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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배롱나무의 사연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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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09.05 16:54
  • 기자명 By. 충청신문
 
교정 앞 목 백일홍이 하늘빛과 어우러져 눈부시도록 황홀하다.
 
숨이 턱 막히는 무더위와 수해로 잔인한 여름을 다 이겨내고 건장하고 씩씩한 모습으로 조화 같은 꽃 분홍 봉 우리를 뽐내고 있다. 어쩌면 저리도 고울까? 보면 볼수록 탐스럽고 우아하기까지 하다. 
 
여름 석 달, 백일을 붉게 피어서 백일홍 나무, 나무껍질을 손으로 긁으면 잎이 움직인다고 하여 간지럼 나무라고도 한다. 나무껍질은 연한 붉은 갈색이며 얇은 조각으로 떨어지면서 흰 무늬가 생긴다. 배롱나무 꽃이 백일동안 피는 것은 먼저 핀 꽃이 지고 다시 이어서 피는 것이 백일이 간다는 것이다. 줄기는 매끈하여 여자의 나신을 떠올리게 하여 양반집에서는 심지 않았다 하는데 나무줄기만 보아도 수줍어 몸을 꼬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춤을 추는 무용수 같기도 하다.
 
꽃말은 ‘떠나간 벗을 그리워 함’이고 정말 그리워 미칠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옛날 어느 어촌에 목이 세 개 달린 이무기가 나타나 매년 처녀 한 명씩을 제물로 받아갔다고 한다. 그해에 한 장사가 나타나서 제물로 선정된 처녀 대신 그녀의 옷을 갈아입고 제단에 앉아 있다가 이무기가 나타나자 칼로 이무기의 목 두 개를 베었다. 처녀는 기뻐하며 “저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이 없사오니 죽을 때까지 당신을 모시겠습니다” 하자, “아직은 이르오. 이무기의 남은 목 하나도 마저 베어야 하오. 내가 성공을 하면 흰 깃발을 달고 실패하면 붉은 깃발을 달 것이니 그리 아시오”하고 길을 떠났다 한다. 처녀는 백일 간 기도를 드렸고 백일 후 멀리 배에 붉은 깃발이 걸려 오는 것을 보고 그만 자결하고 말았다 한다. 장사는 이무기가 죽을 때 뿜은 피가 깃발에 묻은 줄을 몰랐던 것이다. 그 후 처녀의 무덤에서는 붉은 꽃이 피어났는데 그 꽃이 백일 간 기도를 드린 정성의 꽃 백일홍이었다고 한다. 참으로 슬픈 배롱나무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우리 집 마당에도 배롱나무 한 그루가 독차지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을 정도의 기품이 있었고 굵기도 그렇지만 모양도 희한했던 나무였다. 줄기의 아랫부분이 연리되어 있고 굵기만 보면 백 년은 됨직했고 어찌 보면 기린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고 코끼리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원래 이 집에서 처음부터 자라던 것은 아니고 꽃을 기르는 분이 선물로 주신 꽃나무였는데 올 때는 커다란 고무함지에 심겨져 있었다. 고목 분재였다. 그렇게 큰 나무를 함지 속에서 어떻게 길렀는지 이해가 안 갈 정도였다. 
 
마당에 심기 위하여 함지를 뜯어 내고 나니 굵은 뿌리는 하나도 없었고 촘촘히 얽힌 실뿌리 가지들이 빗자루처럼 자라 있었다. 갑자기 배롱나무가 측은해졌다.
 
멀리 중국에서 가지 잘리고 뿌리 잘려 나무상자에 갇혀 머나먼 이국으로 실려 왔다는데 죽기 직전의 극한 상황에서 나무를 잘 다루는 사람의 손에 넘겨져 다른 배롱나무의 뿌리가 붙여지고 꽃이 피는 가지를 줄기 끝에 붙여 한 작품을 만든 것이었다. 한중 합작인 셈이었다.
 
그해에 바로 땅에 심었고 뿌리도 잘 내려 싱싱하게 자랐다. 여름내 한번 꽃을 피웠고 춥기 전에 나무줄기마다 짚으로 꽁꽁 싸매주었다. 시내보다 3도 정도는 낮은 시골동네라 겨울에는 더 추워서 따뜻한 지역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얼어 죽기 때문이었다. 요번에 월동준비를 잘하여서 분명 목백일홍 꽃을 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며 이듬해 봄이 되어 싹트기를 기다렸고 여름이 되어 꽃피기를 기다렸지만 이파리도 나오지 않은 메마른 가지에서 꽃이 필 리가 있나 기후가 맞지 않는 곳에서 제대로 펴보지도 못하고 얼어 죽었다. 배롱나무도 참 견디기 힘들었을 것 같았다. 살아남기 위해 자신은 얼마나 몸부림쳤을까 싶다.
 
아랫녘을 가다보면 배롱나무 가로수 길을 많이 본다. 배롱나무 성질도 잘 모르면서 북쪽이 트였는지 추운지 더운지도 모르고 무턱대고 심어놓고 꽃피기만을 바랐으니 이국땅에서 건너온 배롱나무에게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사람도 체질에 따라 먹는 것이 다르듯이 배롱나무도 기후와 환경에 잘 맞는 곳을 선택해서 심고 가꾸어야 하는데 무지한 나의 욕심에서 배롱나무 한그루를 그렇게 없앴다.
 
여름꽃나무 중 으뜸가는 목백일홍, 나는 저기 앞에 자랑스럽게 우뚝 선 배롱나무를 바라보며 슬픔과 기쁨을 함께하고 있다.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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