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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시각] 살충제 계란과 탈석탄

안순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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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10.26 17:16
  • 기자명 By. 충청신문
 
나쁜 기억은 오래 가나 봅니다. 요즘도 계란을 보면 맛있겠다는 생각보다 ‘살충제’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릅니다. 지난여름 ‘살충제 계란’ 소식은 충격이었습니다. 프라이 찜 말이 스크램블 오므라이스 같은 계란 음식을 좋아하고, 날계란을 꿀꺽 삼키는 걸 즐겼으니까요. 세월이 약인지라 충격은 많이 가셨지만 꺼림칙한 기분은 아직 남아있습니다. 사람이 먹는 음식을 가지고 장난치는 몹쓸 짓거리는 대체 어떤 벌로 다스려야 멈출까요?
 
살충제 계란은 우리 밥상에 오르는 먹을거리를 돌아보게 합니다. 사람에게 해로운 물질로 오염된 게 과연 계란뿐일까요. 몇 십 년 전만 해도 계란은 귀한 먹을거리였습니다. 그런 계란을 싼 값에 또 쉽게 먹을 수 있게 된 건 대량생산을 가능케 한 ‘고도화(?)된 생산방식’ 덕분입니다. 고도화된 생산방식? 그게 뭘까요. 좁은 공간에 닭장을 층층이 쌓고 닭들을 몰아넣어 알을 받아내는 공장식 집단사육 방식이지요.
 
비좁아 옴짝달싹할 수 없으니 닭이 온전할 리 없지요. 그러니 항생제를 먹여야 하고 살충제를 뿌려야 하는 겁니다. 어미 닭이 건강하지 못한 데 계란이 건강할 리 없습니다. 이게 어찌 계란만의 문제이겠습니까. 식탁에 빈번히 오르는 소 돼지와 생선, 각종 채소 등 거의 모든 1차 먹을거리와 2차 가공음식에도 해당되는 문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살충제 파동을 겪으며 ‘동물복지’가 담론으로 떠올랐습니다. 좋은 환경에서 건강하게 키워서 안전하고 질 좋은 먹을거리를 얻자는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좋기는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동물복지 농장이 주류가 되려면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생각의 틀을 확 바꿔야 합니다. 먼저 생산자는 정직해져야 합니다. 고비용 저효율을 감내할 자세가 돼야 합니다. 소비자들은 추가 비용을 지출할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안전하고 질 좋은데 값도 싼 제품은 없습니다. 질이 좋다면 지금보다 비싸게, 보다 적게 먹겠다는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동물복지도 있는 겁니다.
살충제 계란은 그리하여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줄이고 줄이고 아끼고 아껴라.
 
오늘처럼 모든 것이 넘쳐 나는 세상에서 쓰고 버리는 건 어렵지 않지만, 투철한 삶의 질서를 지니고 절약하며 살아가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풍요로운 시대, 소비가 미덕이라지만 절약은 어떤 시대이건 영원한 미덕입니다. 물건이 너무 흔하다 보니 아낄 줄을 모르고 고마워할 줄도 모릅니다. 조금 깁거나 때우거나 고치면 말짱한 물건도 아낌없이 내다 버립니다. 물건만 내다 버리는 게 아니라 아끼고 소중하게 아는 그 정신까지도 함께 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요.
 
과거의 우리는 조그만 걸 가지고도 고마워하고 귀하게 여기면서 넉넉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는 많은 것을 차지하고 풍요를 누리면서도 고마워할 줄도 귀하게 여길 줄도, 또한 넉넉한 줄도 모릅니다. 그저 늘 모자라 목이 마를 뿐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너무 많이 먹는 게 병이 되었습니다. 건강하게 살려면 줄여야 합니다.
 
줄이고 아껴야 하는 건 먹을거리뿐이 아닙니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탈원전, 탈석탄도 따지고 보면 줄이고 아껴라 하는 이야기입니다.
 
원전을 주장하는 이들은 값싼 에너지임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알다시피 향후 처리 비용을 감안하면 원전은 결코 값싼 에너지가 아닙니다. 대전에도 쌓이고 있는 방사능 폐기물은 어찌할 겁니까. 고스란히 후손들의 부담이 될 겁니다. 탈원전을 달성하려면 한 60년 걸릴 겁니다. 그동안 신재생에너지 기술은 얼마나 비약적으로 발전할까요. 지금의 기술과 비용의 한계점을 들어 탈원전 반대를 하는 게 타당한지 묻고 싶습니다.
 
우리가 정녕 안전한 사회를 꿈꾼다면 전기요금 인상은 각오해야 합니다. 또 전기 사용도 줄이고 아낄 줄 알아야 합니다. 탈석탄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조사에서 충남도민 과반이 전기요금을 더 부담하더라도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하자고 한 것은 국민이 진정 원하는 게 무언지를 보여줍니다.
 
깨끗한 환경에서 살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물도 공기도 기름도 씀씀이를 줄이고 아껴야 합니다. 줄이고 아껴라, 무엇보다 우리의 욕망을 줄여라, 살충제 계란은 그렇게 들려줍니다.
 
안순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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