나보다. 그동안 속도경쟁으로 황폐해진 영혼에 자양분을 얻어 보려는 마음이기도 하다.

삶 속에는 언제나 직선과 곡선이 공존한다. 날마다 집을 나서는 순간이면 끈질긴 생명력이 유혹한다. 창밖 풍경에 젖으며 느린 걸음으로 만나는 세상 속에서 곡선이 되리라.

직선형의 인생계획을 둥근 곡선형으로 바꾸어야겠다.

바람에 굽는 나뭇가지, 이웃에게 고개 숙이는 관용, 화합과 배려의 자세 안에 굽힐 줄 아는 지혜가 새삼 새롭게 다가온다.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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