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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아버지 연가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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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07.25 16:05
  • 기자명 By. 충청신문
▲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충청신문=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리어카에 담뱃잎이 소복이 실려서 간다. 
 
반소매 러닝셔츠와 반바지 차림으로 담배 실은 리어카 손잡이를 두 팔로 힘껏 붙잡고 가는 아버지를 암소는 더 앞에 서서 끌고 간다. 순 하디 순한 암소는 그저 묵묵히 앞만 보고 걸어간다. 
 
아버지 유품을 정리하다 발견한 빛바랜 흑백 사진 한 장. 그분의 소중한 삶이 담겨진 사진을 보며 마음이 울컥해져 온다. 
 
예전에 우리 동네는 주로 담배농사를 지었다. 한 해 농사로 목돈 만드는 일엔 그만한 농사가 없었다. 담배농사를 많이 지었던 우리 집은 여름내 담배를 따서 건조실에 널어 말리고 선선한 가을이 되면 담배 조리하는 일로 분주했다. 
 
이런 농사일은 아버지와 일꾼들의 담당이었고 엄마는 새벽부터 일꾼들에게 참을 모두 합하여 하루 6끼의 식사 대접으로 하루 일과를 마무리 했다. 일철, 일이 많은 촌집에 가족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은 그나마 저녁을 먹은 이후나 비가 오는 날뿐이었다. 그땐 일에 치어 사는 부모님이 싫었다.
 
장마가 지는 요즘 같은 여름철에는 농사일하는 것을 좋아했던 젊은 아버지가 더욱 그리워 그 때를 떠올려본다.
 
비 내리는 오후, 어린 딸은 마루에 걸터앉아 아버지를 기다렸다. 그런 날은 들에 가셨다가 일찌감치 일을 마치고 지게 소쿠리에 참외랑 토마토를 소 꼴 속에 넣고 들어오시기 때문이다. 
 
번듯한 것보다 거의 쭈그러지고 삐뚤어지고 갈라진 것들을 따가지고 오시지만 처마 끝 빗물 떨어지는 연주를 들으며 먹는 맛이란 꿀보다도 더 달콤한 아버지의 푸근한 맛이었다. 
 
아버지는 부지런한 농부였다. 새벽 4시가 좀 넘으면 어두운 길목을 더듬어 생명의 밭으로 향한다. 아버지의 농사수첩에는 그날그날 파종하는 씨앗들이며 방법에 대해 적혀있다. 
 
천안공고를 졸업한 후 할아버지가 혼자 농사짓는 모습이 안쓰러워 도회지의 취직자리도 마다하고 고향으로 들어와 농사를 지으셨단다. 손가락이 생채기투성이고 아파도 병원을 멀리하셨던 아버지, 오십 년이 넘도록 농사를 천직으로 아셨던 분, 
더러는 자식들이 학교에서 가져온 상장으로 고마워하고 자식이 취직하여 술 한 잔 대접에 기뻐하던 분이셨다. 때론 건주정도 즐기신 애주가요, 담배는 꼭두새벽부터 피워 골초애연가였던 아버지, 다 늦게는 농사일을 그만 놓고 게이트볼을 즐기신 멋진 분이셨지만 남에게 사기도 당해 마음고생도 하셨다. 
 
때로는 엄하게 때로는 자상하게 당신 삶을 통해 자식에게 인생을 알려주고 삶의 의미를 일깨워준 아버지는 내게 열정을 가르쳐준 마음의 횃불이기도 했다. 
 
초등 3학년 때인가 두발자전거를 가르쳐주신다고 뒤 안장을 잡고 따라다니시고, 처녀 시절에는 오토바이를 가르쳐 주신다며 딸을 태우고 학교운동장을 돌던 일, 시집보내고서는 운전은 필수라고 학원등록을 해주셨다. 내가 운전을 하기까지는 쌀자루 짊어지고 딸네 집에 드나드셨다. 
 
그 것이 힘에 부쳐 운전을 배우라고 하지 않았나 싶어 마음이 더욱 짠했다. 흥이 많은 아버지는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면 약주 드시고 젓가락 장단에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하셨다. 나도 가끔 한잔하는 것과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니 아버지 유전자를 받음이 틀림없는 것 같다.
 
친정집엔 엄마만 사신다. 하루 3시간씩 요양보호사 보호를 받으며 자식들은 돌아가며 돌봐 드리기는 하지만 아들과 며느리를 제쳐 놓고 딸인 나에게 의지하고 요구하는 일이 더 많다. 
 
병원 가는 일, 집안일, 자신 생활의 모든 일을. 의지만 하는 게 아니라 삶의 일부를 챙겨드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평생 아버지의 자상한 보살핌만 받고 살던 엄마였기에 홀로서기를 하지 못하고 마음의 병을 얻었다. 아픈 엄마를 돌봐드리긴 하지만 아버지만큼은 어림없지 싶다. 아버지의 사랑은 아직도 늘 거기 있을 텐데 엄마는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있으니. 어쩌자고. 
 
리어카를 끄는 사진속의 아버지를 자꾸만 바라본다. 참 열심히 사는 모습이다. 어린 딸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정서와 의식을 깨닫게 해주신 아버지, 진실하고 소중한 삶을 살아내신 아버지는 늘 그 자리에서 지켜보고 계시겠지. 
 
가만, 오늘 밤 오실지도 몰라. 지게 소쿠리에 못난이 참외 가득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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