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아침에] 아무 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해서
[월요아침에] 아무 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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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9.24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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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용 대전화정초등학교 교장
▲ 박종용 대전화정초등학교 교장
9월 15일 금요일 오전 9시 30분, 포항으로 가기 위해 울릉도여객터미널에 모였던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출항해야 할 시간인데 승선조차 못했다. 제18호 태풍 ‘탈림(TALIM)’의 영향이다. 자칫하면 며칠간 울릉도에 발이 묶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한시라도 빨리 대전으로 가야 했다. 
 
하루 전날인 9월 14일, 전국 독도교원연수단의 일원으로 독도에 입도했다. 즐거웠다. 중환자실에 입원하셨던 어머니께서 의식을 되찾았다는 동생의 연락을 받고 기쁨이 배가 되었다. 그런데 14일 밤 10시부터 병원에 있는 가족들로부터 불안한 소식이 전해졌다. 
 
어머니는 식도암 치료를 받기 위해 30번의 방사선을 쐬었다. 기력이 약해져 대상포진까지 걸리셨지만 거뜬히 이겨내셨다. 식도암 면역 항암제 투여 대상자에 선정되었을 때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에 다니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4주 전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가 일반 병실로 옮겼을 때 고향에 가고 싶다며 병원 밥을 한 그릇씩 뚝딱 비우셨다. 그런데, 9월 15일 새벽 3시 55분, 그렇게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하셨던 어머니께서 퇴원하신지 5일 만에 운명하셨다. 
 
모든 어머니가 마찬가지이겠지만 내게 어머니는 하늘이셨다. 1980년대까지 버스가 다니지 않았던 논산 두메산골에서, 서울에서 법과대학을 졸업하신 아버지의 아내로 사셨다. 그만큼 시골 부자였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했다. 어머니는 행상으로 6남매를 먹여 살리기 시작했다. 새벽녘에 과수원에서 과일을 받아다가, 강경에서 생선을 받아다가, 여기저기 팔러 다니셨다. 내일 물건 살 돈만 남겨두고 자식들의 먹을거리를 사 오셨다. 
 
나는 6남매의 맏이다. 어머니는, 없는 형편에도, 맏이가 공부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하셨다. 중학교 3학년 2학기가 되자,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할 수 있도록 논산읍내에 방을 얻어주셨다. 학교에서 집까지 8킬로미터를 자전거로 오가다 학교 근처에 방이 있으니 너무 좋았다. 한 살 어렸던 여동생이 밥을 챙겨 주기 위해 같이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특수반에서 밤늦게까지 공부하다 잠들고, 아침 먹으러 월세 집에 갔더니 여동생이 없었다. 연탄가스를 마시고 이승을 떠난 것이다. 
 
어머니는 자식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 담배를 피우셨다. 그러면서도 맏이가 대전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도록 했다. 매달 맏이의 하숙비를 빌리러 마을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면서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시골에서, 게다가 가난했기에, 남에게서 돈을 빌리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부모님께서는 법대 진학을 원하셨지만, 남은 4명의 동생을 생각해 몰래 2년제 교육대학에 원서를 냈다.
 
그러다 보니 5남매 중 3명이 대전에서 교직생활을 하고 있다. 어머니께서는 두 아들에 며느리까지 교장·교감이 되었다며 무척 대견해 하셨다. 그러나 3년 전, 어머니는 젊어서 너무 고생한 탓에, 딸을 잃은 슬픔으로 피운 담배로 인해 폐기능이 약해졌다. 식도암까지 걸리셨다. 중환자실을 드나드는 횟수가 잦아졌다. 결국 자식들에게 유언도 못하시고 우리 곁을 떠나셨다.
 
9월 15일 오전 10시쯤, 승선하라는 안내방송이 흘렀다. 드디어 육지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승선은 마쳤는데 출항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파고가 높은 탓이었다. 어머니의 임종조차 지켜보지 못한 죄인에게 상주 역할도 맡기지 않는구나, 하늘도 참 무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0시 30분, 출항하겠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그렇게 어머니 곁에 도착하니 조문객들로 붐비었다. 슬픔을 함께하기 위해 찾아오신 분들이기에 고마웠다. 염습을 하는데 대상포진에 걸렸던 상처가 얼핏 보였다. 어머니는 초기 치료시기를 놓치고 고령에 식도암까지 있어 강력한 진통제를 복용해도 통증 조절이 어려웠다. 통증으로 주무시지 못하다가 주사를 맞아야 편히 잠드시곤 했다.
 
9월 17일 일요일,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마지막 가시는 길에 업어 드리지는 못할망정 관만큼은 우리 손으로 운구하고 싶었다. 빈소부터 하관까지 자식들과 사위 그리고 손자들이 모셨다. “카톡 카톡!” 병원에 예약했던 어머니의 진료 일정이 손전화로 전송되었다. 
 
<서울S병원 예약알림> 이명순 님 9월 18일(월) 10:20 종양내과 조00 선생님, 진료장소 : 암병원 3층 폐암센터 대전A대병원 이명순 님, 9월 21일(목) 13:40 호흡기내과 한00 교수님, 16:00 피부과 이00 교수님 진료예약
 
“아들은, 어머니 당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만 하다가 보내드립니다. 당신에 대한 기억으로 저는 무슨 일을 겪어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제 아프지 마시고 편히 쉬십시오”
 
박종용 대전화정초등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