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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기타를 멘 자유로운 영혼

라이브 음악실 쉘부르 이종환 사단 가수 ‘이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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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08.06 18:40
  • 기자명 By. 강주희 기자
 
 
[충청신문=대전] 강주희 기자 = 70·80년대는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정치·사회적으로는 암울했고 경제적으로는 가난을 이기고 고도성장을 이뤄내던 시기이기도 했다. 문화적으로는 청바지, 통기타, 생맥주로 대표되는 열정과 낭만의 청년 문화를 창출했다. 그중 통기타는 가수 송창식에서 장범준까지 40여 년간 사랑을 받아오며 시대의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자리 잡고 있다.
1973년 DJ 이종환의 쉘부르가 종로2가에 들어서며 통기타의 전성시대가 시작됐다. 가수로 데뷔할 수 있는 등용문 역할을 했던 그런 쉘부르에 가수 이애영 씨가 있었다.
이애영 씨는 한국 모던 포크의 대명사인 라이브 음악실 쉘부르에서 활동하던 이종환 사단의 한 명으로 현재 대전 중구 대사동에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이 곳에서 밤 8시 30분부터 그녀의 허스키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독무대가 펼쳐진다. 
홀로 통기타를 치면서 삶의 열정을 뿜어내는 이애영 씨를 만나봤다. <편집자 주>
 
 
 
통기타와의 인연
“70년대 초 20대 초반이던 저는 친구들과 함께 서울에 놀러 갔다가 라이브 카페 쉘부르를 가게 됐어요. 행운권을 추첨한다는 사회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중 제가 당첨된 걸 알았죠. 그때 사회자가 지금은 유명한 허 참 씨였어요. 행운권 당첨으로 무대에 설 기회를 얻어 노래를 불렀습니다”
“평소 통기타를 취미로 독학했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심해 몰래 숨어서 치곤 했지요. 시대적으로 가수란 직업은 ‘딴따라’라는 인식이 강해 드러내놓고 음악을 할 수 없었어요. 그런 저에게 그날의 무대는 제 인생을 바꿔놓는 계기가 됐지요. 그날 그 자리에 있던 이종환 씨의 눈에 띄어 즉석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돼 쉘부르에서 노래하게 됐으니까요”
 
추억 속의 음악실 ‘쉘부르’
“‘라디오 DJ의 전설’이자 ‘통기타 가수들의 대부’ 이종환 씨 주변엔 항상 재주꾼들이 몰려들었어요. 스타를 발굴해내는 안목도 탁월해 재능있는 가수들이 음반을 발표할 수 있게 길을 터주었고 양희은 김정호 쉐그린 등 많은 가수가 쉘부르 무대를 통해 스타가 되었지요”
“우리는 이종환 씨를 ‘대장’이라는 호칭으로 불렀답니다. 이종환 씨가 소문도 많고 말도 많았지만, 음악을 대하는 열정 하나는 최고였어요”
“쉘부르에서는 활동하는 사람 중 몇 명을 뽑아 ‘쉘부르 기획작품집’이라는 앨범을 만들었어요. 저는 그 곳에서 노래를 한 지 3개월 만에 앨범에 참여하게 됐어요. 저보다 먼저 쉘부르에 들어왔어도 앨범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이 많았답니다. 아마도 자신이 직접 캐스팅한 저를 위한 이종환 씨의 배려 덕분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제 목소리를 무척 좋아하셨거든요”
“그런데 제가 원래 어디 얽매이는 것을 싫어합니다. 앨범에 참여하고 나니 희망도 생겼지만 어디에 속해있는 삶이 힘겨워졌어요. 그냥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대전으로 내려와 버렸어요. 얼마가 지나고 이종환 씨에게 죄송하다는 편지를 썼어요. 며칠 후 전보가 왔어요 ‘같이 고생합시다’라고 쓰여 있었어요. 마음이 약해져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계기가 됐죠”
“그 후 이종환 씨가 ‘이수미 자해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해지고 음악실 쉘부르의 종로 시대가 끝났어요. 이종환 씨가 풀려나고 명동에 카페 쉘부르가 문을 열었죠. 거기서 한동안 버텼는데 술 마시는 곳에서 노래 부르기가 힘들었어요. 보이시한 외모와 목소리, 170cm의 큰 키 등이 남자냐 여자냐를 시작으로 취객들의 시빗거리가 됐죠. 도저히 버틸 수 없어 이종환 씨에게 대전으로 가겠다고 했어요. 그때가 1970년대 후반이었어요”
 
