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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가을연가

강희진 음성예총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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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10.31 16:23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강희진 음성예총 부회장
가을이다. 올해 가을 들판은 유난히 아름답다. 운전을 하고 가다 차를 세우고 그 고운 빛에 취해 한참을 바라본다. 어제도 아이와 같이 가다가 논 옆에 차를 세우고 어린 시절 이야기를 시작했더니 아이가 한마디 한다. “엄마 옛날일을 자주 추억하면 늙은 것이라는데….” 그런가 하고 웃었지만 나도 이제 내 생에서 가을쯤 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아이의 논리로 보자면 추억이 자꾸만 생각날 수밖에 없지 않는가.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벼이삭을 주우러 들판으로 나갔다. 흙으로 만든 논둑에는 쥐구멍이 많아 쥐들이 벼이삭을 물어다 놓았다. 4, 5, 6학년 학생들이 쥐구멍을 찾고, 또 논에 떨어진 이삭을 모으면 비닐포대 여러 개가 되었다. 그 시절 우리는 들판으로 나가 마음껏 쏘다닌다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벼이삭의 용처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고 아이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통 감이 오지 않나 보다. 그럴 것이 40년도 넘은 이야기에 아이의 상상력이 미치지 못할 것은 자명하다. 
 
그래도 근래의 시간은 다행히 같이 공감할 수 있어 좋다. 아이들이 엄마가 여고 시절을 보낸 광주를 가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역사적인 도시를 꼭 여행하고 싶단다. 서로 바쁘다 보니 말은 수 십 번 했지만 함께 가보지 못하고 국내여행 1순위로 늘 꼽고 있다. 그런 광주를 지난주에 음성예총에서 충장로축제 견학으로 다녀왔다. 얼마나 변해 있을까? 어떻게 변해 있을까? 궁금했다. 
 
떠나기 전날 밤 여러 가지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학교에서 충장로와 금남로가 가까워 우리들의 주 무대였다. 주말이면 메밀자장면을 먹는 재미로 친구들과 어울려 쏘다녔다. 그 때 메밀자장면은 왜 그리 맛있었는지 아직도 생생하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네티즌이 써 놓은 글을 읽고 혼자 웃은 적이 있다. 추억여행을 떠났는데 아내가 충장로 메밀자장면이 맛있다고 꼭 먹어봐야 한다고 해서 같이 가서 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메밀국수에 춘장을 부어 준 것이었다면서 정말 맛이 없었다고 한 글이었다. 어쩌면 지금 우리의 세련된 입맛에는 맞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나처럼 충장로 메밀자장면의 추억을 가진 사람이 많이 있나 보다 했었다. 
 
여고를 졸업한 후에는 충장로 뒷골목 상추튀김을 먹으러 다녔던 기억도 새롭다. 튀김을 잘라 상추 위에 올리고 고추를 다져 넣은 매콤한 간장을 끼얹어 싸서 먹으면 얼마나 맛있었던지 그 맛 또한 변하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막상 우리 일행이 광주공원에 차를 대고 광주 땅을 밝으니 울컥했다. 높기만 했던 공원의 계단도, 울창하고 멋있었던 그 공원도 한적하고 쓸쓸하기만 했다. 북적거리던 그 공원 앞에는 할아버지 몇 분이 낡은 리어카로 만든 포장마차 앞에서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30여 년 전에는 밤이면 카바이드 불을 밝힌 리어카가 공원 앞에 줄서 있었다. 그 화려한 불빛만으로도 들뜨게 만들었던 광주 공원, 그런데 초로의 할아버지들이 모여 앉아 기울이는 술잔이 참 쓸쓸해 보였다. 
 
변해버린 충장로와 금남로를 기웃거렸다. 변하지 않는 것은 충장우체국이었다. 그곳을 우리는 ‘우다방’이라고 불렀다. 친구들과 만남의 장소로 정했던 곳이다. 꽤 여러 층의 계단 위에는 우리말고도 늘 사람들로 꽉 차 누군가를 기다리는 장소였다. 오지 않는 친구가 있으면 바로 옆 공중전화박스로 가서 긴 줄을 기다리곤 했다. 여전히 우체국 앞에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예전의 우리처럼 눈을 반짝이며 친구가 오는지 쳐다보지 않고 핸드폰을 보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결국 메밀자장도 상추튀김도 학교도 가보지 못하고 왔다. 아니 일부러 가지 않았다는 게, 먹지 않았다는 게 맞는 말일 듯싶다. 마음속에서 ‘다음에, 다음에, 다시’ 이런 외침을 들었기 때문이다. 과거는 중요하지 않고 현재와 미래를 향해 가라고 하지만 추억은 아름답다. 우리의 아름다운 추억이 지치고 힘들 때 힘이 되어 주는 것은 고전이고 진리이다. 
 
며칠 전 읽는 ‘잊힐 권리’에 대한 기사가 생각난다. 인터넷상에서 과거에 남겼던 흔적을 지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과거의 행적을 지워주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도 생겼다는 글을 읽었다. 아날로그 감성으로 살았던 우리시대의 과거 곧 추억은 마음속에 있다. 꺼내보고 싶을 때 혼자 조용히 꺼내보며 치기를 반성하고 추억을 더듬는 아날로그 감성이 아름답다는 확신을 다시 한다.
 
강희진 음성예총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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