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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어느 날 갑자기

강희진 음성예총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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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11.14 16:08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강희진 음성예총 부회장
요 며칠 훈련 나온 군인들로 거리가 복잡하다. 매년 이때쯤이면 훈련을 하는 군인들이 보이기는 했지만 이번처럼 차량이 막힐 정도는 아니었다. 장갑차, 탱크가 즐비했고 군인을 가득 실은 트럭이 왔다 갔다 했다. 오늘 아침 군용차량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군인들을 보면서 안쓰러웠다. 군인이라 하지만 아직은 어린 나이다. 그들의 엄마가 바람을 맞으며 트럭 뒤에 앉아 졸고 있는 아들들을 봤다면 어떤 마음일까 싶어 마음이 쓰였다. 그런데 오후에 탱크에 앉아 깃발을 흔들며 지휘하는 군인들과 장갑차 위에 앉아 있는 늠름한 군인을 보니 아침에 안쓰러움 대신 어린 시절 군인 아저씨를 봤을 때처럼 씩씩하고 든든함을 느꼈다.
 
여느 해보다 많은 탱크와 장갑차, 군인을 보니 잊고 있었던 위기의식이 느껴졌다.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저 위에서 불을 품고 내가 보는 앞에서 사람들이 죽어간다고 생각하니 끔찍하고 무서웠다. 나는 비상식량 준비도 해 둔 것이 없고 생수 하나 사 둔 것도 없는데 어쩌나 하면서도 설마, 갑자기 당하기야 하겠어 하는 생각으로 불안을 잠재웠다.
 
그런데 설마 느닷없이 무슨 일이 하면서 느긋했는데 마음의 전쟁을 치렀다. 7~8년을 해 오던 강의가 하루아침에 없어졌다. 연유를 묻는 나에게 담당자는 지난달에 강의시간표에 대한 항의 전화를 했다는 이유를 댔다. 자기도 사람인지라 그 여파가 강사 선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솔직하게 시인하는데 그 태도가 너무 당당했다. 세금을 받고 일을 하는 사람들이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한 행동을 한다는 건 상식 밖의 일이다. 분노가 폭풍우처럼 휩쓸고 지나갔다. 곧장 말을 하면 험한 말이 오고 갈 것 같아서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끙끙거리고 한나절을 보냈다. 감정이 가라앉은 다음 전화를 했다. 부당한 조치에 대해서 해명을 요구했다. 상대방의 변명 아닌 변명을 들으면서 서로의 입장차이만 확인했다. 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답변을 더 듣고 싶지 않아 “알았다”고 전화를 끊었다.
 
집을 나와 무작정 걸었다. 언젠가 언니가 운동을 안 하는 내게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지에 대해 말했다. 첫째는 어지러운 생각이 정리되고 둘째는 그러다 보니 엔돌핀이 나와 스트레스가 해소된다고 하며 그 맛에 중독되어 걷는다고 했다.
 
집 뒷산을 걸으면서 처음에는 내가 바보 같다는 생각뿐이었다. 왜 내가 좀 더 강하게 나가지 않았을까? 왜 내가 그 말을 하지 못했을까? 그 사람에게 좀 더 강하게, 좀 더 가슴 아프게, 내가 당한 것 이상으로 갚아줄 수 있었는데 왜 중도에 그만 뒀을까? 정식으로 민원 신청을 할 수도 있었고, 직접 홈페이지에 민원을 제기 할 수도 있었는데…. 온통 그런 생각으로 걷고 또 걸었다. 한 시간 이상을 걸어도 마음 속에서는 여전히 그 분노가 사그라지지 않았다. 숨이 턱에 닿을 때까지 뛰기도 하고 산 중턱 쉼터에 앉아 소리도 질러보고 그러면서 또 한 시간이 지나갔다. 내 마음속에 있는 분노를 다 폭발하고 나니 내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언젠가 읽었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인간이 외로운 것은 누군가가 자기를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데 그러지 못했을 경우에 외롭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완벽한 이해는 어렵고 자신을 이해하는 것은 결국 자신뿐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왜 그 말이 떠올랐는지 잘 모르겠다. 부당함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를 못한다. 남들처럼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내 성격 때문에 가끔 사람들과 껄끄러운 관계가 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강하다는 말을 듣고 그럴 때 난 이해 받고 싶어 한다는 것을 오늘 알았다. 
 
오늘의 진실은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분노의 화살을 쏘고 왜 우리 사회는 아직도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가에 대한 분노였다. 왜 거기서 한발 물러나지 못하고 그 속에 들어가 감정대로 휘둘렀나 하는 것에 대한 반성, 이런 것들이 혼합된 그 무엇 이었나 보다. 앞으로 살면서 이런 일을 무수히 일어날 것이다. 일 중심보다는 관계중심형으로 살아가는 내 성격은 쉬 변하지 않을 것이고 부당한 일을 보면 또 흥분할 텐데 그때마다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걱정이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부당함을 보면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하고 불의를 보면 참지 않아야 함은 당연한 것 아닐까.
 
강희진 음성예총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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