대전에서 ‘RESTART’
“대전에 내려와 노래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어요. 쉘부르 출신이라는 것이 많은 도움을 줬지요. 라이브카페에서도 노래하고 저를 찾아 주는 곳에서는 어디든지 달려가 노래를 불렀답니다. 그러다가 라이브카페를 차렸어요. 손님들과 음악적 영감을 나누며 자유로운 생활을 만끽할 생각에 기대가 컸죠”
“진짜 7080 문화를 살려 보고 싶었어요. 그러나 이미 클럽문화나 부킹문화가 사회 전반에 깔려있어 많은 라이브 카페들이 퇴폐업소로 변질된 후였어요. 순수했던 그 시절의 통기타 문화가 사라진 거죠”
“라이브카페를 운영하면서 어려움이 찾아왔어요. 변질된 문화로 인해 장사가 체질에 맞질 않았죠. 그때 너무 지쳐 택시 운전을 시작했어요. 자유로운 것을 좋아해서 운전을 좋아했어요. 혼자 여행도 다니고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죠. 힘든 시기를 좋아하는 운전을 통해 치유해 나간 것 같아요”
 
외로움을 달래는 ‘섬’
“라이브카페를 접고 혼자 유천동에 작은 규모의 카페를 차렸어요. 정현종의 ‘섬’을 좋아해서 상호를 ‘섬’으로 정했어요. 카페에는 작은 무대도 준비했어요. 노래는 멈출 수가 없었거든요” 
“사람들은 누구나 외롭잖아요, 저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외로움을 타요. 그런 분들을 위해 노래 하고 싶었어요. 가끔 불을 다 끄고 무대에만 불을 밝히고 혼자 노래를 했어요. 나를 위한 노래를요”
“저는 노래 부를 힘이 있을 때까지 노래 부를 거에요. 부르고 싶을 때 부르고 떠나고 실을 때 훌쩍 떠날 수 있는 그런 인생을 살고 싶어요”
 
 
그때를 추억하는 ‘나루터’
이애영 씨는 지난해 11월 23일 손맛 좋은 후배와 함께 보문산 아래에 음식점 ‘나루터’를 개업했다.
나루터는 느낌상 막걸리와 모둠전을 먹어야 할 것 같지만 사실 어죽도 인기다. 생물 메기와 동자개(빠가사리)만을 사용하는 이애영 씨의 고집 때문이다.
나루터는 오전 11시에 문을 열고 점심 장사를 시작해 밤 11시까지 운영하고 있다. 밤 8시 30분부터는 이애영 씨의 독무대가 펼쳐진다.
노래를 찾아 이곳에 오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낮에는 가족 단위로 저녁에는 친구, 연인, 직장회식, 각종 모임을 위해 이곳을 찾는다.
보문산 아래 자리 잡은 ‘나루터’는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찾는 이들과 옛 추억을 찾아 음악에 이끌려 온 이들까지 모두를 만족시켜주는 그런 곳이 아닐까 싶다.
“노래 부른 것에 후회한 적은 없어요. 살면서 말도 못 하게 힘든 날도 많았지만 그래도 노래 부를 때가 가장 행복했답니다. 낙후된 보문산을 다시 명소로 만들고 싶어요. 통기타가 오랜 시련 속에서도 아직 사랑받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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