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세상사는 이야기] 내 몸에서는 어떤 향이 날까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17.08.08 16:42
  • 기자명 By. 충청신문
▲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새벽부터 더운 열기로 알람 시간보다 훨씬 일찍 깨어 마당에 앉아있다. 탕탕탕탕 탈탈탈탈 앞집의 경운기는 새벽을 깨우며 들로 향하고 부지런한 아기 여치도 벌써 일어나 내 손등을 스치더니 팔짝 뛰어서 풀숲으로 사라진다. 모자를 쓰고 수건을 목에 두르고 긴 옷에 장화를 신고 호미를 들었다. 모기가 극성을 부려 틈만 나면 물어대니 중무장을 해야 한다. 꼭 폼이 여장부 일꾼 같다. 신선한 아침 해가 대문 앞에 올라 올 때쯤이면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다. 반짝 아침바람이 불어온다. 식전 보너스다. 땀내는 덤으로 풍겨온다. 이른 새벽부터 풀 뽑는 작업을 했는데 내 몸에서 상쾌한 풀내음이 나야 맞거늘 땀내가 솔솔 코를 찌르니 참 고약하다.
 
엊그저께는 방학이라 좀 늦은 출근을 하려고 나서는데 동네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을 만났다. 촌수로는 먼 집안에 나이 많은 형님도 있었다. 읍내 가는 채비를 한 것 같아 “제 차 타고 나가세요?” 하니 “어 그랴, 고마워 동새”, “무슨 일로 나가세요?”, “바쁜 일 좀 끝나서 읍내미장원두 가구 장 좀 볼라구 그랴”, “아, 네, 일찍 나가시네요”, “가다가 읍에 들어가기 전에 아무데서나 떨거놔 줘” 하신다. 넉넉잡아 15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며 읍내까지 도착할까를 고민하는데 “동새는 참 바쁘게도 살어. 한 동네 살어두 도통 얼굴을 볼 수가 없구먼. 핵교는 계속 댕기는 거지? 댕겨야지, 잘 살아야지, 애들 생각해서. 애들은 시방 뭐햐? 작은 아들은 선생 공부한다며? 집에 왔다 갔다 하는 걸 자주 보는데 큰아들은 못 보것어. 장가는 안보냐? 갈 때가 됐지 아마. 지들이 알아서 잘 하고 살것지 뭐. 아빠 닮아서 똑똑 하잖어. 에구 먼저 간 서방님만 불쌍햐.” 형님 되는 분은 운전하는 내 뒤통수에 대고 연실 자문자답이다. 내가 라디오 볼륨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동안 읍에 도착했다. “다 왔습니다. 이제 내리시구 잘 다녀가세요?” 15분 거리가 천리길 같았다. 차에서 내려 걸어가는 그들의 뒷모습에 대고 “아휴! 왜 태워가지고 원. 그것도 관심이라고?” 위로를 하는 건지 염장을 지르는 건지 혼자 사는 먼 동기간 동서가 진짜 걱정이 되어서 말하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공직생활을 하던 남편이 위암으로 고생하다 여름날 내 곁을 떠나갔다. 그사이 일곱 번의 여름이 지나갔다. 위암말기 판정을 받던 그 날, 무너져 내리는 하늘에 대고 울며불며 소리쳤다. 저 사람은 잘못이 없다고, 아직 할 일이 많다고, 내가 대신 가겠노라고 목 놓았다. 그 후 나는 죽을 만큼 죄의식에 사로잡혔다. 모두가 내 잘못으로 인해 아까운 사람 그렇게 보낸 것이라고 자책하며 좌절과 우울로 지낸 세월도 있었고 이 세상에 나 혼자 남은 것만 같아 서글프고 외로워하며 지낸 세월도 있었다. 약 오르고 분한 마음의 상처를 스스로 안고 버티기도 하였다. 하늘은 자신이 견딜 만큼 시련을 준다 하더니 내가 그렇게 큰 그릇도 못 되는데 하늘은 잘못 짚었다고, 너무나 억울하다고,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그런데 그 세월도 또 견뎌졌다. 그 엄청난 시련과 아픔을 죽을힘을 다해서 견디고 견뎌냈다. 나에게는 온전히 내 아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있어 견디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큰일을 겪고도 오로지 내 삶이기 때문에 그가 다 못한 몫을 내가 해야 하니까 모든 도전들을 당당하고 의연하게 받아들였고 세상에는 용서 못할게 없다고 자만도 했었다. 걱정하고 힘들어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도 서서히 알아갔다.
 
그런데 며칠 전 출근길에서 형님의 일방적인 말을 듣는데 짜증이 났었고 곱씹고 속상해 하고 있었던 나를 이 시간 알아차리게 되었다. 신선한 공기를 마셔도 그 사람과 함께 꽃을 가꾸고 글로 옮기며 기뻐했던 이 공간에 앉아 있으면서도 내내 마음 한구석이 언짢고 무거웠으니까. 내 마음이 불편하면 그 사람도 불편해 할 것 같아서 다시 마음먹기로 했다. 먼 친척이지만 시동생을 잃은 안타까움에 그분만이 동서에 대한 걱정과 궁금함과 관심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었다고. 생각을 바꾸니 마음이 편해졌고 내 몸의 땀내도 향기가 나는 듯 했다.
 
무더위 속에서도 꽃들은 더욱 찬란하게 피고 지니 전쟁에 나가 이기도 돌아온 영웅 같다. 목이 긴 연분홍빛 상사화, 다리가 긴 금꿩의 다리, 총총총 친구들과 함께 나란히 손잡고 핀 보랏빛 비비추와 꼴뚜기를 닮은 뻐꾹 나리가 여름 꽃으로 단연 돋보인다. 모두가 그이의 손길로 심겨지고 피어난 꽃들이다.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승리자인 것 같다. 그 사람과 함께 야생화를 키우며 사이트에 옮겨 함께 공유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꽃을 보며 즐겁게 해주었던 지난 날들이 미치도록 그립다. 그리움을 알게 하고 떠나간 그가 가꾸었던 이곳에 안주하고 싶다. 다소 엉성해도 이 공간에서 그 사람의 땀내를 맡으며 꽃과 나무를 보며 사는 일이 그와의 교감을 갖는 일일지도. 남편의 땀과 향기가 있는 이곳, 풀벌레와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지낼 수 있어 좋다. 여기 많은 종류의 여름 꽃향기 보다 더욱 매력 있는 당신의 냄새가 더 좋으니까. 그런데 오늘 아침 열심히 땀 흘린 내 몸에서는 진짜 어떤 향이 날까?
 
유난히 빨갛게 핀 솔나리가 나에게로 다가온다.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