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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논단] 이제야 차별 없는 세상이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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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07.10 15:59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김도운 한국안드라고지연구소장

몇 해 전부터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수업을 하면서 누차 강조했던 말이 있다. “앞으로 블라인드 채용이 공식화 될 것이다. 더 이상 외모나 학벌, 가정환경 등으로 인한 차별이 없어질 것이니 지방대 출신이라고 기죽지 말고 떳떳하게 취업을 준비하라.” 실제로 수년 안에 이런 세상이 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도 자신 있게 말해주었다.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들리던 이 같은 일이 현실로 다가왔다. 정부는 당장 올해 하반기부터 332개 공공기관과 149개 지방공기업이 입사지원서에 편견이 개입될 수 있는 인적사항을 게재할 수 없도록 했다. 이에 따라 입사지원서에는 출신지역, 가족관계, 신체조건, 학력 등을 기록할 수 없게 된다. 사진도 부착하지 못하도록 했다.

‘블라인드 채용’이라고 불리는 이 방식은 향후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특정 지역 출신이라고, 지방대 출신이라고 취업에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어지게 된다. 지방대 출신이라도 실력만 있으면 취업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취업하는데 부모님의 학벌과 구체적 직업과 직위를 적어내야 하는 엄청난 모순도 이제는 사라지게 됐다.

장애인을 채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신체 건강한 자’라는 표현, 외모가 우월한 사람을 우선 채용하겠다는 의미의 ‘용모 단정한 자’라는 표현 등을 이제는 채용 공고에서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신장과 체중 등의 신체조건을 적도록 하는 일도 안 된다. 외모에 대한 편견을 갖게 하는 사진 부착도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면 금지된다.

너무 뿌리가 깊어 우리는 이러한 편견과 차별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며 오랜 세월을 살았다. 그래서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서는 이유 불문 서울이나 수도권 소재 대학에 진학해야 했다.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여기며 살았다. 객관적 실력이 뒤쳐져도 외모가 빼어난 사람이 취업에 유리하다는 사실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동안은 직원을 채용하는 입사지원서에 출신대학이 본교인지, 지방 캠퍼스인지 묻고 주간인지 야간인지를 적도록 했다. 이는 노골적으로 차별을 하겠다는 뜻이지만 이에 대해 누구도 저항하지 않았다. 부모가 어떤 직장에서 어떤 직위로 일하고 있는 지에 대해 적으라는 것도 실상 이를 근거로 차별대우를 하겠다는 것이었지만 이에 대해서도 반기를 들지 않았다.

지금껏 우리는 백(back)과 줄(line)이 있어야 취직할 수 있고, 업무 능력은 차치하고 명문대학 출신이라야 조직 내에서도 승승장구할 수 있는 시대를 살아왔다. 너무도 골이 깊어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며 살았다. 나아가 부와 권력이 세습되고 가난이 가난을 낳는 구조 또한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기며 받아들였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오지 않는 세상이 됐다’고 자조적인 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세상이 바뀌고 있다. 공공부문의 블라인드 채용이 정착되면 시간을 두고 민간부문으로도 확산될 것이 자명하다. 시대의 흐름을 민간 부문이라고 해서 역행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공공부문과 더불어 민간부문까지 블라인드 채용이 정착되면 이 땅에서 편견과 차별이 발을 붙일 수 없게 된다.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서 경쟁을 하는 시대가 현실이 되는 것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등등의 속담은 은연중에 편견과 차별을 묵인하거나 조장하는 말로 사용됐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의 성형수술 공화국이 됐다. 성형수술은 사회에 만연한 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외모도 경쟁력’이라는 말로 합리화시켰다. 성형을 통한 부익부빈익빈도 가속화 됐다.

편견과 차별이 없는 사회가 진정한 일류사회이다. 이제 대한민국사회가 또 한 번의 큰 걸음을 내디디려 한다.1894년 갑오개혁과 1980년 연좌제 폐지에 이어 2017년의 블라인드 채용이 국민 전체의 의식혁명을 가져오는 또 한 번의 물결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이 사회가 성숙한 방향으로 꾸준히 진보하고 있으니 다행이다.

김도운 한국안드라고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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