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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논단] 한국인의 머릿수 채워주기 문화

김도운 한국안드라고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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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11.13 16:02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김도운 한국안드라고지연구소장

인생을 살아가면서 온전히 나 스스로를 위해 배정하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싶다. 내 정신과 내 몸은 분명 내 것이지만 우리 대부분은 내가 아닌 남을 위해 또는 내가 속한 집단이나 공동체를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며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번 살다가는 인생인데 나 자신을 위해 변변히 시간을 내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음은 서글픈 현실이다. 적어도 집단주의 의식이 강하고 더불어 집단주의 문화가 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개인을 위한 시간을 내서 나에게 충실한 삶을 살아가기란 더욱 어렵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고 나만을 위해 살아가면 이기적이고 개인적이라는 비난을 받게 된다. 그래서 그 비난이 무서워 마음에 내키지도 않으면서 어울려야 하는 사례를 자주 경험하게 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니 만큼 두루 어울려 살아야 하고 남을 배려하며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여기서 굳이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지나치게 집단주의 문화를 강요당하는 한국사회의 특수성 때문에 개인의 사생활이 보장되지 못하는 병폐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심각한 수준으로 개선을 위해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할 단계이다.

한국인은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많은 일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시간이 최장일 뿐더러 노동의 강도도 세다. 그래서 누구보다 많은 휴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평일에는 회식과 모임에 시달려야 하고 주말이나 휴일에도 개인적 휴식을 갖는 것이 좀처럼 용납되지 않는다. 주말과 휴일의 휴식을 방해하는 요인은 너무도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친지나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일이다. 특히 봄과 가을에는 거의 매주 결혼식장을 찾아다녀야 한다. 축의금을 내는 일도 중요하지만 직접 찾아가 얼굴을 보여 주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한다.

예식장을 다니는 일 외에도 봄철과 가을철에는 각종 모임이나 야유회, 체육대회, 등반대회 등이 계속 이어진다. 편히 쉬면서 자기 일을 본다는 것은 사회생활을 포기하는 것일 수 있다. 예식이나 각종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편히 쉬어야 할 주말이나 휴일에도 평일처럼 제 시간에 일어나 몸을 씻고 옷을 갖춰 입고 나서야 한다. 새로운 한 주의 업무를 위해 충전해야 할 몸은 주말이라고 한가할 겨를이 없다. 참석해야 할 행사장이 먼 거리에 있을 경우에는 오히려 평일보다 피곤한 일정을 보내야 한다. 참으로 불쌍한 한국인이다.

평일에 불쑥불쑥 발생하는 지인들의 애사에 찾아가 위로해 주는 일도 빼놓을 수 없는 사회생활이다. 특히 애사의 경우 반드시 찾아봐야 한다는 의식이 강해 아주 먼 거리라도 불문곡직 다녀와야 도리를 다할 수 있다. 주중에는 일에 열중하고 갑작스럽게 날아오는 애사 소식에 예의를 다해야 하고 주말이면 각종 모임에 참석하느라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이 한국인의 사회생활이다. 여름과 겨울철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날씨가 좋은 봄과 가을은 그 정도가 심하다. 연중 나 아닌 내가 속한 조직이나 단체를 위해 시간을 내고 얼굴을 비쳐야 하는 것이 한국의 문화이다.

이 같은 문화는 긍정적인 면도 많지만 부정적인 면도 많다. 굳이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켜 말하자면 집단을 강요하는 가운데 개인의 사생활이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행사장이고 사람이 북적여야 생기가 있고 활력이 있기 마련이다. 그 장소가 장례식장일 때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행사장이든 사람 머릿수가 많아야 주최자의 체면이 선다는 생각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마음에도 없는 축하와 위로를 위해 그저 머릿수를 채운다는 생각으로 경사와 애사를 찾아다닌다. 내가 머릿수를 채워 줘야 상대도 내가 주최가 되는 애사나 경사, 또는 행사에 참석해줄 것이란 생각을 갖고 움직인다.

실제로 한국사회에서는 사람을 많이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물이 진정한 능력을 가진 인물로 평가 받는다. 상부상조라는 허울 아래 진정성은 뒷전인 채 서로 머릿수를 채워 체면을 살려주겠다는 생각으로 소중한 휴식을 반납하고 있다. 각종 모임이나 야유회, 체육대회 등의 행사도 마찬가지이다. 정작 즐기고 싶은 마음도 없으면서 머릿수를 채워주는 것이 주최 측에 대한 보답이라는 생각을 갖고 형식적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런 독특한 문화 속에 인생의 소중한 시간인 휴식은 한국인에게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가족과 함께 쉬는 시간을 가지면서 활력을 충전을 하는 휴일문화가 한국사회에 언제나 정착되려나.

김도운 한국안드라고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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