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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타는 목마름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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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07.31 16:34
  • 기자명 By. 충청신문
 
시골의 하루는 도시보다 일찍 시작된다. 4시가 조금 지나면 탕탕거리는 경운기 소리와 창으로 들어오는 밝은 빛이 나를 깨우기 때문이다. 요즘에 내가 눈 비비고 일어나 처음으로 하는 일이 오디를 주워오는 일이다. 밭 끝에 뽕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오디가 많이 열린다. 고목의 뽕나무가 매년 나에게 오디를 선물한다. 
 
올해는 귀찮아서 버려두어야지 하면 남편은 어느새 나무 아래에 그물을 쳐 놓는다. 구멍이 송송 뚫려 있어서 작고 지저분한 오디는 빠져나가고 실한 오디만 남는다. 소쿠리로 낚아채서 나뭇잎과 새가 쪼아 먹어서 말라버린 것은 버리고 토실한 것만 가지고 와 씻어서 냉동실에 보관한다.
 
올해는 오디가 크다가 말라버린 것들이 많다. 지독한 가뭄은 오디마저 말려 버렸다. 게다가 예쁘고 실한 것은 까치가 먼저 시식을 한다. 떨어진 오디를 보면 새가 단물을 짜 먹어서 구멍이 뚫린 것들이 많다. 어떻게 새들은 맛있는 것을 잘 알까. 수박이나 사과도 잘 익은 것만 골라서 쪼아 먹는다고 한다. 
 
후각이 매우 발달했나 보다. 아침마다 까치가 깍깍거리며 미처 오디를 먹으러 오지 않은 친구를 부르고 있다.
 
오디가 익을 때 콩을 심으면 새들이 오디 먹느라고 콩을 빼 먹지 않는다고 해서 심었다. 콩을 심었는데 새싹이 나오지 않는다. 콩을 심고 물을 줘도 도무지 올라오는 싹이 없다. 가뭄이 극치에 달한 걸까.
 
물을 주면 혹시나 싹이 나올까 생각해서 매일 아침에 물을 주었다. 그래도 새싹을 보기 어렵다. 두세 포기 싹이 보이기에 시간이 지나면 나오려니 하고 아무리 기다려 봐도 종무소식이다. 포기하려 해도 자꾸만 밭으로 눈이 간다. 이웃 농부는 물을 그렇게 주면 땅이 딱딱해져서 새싹이 나오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도 먼지만 풀풀 나는 땅을 보면 나도 모르게 물을 주게 된다.
 
이웃 주민은 참깨 씨를 뿌려도 싹이 나지 않아 세 번째 씨를 뿌렸다고 했다. ‘이번에는 싹이 올라와야 할 텐데’ 하며 깊은 한숨을 쉰다. 호박잎은 생기를 잃고 축 늘어져 있다. 갈증이 나서 쓰러진 것 같다. 옥수수도 잎이 말린다. 점점 생기를 잃어가는 작물을 보고 있노라니 나도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갈증이 난다. 텃밭을 가꾸는 나도 힘든데 생계를 위해 농사를 짓는 분들의 마음은 더 하겠지.
 
우리나라도 이상기온이 점점 더 심해져 아열대 기후가 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된다. 작년부터 비가 오지 않아 댐들은 바닥을 들어냈다. 대소에서 음성으로 가다보면 저수지가 있다. 물로 가득 차 있어야 할 저수지는 바닥을 보이다 못해 풀이 사람의 키만큼 자라있다. 
 
우리나라도 기온 상승의 원인이 너무 많다. 화석 연료, 넘쳐나는 차들, 여름엔 에어컨에서 나오는 뜨거운 바람. 그렇다고 걸어 다니면서 생식으로만 살 수 없지 않은가. 그러기엔 너무 멀리 왔다.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 시점에서 옛날로 돌아가기는 불가능하다. 어쩌면 좋을까.
 
나 역시 기후변화에 한몫하고 산다. 걸어서 다닌 지가 언제인지 모른다. 십여 리를 걸어서 학교를 다녔는데 지금은 1Km도 걸어 다니지 못한다. 아니 걸어 다니고 싶어도 포장된 도로와 많이 다니는 자동차 때문에 불편하기 때문이다. 이것도 어쩌면 편리함에 익숙해진 나의 핑계일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먹고 살 좀 찌라는 소리를 많이 듣고 살았는데, 지금은 의사로부터 살을 빼야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경고를 받았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걷기를 한다. 그러면서도 외출할 때면 가책도 없이 자연스럽게 자동차의 문을 연다. 
 
사람은 한시도 물 없이는 살 수가 없다. 갈증이 날 때 물을 마시지 않으면 입안이 마르고 쩍쩍 갈라지면서 죽을 것 같다. 그럼에도 작물들은 죽지 않고 버티고 있다. 금방 쓰러질 것 같다가 밤새 내린 조금의 이슬로 견디고 있는 것이다. 자연의 위대함 앞에 인간이 참 작아 보인다. 
 
점점 이상기후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발전을 병행한다면 자연재해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자연을 지혜롭게 다스려서 재해에서 비켜갈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쓰러질 것 같이 타는 목마름은 언제나 해결될까. 기우제를 지내는 그 간절함으로 이 땅에 촉촉한 비가 내리길 두 손 모아 빌어본다.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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