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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따뜻한 온기

한기연 시인. 평생교육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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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09.25 16:01
  • 기자명 By. 충청신문
▲ 한기연 시인. 평생교육강사
지난 토요일 앞치마를 두르고 친정집에 갔다. 명절을 앞두고 친정집 청소를 하기 위해 작정하고 나선 길이다. 반나절을 넘게 청소를 하고 끝날 무렵 큰 조카가 들어 왔다. 의례적인 인사를 몇 마디 건네고 방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거리가 생겼다.
 
남동생에게는 딸이 두 명 있는 데 딸 둘은 어릴 적부터 엄마의 정을 느껴보지도 못하고 할머니와 살았다. 조카들은 말썽 없이 예쁘게 자랐지만 고모로서 제대로 사랑을 주지도 못하고 성장하여 둘째가 올해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옆에서 생일상 한 번 차려 준 적 없는 무심한 고모였다. 큰 애는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청주에 나가 살고 있다고 한다.
 
청소가 끝나고 조카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일상적인 질문에 짧은 답이 오가며 형식적인 대화를 했다. 머뭇거리다가 용기를 내서 조카를 안아 주며 챙겨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마음을 전했다. 어릴 적 상처를 누구에게도 털어 놓지 못하고 마음의 병을 앓게 된 조카는 울기 시작했다. 상담교육을 통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의 아픔을 외면하고 살아 온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짧은 대면이었지만 묵은 체증이 조금은 내려 가는 기분이었다. 그 동안 쌓였던 아픔이 한 번의 포옹과 울음으로 치유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제야 진심으로 ‘고모’라는 호칭을 갖게 되는 계기는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요즘 프리허그(Free Hug)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은연중에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2006년에 ‘후안 만’이라는 호주인의 인터넷 동영상에 의해 본격적으로 확산 된 프리허그(Free Hug)는 자신이 길거리에서 스스로 ‘Free Hug’라는 피켓을 들고 기다리다가 자신에게 포옹을 청해오는 불특정 사람을 안아주는 행위다. 일부 장난스럽게 이러한 행위를 하는 사람도 있으나, 본래적 의미는 포옹을 통해 파편화된 현대인의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고 평화로운 가정과 사회를 이루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프리허그닷컴(free-hugs.com)의 설립자인 제이슨 헌터(Jason G. Hunter)가 평소에 "그들이 중요한 사람이란 걸 모든 사람이 알게 하자" 는 가르침을 주던 어머니의 죽음에서 영감을 받아 2001년에 최초로 시작하였으며, 이후 ‘Free Hug’라는 로고를 새긴 옷을 제작, 판매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요즘은 학교에서 학생과 선생님과의 마음을 나누는 의미로 프리허그 캠페인을 벌이는 곳도 있다고 한다. 스킨십을 통한 교감을 나누는 행동으로 볼 수 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삶을 바라보는 혜안도 생기고 주변을 한 번쯤은 살펴보게도 되나 보다. 친한 지인이라도 팔짱 끼는 것이 어색하고 손을 잡는 정도의 스킨십도 낯설어서 먼저 손을 내밀지는 않았다. 처음이 힘들다고 했던가? 용기를 내어 조카를 안고 보니 백 마디의 말보다도 강한 울림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정치인들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인사할 때 상대방의 두 손을 꼭 잡고 ‘악수’를 한다. 손을 맞잡는 찰나의 순간에 자신의 따뜻한 온기를 전하면서 자신을 분명히 각인시키고 신뢰를 주기 위한 '악수 노하우'를 비장(秘藏)하고 있다.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행동이라 낯설고 어색하겠지만 먼저 다가가 손 잡고 팔짱끼는 일을 해 볼 요량이다. 겉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따뜻한 포옹을 하며 진심을 전하고 싶다. 나의 위로가 필요한 이에게 위로의 말보다 온기를 전하고 싶다. 그의 아픔을 이해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아픔과 슬픔을 함께 끌어안고 싶다. 일요일 저녁에 기숙사로 돌아가는 둘째를 배웅하며 안아본다. 쌀쌀한 가을밤에 따뜻한 바람이 불어온다.
 
한기연 시인. 평생교육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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