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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보따리

한기연 시인. 평생교육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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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09.11 16:52
  • 기자명 By. 충청신문
▲ 한기연 시인. 평생교육강사
시끌벅적 밝고 경쾌한 소리와 함께 교실 문이 열리며 아이들이 들어온다. 가방을 멘 채 질문이 쏟아진다. 오늘은 무엇을 만들 건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가방 안을 기웃거린다. 비밀이라고 조금 후에 수업시작해서 알려주겠다고 하면 여기저기서 수수께끼를 알아맞히듯이 말한다.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강사로 아이들에게 공예를 가르친 지 20년이 되어 간다. 지인의 권유로 종이접기 자격증을 따면서 초등학교 은사님과의 인연으로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다. 배우는 것이 좋아서 해마다 가리지 않고 역량을 쌓았다. 허투루 쓰지 않은 배움의 시간은 큰 자산이 되었다. 요즘 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불리는 융합교육도 실천하고 있다. 융합은 ‘둘 이상의 조직이나 기구가 하나로 모아져 조화롭고 새로운 구조를 만든다’ 뜻으로 두 분야를 조화시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드는 것이다. 단순히 시간제 강사로 가르치기보다는 스스로 교육의 흐름을 읽고 교육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일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종이접기만 가르쳤기 때문에 2절 크기의 검정색 전문가용 가방을 준비하여 재료를 챙겼다. 해를 거듭 할수록 가방의 숫자는 늘어났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그에 따라 수업을 하는 곳도 많아졌다. 누군가는 바쁘게 이리 저리 뛰어 다니는 나를 보고 ‘돈도 많이 벌지요?’ 라고 묻는다. 그에 대해 나는 웃음으로 대답한다. 돈을 쫓아 왔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하지 못했을 것이다. 늘 새로운 것이 쏟아져 나오는 공예를 하면서 내가 번 돈으로 다시 배울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적자는 아니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보다 더 큰 즐거움은 날마다 새롭게 가방을 꾸리는 일이다. 
평생을 한글 연구에 바친 주시경 선생은 누구도 돌보지 않던 우리말 사전 편찬을 시작했고, 서재필 박사를 도와 독립신문을 순 한글로 만들었다. 또 처음으로 학교에서 국어 시간을 두어 한글을 가르쳤다. 일주일에 거의 40시간을 서울 곳곳의 학교로 강의를 다녀야 했던 그는 자연히 책을 많이 들고 다녀야 했다. 그래서 주시경 선생은 사람보다 책 보따리가 먼저 보인다고 할 만큼 언제나 책 보따리를 옆에 끼고 다녔다. 그때 생긴 별명이 ‘주보따리’, ‘주보퉁이’였다. 그는 우리글을 가르쳐 달라고 하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다.
 
일주일에 예닐곱 개 넘게 가방을 꾸리면서 스스로 ‘보따리를 싸는 여자’라고 별칭을 지어 부르곤 했다. 보따리는 보자기에 물건을 싸서 꾸린 뭉치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가방의 형태보다는 내용물을 자유롭게 담을 수 있기에 정감어린 느낌을 준다. 그래서 ‘보따리’라는 말을 좋아하고 마음을 담아 가방을 꾸린다. 방 하나에 수업 재료가 가득하다. 늘 새로운 재료를 탐색하고 고민하면서 아이들을 생각한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의 가방을 궁금해 하는 아이들을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재료를 준비한다. 
 
이번 여름방학 특강을 모집하는데 한 학교에서 수강생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강의 개설 여부를 묻는 담당 선생님께 흔쾌히 수업을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몇 명이든 나의 배움을 원하는 학생이 있기에 그 아이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 주시경 선생처럼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 손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어디든 보따리를 싸서 달려간다. 나는 보따리 안에 갖가지 재료와 그 재료를 밑천 삼아 생각을 키우는 씨앗을 숨겨 놓는다. 씨앗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모습을 오랫동안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지켜보았다. 그 맛에 나는 오늘도 보따리를 싼다.
 
한기연 시인. 평생교육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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