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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밥상이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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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08.21 16:09
  • 기자명 By. 충청신문
‘살충제 계란’ 사태는 구멍이 숭숭 뚫린 농정의 민낯을 드러냈다. 이런 농림축산식품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우리 식탁의 안전을 온전히 맡겨도 되는 것인지 회의가 든다.
 
친환경 인증 농가의 계란마저 살충제로 범벅돼 있었고 ‘식품안전관리 인증기준(HACCP·해썹)’도 믿지 못하게 됐다. 친환경 농장이 일반 농장보다 살충제 계란이 더 많았으니 일반 계란보다 2배 가량 더 주고 친환경 계란을 사온 소비자들은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정부는 친환경 인증 업무를 민간업체에 맡겨놓은 뒤 사실상 방치해 왔다. 친환경 인증제를 허술하게 운영해온 정부의 잘못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뒤늦게 인증업체를 통폐합해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고 하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다.
 
더욱 충격적인 건 살충제를 사용한 산란계 농장의 59%가 해썹을 획득한 것으로 드러난 점이다. 해썹마저 믿지 못하게 됐으니 “어떤 음식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느냐”는 한탄과 분통이 터져 나온다.
 
18일까지 마무리된 정부의 전국 산란계 농장 전수조사 결과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돼 부적합 판정을 받은 농장 49곳 가운데 29곳이 해썹 인증을 획득한 농장이다. 정부가 인증 업무를 민간기관에 맡겨 놓은 친환경과 달리 해썹은 정부가 직접 관리한다.
 
해썹이 뭔가. 식품의 원재료부터 생산과 제조, 가공, 조리, 유통에 이르는 공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해 요소를 관리하는 위생관리체계다. 인증은 식약처 산하 한국식품안전관리인증원이 부여한다. 계란은 생산단계와 유통·소비 과정에서 각각 인증을 받을 수 있다. 생산은 농식품부가, 유통단계 인증은 식약처가 인증원에 위탁했다. 한마디로 믿고 먹을 수 있는 식품이라고 정부가 인정해주는 제도다.
 
정부는 우리가 생산하고 소비하는 모든 식품이 해썹 인증을 받는다면 국민 누구나 안전한 식품을 소비할 수 있을 거라고 홍보해 왔다. 그런 해썹 계란이 살충제 범벅으로 드러난 판국에 다른 식품은 괜찮다고 과연 장담할 수 있겠나. 나라가 보증하는 식품이 이래서야 무얼 어찌 믿고 식탁에 올릴 수 있겠는가.
 
살충제 계란이 나온 농장에 대해서는 축산물위생관리법 등 관련 법령에 의거해 엄중 처벌키로 했다. 공무원의 부적절한 시료 수거 과정도 감사를 해 문책하고, 부적합 판정을 받은 농장의 산란계는 앞으로 계속 추적 조사해 문제가 있을 경우 회수·폐기할 예정이다.
 
정부는 또 쇠고기, 돼지고기와 마찬가지로 축산물 이력제를 닭고기와 계란에도 적용해 올 하반기부터 준비와 시범사업을 거쳐 2019년부터 시행키로 했다. 살충제로 사용되는 동물용 의약외품에 대한 유통기록도 의무화해 유통 판매과정이 철저히 확인되도록 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친환경인증관리기관에 대한 징벌이나, 친환경축산 기준 강화를 위한 구체적인 일정이 없다. 이래서는 지금과 같은 친환경 인증 남발을 근절할 수 없다. 당장 소비자단체들은 친환경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산란계 농가와 거짓 인증을 한 인증기관에 부당이득 반환 및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내겠다고 한다. 이 참에 농업의 적폐청산을 하자는 얘기다. 특히 밀집사육문제에 대해서는 선진국형 동물복지 사육시스템으로 전환하겠다고만 했을 뿐, ‘언제까지 어떻게’ 시스템을 개선하겠다는 구체적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소를 잃고도 외양간 고칠 생각이 없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런 정도로 땅에 떨어진 정부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먹을거리에 대한 불신을 털고 농정이 제자리를 잡으려면 갈 길이 멀다. 이번 사태를 식품안전 관리시스템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일대 전환점으로 삼아야 하겠다. 무능한 대응으로 사태를 키운 농식품부와 식약처에 대한 책임도 엄정히 물어야 한다. 밥상이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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