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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귀촌인으로 산다는 것은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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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09.18 16:52
  • 기자명 By. 충청신문
 
대파가 싱싱하게 잘 자랐다. 토실토실한 것이 상품가치도 있는 것 같다. 실낱같은 파 모종을 주기에 과연 자랄까 걱정했었다. 죽으면 그만이고 살면 다행이란 생각으로 대충 심었다. 귀촌한 지 9년째이다. 내가 지은 농산물은 보기엔 허접하다. 그렇지만 나 스스로 만족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정말 멋지게 잘 지은 것 같아 뿌듯하다. 가뭄이 너무 심해 물을 준 것이 다였는데 지금껏 지은 농사 중에 최상이다. 
 
이웃에서 모종을 주어 처음으로 심은 참깨는 가뭄에 잘 자라지 못하고 말라갔다. 하늘의 선물인 비가 내려 싱싱하게 자라더니 알알이 영글어 갔다. 수확할 시기를 잘 알지 못하는 나는 깨를 베어야 할 때를 몰라 밭에 하얗게 밭에 떨어진 후에야 깨를 베었다. 참깨는 두어 되 정도 수확을 했다.
 
처음에 귀촌했을 때는 모든 게 낯설고 힘들었다. 안 하던 농사라 짓다 보니 손이 곱아 아침이면 손가락이 구부러지지 않았다. 벌레는 왜 그렇게 달려드는지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낭만적일 거라고 생각하고 시골로 왔는데 낭만은 둘째 치고 풀 뽑고 벌레 물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귀촌하려면 마음가짐이 남달라야 하는데 오로지 멋진 전원생활만 꿈꾸다 당한 꼴이다.
지인들이 오면 파란 잔디를 바라보며 참 좋다고 한다. 자기들도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면서 나를 부러워한다. 그들이 보기에 행복만 보이는가 보다. 그럴 때면 밖에서 보는 거와 사는 거는 다르다고 삶은 현실이라고 말해준다. 꿈만 가지고 귀촌하지 말라는 뜻이다.
 
올해는 유난히 가물었다. 작물을 심어도 자라지 못하고 죽기 일쑤이고 씨앗을 뿌려도 발아가 되지 않았다. 고추를 심었더니 목이 마른 고추모종은 비실거리며 자라지 못했다. 스프링클러를 사용해 고추모종에 매일 물을 주었다. 그래도 힘이 없어 보이기에 이번엔 고랑에까지 물을 주기 시작했다.
 
열흘 정도 장거리 여행 계획이 있어서 물을 흠뻑 주려고 매일 열 시간씩 물을 주었으나 더디 자라면서 힘이 없어 보여서 애간장을 태웠다. 생명력이 강한 풀마저 잎을 비틀고 있으니 작물인들 오죽하랴.
 
봄 내내 가물더니 다행히 뒤늦게 비가 내려 쑥쑥 잘 자랐다. 힘찬 모습을 보니 가슴이 뿌듯했다. 더 이상 작물의 갈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비가 많이 내려서 바짝 마른 저수지에도 물리 철철 넘치는 것이 보기 좋았다. 세상 모든 식물들이 좋아서 춤추는 듯 하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신났다. 
 
그러나 세상은 참 고르지 않은가 보다. 가물 때는 비가 내렸음 하고 빌었는데 비가 쉴 새 없이 내리니까 이제 좀 그쳤으면 한다. 주렁주렁 예쁘게 달린 고추가 병들기 시작했다. 약을 주려해도 비가 와서 줄 수도 없다. 그러다보니 고추가 모두 병들기 시작했다.
 
삼십 근 넘게 하던 고추 수확은 반으로 줄었다. 그런들 어떠랴? 내가 먹을 것을 내 손으로 농사지어서 먹는다는 것이 대견한 걸. 풀 뽑느라 손이 아프고 벌레에 물려 밤새 긁적거려도 내가 농사를 짓는다는 것이 신기하고 뿌듯하다.
농사짓기가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그냥 심으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손이 참 많이 가는 것이다. 이제는 요령도 생겼다. 우의를 입고 일을 하면 벌레가 물지 않는다. 농약을 쓰지 않으니 쐐기도 잘 쏘인다. 무장하지 않고 밭에 갔다가 쐐기가 쏘면 약을 발라 카드로 밀어내면 금방 낫는다는 것도 알았다. 살수록 하나씩 노하우가 생기는 것이다.
심은 농작물을 우리 집에 오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도 행복이다. 예전의 나를 생각해서 잘 다듬고 씻어서 보냈다. 시어머님 생전에 열무를 다듬어주지 않으면 가져오지 않았다. 대파도 다듬어 줘야 가지고 왔다. 철부지 며느리는 쓰레기 버리는 것도 힘들고 마구 뽑아준 열무나 대파는 지저분해서 쓰레기가 많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때의 나를 생각해서 지인에게 농작물을 나누어줄 때면 꼭 다듬고 씻어서 주게 된다. 그때의 시어머님 마음도 이랬으리라. 내가 시골에 살고 나서야 생전의 어머님 마음을 알 수 있으니 자식이란 늘 때늦은 후회를 하는가 보다.
 
올해는 나눔이 적을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내 건강이 좋지 않기도 하고 가뭄과 장마로 수확이 적기 때문이다. 상품 가치는 없을지라도 내 정성이 가득한 농작물이 많은 사람의 가슴에 사랑으로 남는 먹거리가 되길 바라본다.
 
마지막 농산물인 무, 배추가 잘 자라고 있다. 바람에 나풀대는 잎사귀들이 자기들을 봐 달라는 것 같다. 오후에는 계피 우려낸 물과 목초액을 섞어서 뿌려주어 벌레들의 침범을 막아봐야겠다.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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