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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새로운 우주를 향해서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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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10.09 16:27
  • 기자명 By. 충청신문
 
어지럽다. 머리가 무거워 앉아 있을 수조차 없다. 체력이 바닥이 난 걸까. 먹는 기쁨도 사는 기쁨도 없어졌다. 이런 날은 점점 늪 속으로 빠지는 것 같은 기분 때문에 힘이 든다.
 
서울에 있는 대학 병원 진료예약이 되어있다. 딸하고 이틀 정도 함께 지내려고 미리 서울로 갔다. 토요일 오후에나 시간이 나는 딸과 조카를 데리고 식당으로 갔다. 오랜만에 아이들과 먹는 저녁식사 시간이 참으로 즐거웠다. 아이들도 엄마와 함께 하는 저녁식사 시간을 즐기며 간만에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서로가 바빠 만나기도 힘드니 영화를 보자고 해서 영화관에 가서 자리를 잡고 않았다. 그런데 식사 후부터 개운치 않던 속이 영 불편했다. 화장실에 다녀오면 괜찮아지려니 했다. 화장실을 다녀와서 진정이 되지 않고 진땀이 흐르고 앉아 있기가 어려웠다. 애들 보고 영화를 다 보고 나오라 하고 밖으로 나와 약을 사가지고 집으로 왔다.
 
먹은 것 중 무언가가 반란을 일으키고 위장을 뒤흔들고 있다. 위경련이 잘 일으키던 내 위장이 또 경련을 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온몸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구토를 했다. 서너 번의 구토 후 입이 마르더니 숨쉬기도 어려웠다. 애들은 아직 오지 않고 혼자 아픔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딸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왔는데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머리가 무겁고 들 수가 없다. 필름이 끊길 정도의 과음을 하고 난 후의 증상과 비슷하다. 알코올은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는데 말이다. 편평태선이란 구내염으로 진료받으러 온 것인데 병원이나 갈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이다. 
 
4년 전부터 입안이 헐기 시작했다. 매운 것을 좋아하던 내 입은 고춧가루 한 조각도 허락하지 않았다. 별거 아니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여러 병원을 다녀도 낫질 않았다. 일 년 넘게 병원을 전전하다가 서울의 큰 대학병원에 다니길 시작했다. 원인이 무엇이냐는 내 말에 면역력 저하와 과로, 스트레스가 많은 원인 중 하나라고 하면서 한 가지로 원인이 이거다라고 꼭 집어 말할 수 없단다. 
 
이름도 생소한 병으로 고생하는 것도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지려니 했다. 시간이 가도 들쑥날쑥 하면서 차도가 없자 기분이 다운되기 시작했다. 얼큰한 것을 좋아하는데 먹질 못하니 더 기운이 없는 것 같다. 급기야는 우울증이 침범하려 한다. 안간힘을 쓰며 물리치려 노력하지만 자꾸 처지는 기분 때문인지 모든 의욕이 떨어지고 있다. 
 
3년 전 어느 날 기운이 없더니 걷기도 힘들었다. 잘 먹으면 괜찮겠지 했더니 20년 동안 잠잠하던 갑상선기능저하가 재발되었단다. 다시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식탁 위에 약 봉지가 수북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약을 많이 두고 먹긴 처음이다. 기력이 없다. 열정도 사라진다. 하고 싶은 일이 점점 없어진다. 매사에 열정적이던 마음은 어느 구석으로 숨었을까. 책이 옆에 없으면 불안하던 마음도 글을 써야 한다는 마음도 식어버렸다. 긍정적이던 삶에 적신호가 켜졌다. 점점 늘어가는 약봉지는 우울증까지 유발하더니 무기력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점점 저조해지는 내 체력에 화가 난다. 병원에 가서 예약했는데도 시간을 지키지 않는 것에 화가 나고 이 정도의 병도 완치 못 시키는 의료진에게도 화가 난다. 우리나라 의료 역사가 얼마인데 아직도 요만한 병도 못 고친단 말인가. 매사에 화가 치밀어 오르고 있다. 겨우 4년 아픈 걸 가지고 엄살이냐고 할 것이다. 긴 시간 병마와 싸우는 분들에게 미안한 소리지만 내 손톱 밑의 가시가 더 아픈 걸 어쩌란 말인가.
 
먹을 것을 제대로 먹지 못하니까 화가 자주 난다. 아무 일도 아닌 일에도 주책없이 눈물도 흐른다. 작년부터 더 심해진 병세로 짜증이 자주 나고 기분도 엉망이다. 조절되지 않는 내 기분으로 주변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할까 걱정이다. 
세상이라는 우주를 향해 두 손 꽉 움켜쥐고 태어난 그 날을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육십 평생을 넘게 산 경험으로 지금부터는 새로운 우주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새로운 마음과 건강한 모습으로 멋지게 살길 희망하며 새로운 우주를 향해서 아자! 아자! 아자!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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