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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어울림

한기연 시인. 평생교육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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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07.10 15:59
  • 기자명 By. 충청신문
▲ 한기연 시인. 평생교육강사
[충청신문=한기연 시인. 평생교육강사]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그 동안 참았던 비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은 기뻐할 일이나 오늘만큼은 참아 주길 간절히 바랐다. 8시 밖에 안 됐는데도 마을회관에는 부녀회원들이 나와서 벌써 음식 준비를 끝내고 차 한 잔을 마시고 있었다. 오늘은 마을 연례행사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음성읍민체육대회가 있는 날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읍내 중심에 위치한 269세대의 작은 아파트로 마을 총무를 맡게 되었다. 읍민체육대회를 앞두고 종목별 선수를 뽑고 연습을 하기 위해 2주 전부터 일주일에 세 번 마을회관 앞 광장에 모였다. 젊은 사람들도 많이 살고 있었지만 참여율은 50대 전 후반의 마을 임원 위주였다. 가장 큰 점수가 걸려 있는 단체 줄넘기를 연습하기 위해 날짜를 정한 것인데 선수를 뽑기가 어려웠다. 저녁 늦은 시간 광장에 모여 치킨에 맥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지나가는 주민을 불러 한 잔 권하기도 하고 젊은 친구들을 붙잡고 선수 출전을 제의하기도 했다. 2주를 그렇게 마을 중앙에 버티고 앉아서 수박을 쪼개 먹으며 선수를 찾기 위해 애썼다. 연습은커녕 선수 구성도 못 한 채 모여서 친목만 다지고 결국은 당일 날 선수를 뽑기로 했다.
 
최다 참가상을 받기 위해 주민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방송을 마치고 행사 장소로 갔다. 우비를 입어도 소용없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종목별 선수를 뽑고 이리 저리 뛰어 다녔다. 형식적인 식순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체육대회가 시작되었다. 첫 경기로 족구를 했는데 우리 아들과 이장님 아들을 뛰게 했다. 부녀회 회원들은 머리에 노란 해바라기 꽃을 꽂고 반짝이 접시를 두드리며 응원을 했다. 이기기보다는 즐긴다는 마음으로 응원에 동참했기에 족구가 한 번만 이기고 패했는데도 아쉽지 않았다. 
 
심리학자인 롤프메르쿨레의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응원을 하는 사람들도 선수들이 지거나 실수를 해도 ‘괜찮아’를 외치며 리듬을 타고 즐겼다. 관망만 할 때보다 함께 동참하는 것이 두 배로 즐거웠다. 
 
마을별로 나뉘어 토너먼트 형태로 족구, 줄넘기, 팔씨름, 4인 5각 등의 경기가 진행되었다. 한 마을은 자주색 티를 입은 60 넘은 주민들이 2층에 줄맞춰 앉았다. 확연하게 응원모습이 돋보였는데 앞치마를 두르고 장난감 확성기로 지휘하는 응원단장의 구호에 맞춰 금빛 풍선막대를 흔들었다. 음성읍을 16개리로 구분하여 시골은 3개리를 묶어서 한 팀을 만들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훌라후프 개인전 남자부에 여섯 살배기 꼬마가 나온 것이다. 주최 측에서는 애당초 게임이 안 될 것이라 여겨서인지 기특하다며 경품으로 준비한 자전거를 선물로 주었다. 시합은 의외였다. 마지막 4명 속에 그 꼬마가 있었고 굵은 훌라후프를 4개로 돌려서 순위를 가릴 때도 흐트러짐 없이 돌리더니 1등을 하였다.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했고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두가 함께 즐기는 마을 축제임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오늘 최다 참가상은 시골마을에서 가져갔다. 시골은 젊은 사람들보다는 나이 드신 분들이 많아서 경기에는 불리할지 모르나 마을 일에 동참하려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지은 지 몇 년 안 된 우리 아파트는 젊은 사람들은 많으나 마을 행사에 참여하는 인원은 적다. 마을 일을 보면서 새로운 사람들이 함께 하지 못하는 점이 늘 아쉽다. 층간소음이나 애견으로 인한 문제 등 다양한 민원 발생이 끊이지 않는 아파트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사람과의 소통이 아닐까 싶다. 서로를 알아가고 어울리면서 분쟁을 해결할 수 있고 조금씩 배려하는 마음도 생길 것이다.
 
토요일 오전 내내 쏟아지던 비가 그치고 마을 잔치도 끝났다. 마을 광장에 모여 젊은 주민을 새롭게 만나고 소수이지만 그들과 함께 맥주를 마시며 준비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당장은 모두가 함께 할 수 없지만 이렇게 한두 명씩 새롭게 어울리다 보면 무슨 일이든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는 이웃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축제는 끝났지만 마을 광장에서의 어울림은 이곳에 사는 동안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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