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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피안에 가다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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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10.23 16:44
  • 기자명 By. 충청신문
 
다리 떨리지 않을 때 여행을 많이 해라. 어른들이 하는 말이다. 생전에 시어머님께서도 젊을 때 여행을 많이 다니라고 하셨다. 나이 들면 걷는 것도 느려지고 차를 탈 때도 빨리 타지 못하니 같이 간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게 된다며 젊을 때 많이 다니란다. 아직은 다리 떨리지 않고 가슴이 떨리니 여행하기엔 최적의 조건이다.
 
어느새 가을이 코앞에 바짝 다가왔다. 단풍은 아직 기다리라고 하는데 마음은 어느새 길 위에 있다. 파란 하늘에 간간히 떠 있는 하얀 구름을 바라보며 차를 몰았다.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은 설렘을 동반한다. 울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떠나는 길은 내 입을 귀에 걸어 놓는다. 옷을 갈아입으려고 준비하고 반짝이는 빛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는 가을 나뭇잎은 지금의 내 모습 같다. 나이 들어가는 인간과 자연이 하나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빙그레 웃는 얼굴. 다정한 미소. 포근한 눈길. 넉넉한 표정. 넓은 품을 열어두고 두 팔 벌려 환영한다. 지친 심신을 이끌고 먼 길을 달려 온 보람이 있다. 세속의 모든 것들이 소리 없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이 느낌이 좋아 피안의 세계인 도피안사로 달온 것이다.
 
울산 살 때 친구와 함께 봉정암을 거쳐 이곳에 와서 삼일동안 기도하고 갔다. 그것이 십오륙 년 전이었을 게다. 그때의 기억이 좋아서 친구들과 다시 찾아온 것이다. 철원의 산속. 맑고 깨끗한 공기로 휩싸인 피안의 세계에 도착하는 순간 세속의 모든 것이 저 멀리 날아간다. 아픈 머리도 힘든 마음도 가벼워진다. 
 
세속의 냄새나는 모든 습을 사천왕의 부릅뜬 눈에 의해 털어냈다. 사천왕문을 지나니 작은 연지가 나타난다. 작고 앙증맞은 꽃을 피운 연꽃을 보며 우리 집 연지에 옮겨 심었으면 하는 욕심을 내 본다. 어딜 가나 이어지는 인간의 탐욕은 여기서도 일어난다. 욕심은 이렇게 버리기 어려운 것인가 보다. 
 
전에 왔을 때 철로 된 부처님을 개금한다는 말을 들은 것 같다. 나는 개금을 하지 않은 부처님을 뵙고 싶었다. 뭐든 변화하려는 인간의 욕심이 본래의 면목을 잃게 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법당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얼마나 기쁜지 안도가 되며 환희심이 일었다. 개금되지 않은 부처님이 앉아 계셨기 때문이다. 
노거수가 된 느티나무 아래 앉아본다. 파란 가을하늘이 정겨움을 더해준다. 마음이 평안하고 자유로워지는 것 같다. 우울하던 마음도 고통 주던 병마도 파란 하늘로 날려 보내버리고 피안에 계신 부처님의 품에서 근심걱정을 모르는 아이가 되어 본다.
‘신라 경문왕 때 도선 국사와 신도들이 철을 모아 부처님을 조성했다. 당시 철원 안양사에 봉안하려던 불상이 운반 도중 없어졌는데, 어찌 된 일인지 지금의 도피안사 자리에 안좌하고 있었다. 국사는 불상의 뜻을 짐작하고 불상이 앉았던 자리에 절을 창건하고 부처님을 모셨다.
 
지혜의 세계, 영원한 안식처인 피안의 땅을 상징하는 도피안사. 광복 후 북한 치하에 들어갔다가 한국전쟁 때 불에 타 완전 폐허가 되었다. 9년이 지난 어느 날 15사단장 모 장군의 꿈에 불상이 나타나 갑갑하다고 했다. 이튿날 전방시찰을 나갔던 장군이 갑자기 갈증을 느껴 부근의 한 민가에 들어갔다가 간밤 꿈에서 땅속에 묻힌 불상과 함께 보였던 안주인을 만나고는 깜짝 놀랐다. 모 장군은 그 여인의 안내를 받아 불타 없어진 도피안사 터를 찾아가 뒤지기 시작했고 땅속에 묻혔던 철불을 발견했다. 꿈에서 본 불상이었다.
 
약한 것이 인간이다. 지치고 힘들 때 어딘가에 의지해야 한다면 그것은 종교다. 종교는 자기가 믿고 의지하며 선하고 바르게 살려하고 쓰러졌을 때도 오뚝이처럼 다시 서게 한다. 나 역시 그 범주에 있다. 병이란 녀석의 침입에 힘없이 당하다면서 점점 지쳐가고 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병원을 다니며 대항하고 있지만 삼 년이 되어도 차도가 없으니 우울증이란 녀석까지 찾아왔다. 도피안사 부처님의 말없는 법문을 듣고 가벼운 마음이 된다.
 
어지러운 마음, 나태해지는 나에게 채찍을 하고 싶다. 자성을 찾고 자유를 찾아 맑고 깨끗한 영혼의 소유자가 되고 싶다고 부처님께 합장 발원한다. 건강을 찾아서 나보다 힘든 이웃을 보듬어 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의 소유자가 되게 해 달라고.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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