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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 여권을 발급 받다

홍석원 충청지방우정청 청주우편집중국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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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11.15 15:58
  • 기자명 By. 충청신문
▲ 홍석원 충청지방우정청 청주우편집중국장. 수필가)

 여권을 신규로 발급 받았다. 80년대 중반 태국에 있는 아시아의 우정학교인 아태 우정연수소에 우편업무 연수 관계로 관용여권을 발급 받은 지 30여년만이다. 여권은 외국 여행자의 신분과 국적을 증명하고 상대국에 신변보호를 의뢰하는 문서로서 일반·관용·외교관 여권의 세 가지가 있다.

얼마 전에는 갓 돌 지난 외손자의 여권을 발급받았다고 하길래 세상 좋아졌다며 원준이는 복이 많아 환갑의 할아버지보다 먼저 만들었다고 우스개 소리를 했었는데 드디어 필자도 발급하게 되었다. 여권을 만들기까지는 고심이 컸다. 직장의 한 모임에서 필자의 정년 퇴임기념으로 해외여행을 하자고 하여 어쩔 수 없이 떠밀려서 발급 받은 것이다.

필자는 친목도모에 비중을 두고 의사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내가 의사표현을 하면 행사 진행에 방해가 되고 어려움이 있을 거 같아 회원 다수의 의견대로 따르기로 하고 경청만 한 게 뒤에 화근이 되었다. 행사 추진단에서는 여럿이 가기 때문에 준비 사항이 많다며 수시로 연락해와 하루하루가 걱정되었다.

정년 퇴임기념으로 10여 년 전부터 언론에 기고한 내용을 모아 책을 발간하는 중이라 할 일이 많고 마음이 조급해져 분주한데 안 하던 해외여행까지 하려니 걱정이 태산이었다. 해외여행을 하려면 여권은 필수이므로 어쩔 수 없이 여권부터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서둘러 발급 받았다.

일단 여권은 준비해놓고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예전과 달리 여행이 자유화되어 돌 지난 손자도 여권을 만들다시피 요즘 대부분 사람이 여권이 있는데 여권 발급 받은 걸 고민하며 밝히는 데는 말 못할 사연이 있다.

한마디로 해외여행은 낭비이고 실익이 없어 가급적 지양해야 한다는 필자만의 생활 철학 때문에 나 자신에게 구속되어 있다. 왜냐하면 태국 우정학교 연수 당시 관광지에서 만난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면서 무엇보다 언어가 소통되지 않으니 가이드 안내대로만 이리저리 시간에 쫓기며 따라다니고 여행 경비를 지나치게 낭비하고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대로 바가지 쓰는 광경을 너무 많이 목격하였다.

그 후 필자는 공직자로서 최소 공직 마감하기까지는 나라사랑하는 마음으로 해외여행은 절대로 안하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남들과 유별나게 생활하고 있다. 그래서 여권을 발급하고서 몇 날을 고민하다 결국 안 가는 쪽으로 결정을 하였다.

40년 공직에 몸담으며 쌓고 다진 나름대로의 생활 철학을 번복하기가 쉽지 않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용납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명목이 나 때문에 한다는 회원들 해외여행이 취소되면 안 되겠기에 추진단에 사정해서 비밀리에 진행하라고 신신당부하였다.

그런데 며칠 후 추진단에서는 오픈해서 전체 의견을 다시 물어 해야 한다고 하고는 곧바로 일일이 다시 조사한 결과 다수가 다음 기회로 미루자고 하였다고 한다. 필자 때문에 직장 모임에서 모처럼 어렵게 계획한 해외여행이 취소되었다하니 마음이 무겁다. 회원들에게 면목없으나 너그러운 양해를 구할 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친구들이 올해 회갑이 되는 해라 고교동창 모임에서는 부부동반 해외여행을 비슷한 시기에 추진하고 있다. 이 모임은 오래되어 여자들끼리도 친숙하여 아내에게도 미안하고 바로 직전 회장을 해서 책임도 있는 터라 친구들로부터 원성이 크다. 이래저래 해외여행 때문에 여기저기서 눈총을 많이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몇 해 전에는 아내 친구들 모임에서 부부동반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는데 대화중에 다음번에는 해외로 나간다기에 분위기 깨지 않으려 대답을 않고 돌아와서는 피할 방법을 찾았다. 언론에 ‘국내명소 여행이 먼저다’하고 글을 써 기고한 내용을 아내에게 보여 주니 익히 잘 알고 있는 터라 강요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이 모임에서도 남편들은 제하고 자기들끼리만 다녀왔다. 심지어 아들딸하고의 가족들 모임에서도 나만 빼고 셋이 다녀왔으니 더 이상 이야기 안 해도 모두들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

더군다나 필자의 아우가 외교관으로 현재 중미의 니카라과 대사로 근무하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남들보다 수월하게 더 많이 해외여행을 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30여 년 전 태국에서 본 우리나라 관광객들의 비효율적 여행과 낭비하는 모습이 아직까지 지워지지 않고 있다.

어느 통계에 보니까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해외여행 비중이 세배로 높다고 한다. 일본은 그만큼 여행도 실속 있게 하고 국민들이 국내 경제 진작에 힘을 모으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도 국내 여행 비중을 늘리고 관광 활성화에 국민 모두가 심혈을 기울여야 외국 관광객이 몰려오고 나라가 융성해진다. 국내명소 여행이 먼저다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홍석원 충청지방우정청 청주우편집중국장.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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