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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 희비(喜悲)가 엇갈리는 추석 연휴

하헌선 대전서원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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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09.27 16:23
  • 기자명 By. 충청신문
▲ 하헌선 대전서원초등학교 교장

유난히도 무덥고 열대야가 많았던 긴 여름이 지났다. 햇볕은 따갑지만 아침저녁으론 제법 선선한 소슬바람이 분다.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가을 날씨이다. 이제 추석이 코앞이다. 추석이란 말 한마디에 우선 마음 한가득 훈훈함이 깃든다. 낼모레부터 우리 민족의 대 명절인 추석의 막이 오르며 추석연휴가 시작된다. 금년 추석연휴는 임시공휴일을 비롯하여 대체휴일에 개천절·한글날까지 겹쳐 무려 10일간 이어진다. ‘황금연휴’이다.

추석을 보통 한가위라 한다. 한가위는 신라 때 시작된 가배(嘉俳)가 그 기원이라고 한다. 가배는 가위와 같은 의미로 음력 8월의 가운데(보름)를 뜻한다. 여기에 커다란 보름달을 볼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진 ‘한’을 붙여 한가위라 하며 우리들의 전통명절이 되었다. 고구려와 백제 때에도 제를 올리고 사냥과 풍악을 즐겼다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이미 오랜 옛날부터 가을걷이가 끝나면 햅쌀밥과 햇과일 등으로 조상들에게 차례를 올렸다.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여 오곡백과 풍성한 한 해의 수확을 축하하는 서양의 추수감사제와 같은 맥락의 흥겨운 축제 행사가 바로 한가위 명절이었다.

추석이 되기 전 조상님의 은덕을 기리며 산소를 말끔히 정비하는 벌초를 한다. 추석날엔 온 집안 식구들이 한데 모여 덕담을 나누고 정성스레 만든 음식으로 차례를 지내고 산소를 찾아가 성묘를 한다. 자연스럽게 효(孝)의 의미를 실천해보는 아름다운 미풍양속이다. 추석이 되어도 벌초가 되지 않은 무덤은 자손이 없거나 조상의 산소를 돌보지 않는 불효(不孝)하는 자손이라는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우리 조상들은 명절에 성묘하지 못하는 것을 수치로 알았다. 자손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향에 내려가 부모형제 이웃들과 그동안 못 다한 덕담을 나누고, 조상님들께 차례를 지내고, 조상님의 산소 주변 여름철에 무성하게 자란 잡초를 제거하고 성묘하며 조상의 은덕을 기렸다. 그런 아름다운 우리의 미풍양속을 계승하자는 의미에서 추석과 전후 일을 국가공휴일로 지정하였을 것이다.

한가위에 부모님을 찾아뵙고 조상들의 산소를 찾아 성묘하며 조상숭배와 가족 사랑의 아름다운 풍속을 지키고자 올해도 어김없이 민족대이동이 벌어질 것이다. 주차장을 방불케하는 도로에서 짜증보다는 그 동안 떨어져 있던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쁨에 잠겨 있게 된다. 그런가하면 요즘엔 귀성․귀가 등 미풍양속 본연의 활동은 뒤로 하고, 황금연휴를 활용하여 관광이나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여행 숙박지에서 인터넷으로 제사용품을 주문하여 차례를 지내거나 아예 해외여행을 떠나는 등 해가 갈수록 한가위의 풍속도가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갈수록 심각해지는 빈부 격차, 미풍양속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 대가족제도에서 핵가족으로의 변화, 가장(家長)의 권위 추락 등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본다.

추석엔 대체로 덥지도 춥지도 않고 선선한 날씨가 이어진다. 여름에 땀 흘려서 가꾼 햇과일과 농작물은 바라보기만 해도 배부르다. 뿔뿔이 흩어져 사는 가족과 친지들도 만나서 덕담을 나눈다. 먹고 살기 바빠서 소원했던 이웃들과도 풍성한 음식과 정을 나눌 기회가 주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했다.

그런데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듯이, 풍성하고 여유로운 추석연휴에 남모르게 한숨짓는 사람들도 많다. 자식들이 없거나, 찾아오지 않는 자식을 기다리며 요양원이나 보호시설에 살고 있는 노인들도 있고, 힘든 삶을 부모님, 형제자매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 고향을 찾아가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10일간의 연휴가 황금연휴라 하며 반가운 사람도 있겠지만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일당 근로자나 비정규직 근로자, 직원의 월급을 줘야 하는 자영업자 등 서민들에겐 엄청 부담스러운 연휴이다. 해외여행이나 국내여행 등 관광이나 레저활동으로 황금연휴를 계획하고 보내지 못하는 대부분의 서민들은 경제적 사정으로 방콕만 할 수도 없는 일 노릇이라서 이래저래 10일간의 긴 추석연휴는 황금연휴보다는 어정쩡 연휴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조상들이 후손에게 물려 준 미풍양속은 고리타분하거나 지나간 추억의 이야기가 아니다. 비록 황금만능주의와 개인적 이기주의가 만연한 사회에 살더라도 자랑스러운 도덕적 가치관은 유지되어야 한다. 전해져 오는 효(孝)와 관련한 이야기들이 본 받고 싶은 롤모델의 대상이 아니라 전설 속에나 나오는 이야기로 굳어지기 전에, 효에 대한 실천적 도덕적 가치관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기성세대부터 솔선수범하여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효에 대한 바른 의미를 전해줄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희비(喜悲)가 엇갈리더라도 10일간의 긴 추석연휴는 풍요로움이 가득한 날들의 연속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 풍요로움을 자연에 감사하고 조상에 감사하며 어려운 이웃들에게 작은 정성이라도 함께하는 모두가 풍요롭고 따뜻한 한가위 명절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하헌선 대전서원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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