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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하늘빛 용담초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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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10.24 16:48
  • 기자명 By. 충청신문
 
눈을 뜨면 마당부터 살핀다. 
 
색깔도 독특한 용담초가 눈에 띄었다. 언제 피었는지 봉오리가 포속으로 말려들어가 보라색의 신비로움과 푸른빛의 쓸쓸한 이미지가 절묘하게 녹아 있는 듯하다. 햇살이 퍼지면 꽃잎이 열리기 시작하겠지. 가을의 쓸쓸한 서정을 불러일으킨다. 한번 바라보면 한참동안 눈에 밟히는 꽃이다.
 
용담초의 용담(龍膽)을 풀이하면 용의 쓸개다. 뿌리가 용의 쓸개만큼 쓴맛이어서 용담이란 이름을 얻었다나. 그런데 누가 용의 쓸개 맛을 보았단 말인가. 어찌됐거나 용은 신령스런 존재이니 용의 쓸개가 더 없는 영험한 약재임을 상징적으로 강조하는 의미인 것 같다. 
 
용담은 씨앗을 받아서 뿌려도 잘 자라고 옮겨 심어도 잘 자라는 강인함 때문에 들꽃 중에서는 드물게 색감이 아름다운 꽃이다. 
작은 미세씨앗에서 자라 여러해살이풀로 지난 추운 겨울과 한여름 더위를 잘 참고 견딘 용담초의 줄기가 가냘프다. 땅으로 눕기도 하고 휘어졌는데도 잎겨드랑이에는 형제자매처럼 촘촘히 꽃봉오리를 맺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고 적당히 휘어진 줄기와 날카롭지 않은 잎과 꽃대를 올려 통꽃을 피우려나 보다. 꽃의 아랫부분이 봉긋하게 부풀어 여러 송이가 한줄기에 다닥다닥 붙어 피는 모습이 마치 다정한 오누이 같다.
 
오빠와는 연년생이다. 그는 나 때문에 엄마 젖을 제대로 못 먹고 컸다고 우스갯소리를 하지만 장남이라면 끔뻑하셨던 엄마의 사랑은 사남매 중 반은 차지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장남 위주의 재산상속과 큰아들을 많이 챙기는 어머니의 지독한사랑 때문에 나머지 우리는 서운한 마음이 적잖았다. 엄마는 사남매를 똑같이 대한다지만 큰아들 바보였다.
 
어릴 때부터 나는 가족 중 오빠와 유난히 친하여 그가 가는 곳을 많이 따라다녔다. 믿고 의지했으며 중학교까지는 함께 다니면서 학교에서나 교외에서나 오빠 덕을 많이 봤다. 나보다 무엇이든 월등히 잘했고 집에서도 인정받는 큰아들이었다. 부모님 희망이었고 내가 기댈 수 있는 큰 나무 같은 존재였다. 오빠를 자랑스럽게 여겼고 사이좋은 오누이로 지냈다.
 
지난여름, 폭염 속 비지땀을 흘리다가 어느 순간 오싹한 한기가 오는 증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는 겨울을 넘나들었다. 무기력과 함께 뭔지 모를 서운함을 자주 느껴 웃음 없는 날을 더 많이 보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언제부터인가 인정 많고 착하던 오빠가 변했다고 생각했다. 엄마를 대하는 태도가 예전 같지도 않았고, 큰아들이 최고라고 치는 엄마에게 오빠의 소홀함도 미웠고 엄마 돌봐 드리는 일은 모두 내 차지가 되어 힘들다고 있는 대로 생색을 냈다. 이런저런 일로 의좋던 우리 남매관계가 소원해졌다고 내내 마음을 썼다. 
 
어머니는 “오빠 너무 미워 하지 마라. 그래도 형제, 오누이밖에 없는 겨” 하셨다. 그땐 그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엄마의 간절한 마음이 이제 읽혀진다. 혼자 짐작하고 속 끓였던 나 자신이 한심하다. 지독하게도 덥던 한여름 나에게 찾아왔던 낯선 손님은 남들이 말하는 그냥 갱년기 증상이겠지.
 
정신이 번쩍 든다. 차가운 아침바람을 맞으며 용담초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다섯 가닥으로 갈라진 종모양의 꽃잎을 꽃받침 속에 숨기고 시계방향으로 말고 있다. 기온이 더 서늘해지고 하늘빛이 내려앉아야 봉오리를 연다. 가을 하늘이 내려온 듯 진한 청 보라색으로 시선을 사로잡겠지. 
 
햇살과 바람이 서서히 용담초에게 다가온다. 곧 시린 빛깔로 활짝 피어날 거야. 이들은 누구에게도 생색내지 않고 아낌없이 주면 묵묵히 꽃 피운다. 할 말이 없다. 어리석은 나는 자연에게서 얼마나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하는 걸까.
스마트폰에 담은 하늘빛 용담초 이미지가 선명하다. 좀 이따 오빠에게 보내줘야지.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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