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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소

이종구 (학부모뉴스24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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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11.14 23:17
  • 기자명 By. 충청신문
며칠 전 대전 서구 도마네거리를 지나다, 다급한 소의 표정과 ‘건너지 마소’라는 글귀가 쓰여진, 대전서부경찰서가 한남대학교의 재능기부로 제작한 무단 횡단 금지 안내용 현수막을 보았다. 소의 표정이 무척 걱정스런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어 정감도 있고, ‘마소’라는 글귀가 더 친근감있게 느껴졌다. 모처럼 보는 소의 모습에 무단횡단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5년 전인가 요즘처럼 서리가 내리는 초겨울 손자 녀석이 왔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할아버지, 소가 정말 커요?”하고 묻는다. “그럼 크지. 여기 거실에 들어오면 움직이지도 못 할 거야”하고 답하니, “소를 보았으면 좋겠다”하는 것이었다. 소를 보고 싶다. 아니, 그럼 여태 소 구경도 못했나? 조금만 교외로 나가 농촌에 가면 바깥 마당에 한가로이 되새김질을 하는 소를 늘 볼 수 있었을 텐데….

그래서 소를 보러가자고 논산 벌곡면 농촌 마을로 향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찾아가는 농촌에는 소가 없었다. 그러다가 어르신 한분을 만나 혹, 소를 볼 수 있는 곳이 있는지를 여쭈니 산모롱이 한 구비를 더 가면 소를 키우는 농장이 있다고 알려주어 겨우 찾아 농장의 소를 보게 됐다. 주인의 허락을 받고 축사에 가서 짚도 먹여주고 만져도 보고, 손자는 신이 났었다.

소, 큰 눈망울과 언제 보아도 천진스런 표정이 우리 삶과 함께 해 온 대표적인 가축이다. 12간지의 두 번째이고, ‘천천히 걸어도 황소걸음’, ‘소귀에 경 읽기’, ‘소는 농삿집 밑천’, ‘소는 하품밖에 버릴게 없다’ 등 속담의 주제로, 오래 전에는 초등학교 입학 후 배운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노래, 교과서의 대표적인 삽화로 모내기 철 쟁기와 써레를 끄는 소, 대중가요 중 “소달구지 덜컹 대던 길” 등 소는 우리 삶의 한 부분을 채운 가축이다. 을지문덕 장군과 강감찬 장군의 살수 대첩, 귀주 대첩에서도 소 가죽으로 강물을 막았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뿐만 아니라 소는 농가의 재산목록 1위였다. 장성한 자녀의 결혼 준비와 중·고·대학교에 진학하는 자녀들의 학비를 준비하기 위해 소를 길렀다. 어찌 보면 요즘의 교육보험과도 같았다. 그러기에 농부들은 아침 저녁 소 먹이를 주고 자신들의 식사를 했다. 등을 긁어 주고 추운 겨울에는 소등에 가마니를 옷처럼 덮어 주기도 했다. 소를 키우는 집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소 먹을 풀을 한 망태 베어다 놓고 노는 것이 일과였다. 요즘 같은 늦가을이면 추수한 논에 외양간에 깔았던 지푸라기와 분변을 가져다 군데 군데 쌓아 놓는다. 다음해의 농사를 위해 퇴비용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서리가 내린 아침 그 퇴비덩이에서 피어 오르는 수증기는 픙년을 기약하는 신호 같기도 했다. 그렇게 소는 농가 살림살이의 기둥이었고, 가족과도 같은 존재였었다.

요즘은 한우라 하여 시장에 가면 정육점을 대표하는 고기가 됐다. 각 지역마다 한우 브랜드를 만들고 있다. 물론 우리 소들이 평안하지만은 않았다. 수입개방으로 수입육이 밀려오면서 “광우병 파동”으로 촛불을 켜게 하기도 했고, 가격 경쟁에서 밀려 농가에 시름을 주기도 했다. 퍽 오래전에는 과잉 생산으로 송아지 한 마리 값이 개 한 마리 값보다 싸서 그 귀함을 잃기도 했었다.

청도, 진주, 정읍, 보은 등에서는 민속 소싸움대회를 연다. 요즘은 외국에도 널리 알려져 국·내외의 많은 관광객들이 관람을 하러 오기도 한다. 순하고 천지스런 눈망울의 소들이 서로의 힘자랑을 하며 상대를 미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소는 우리 농가의 큰 기둥이었음을 실감한다.

소는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 민족과 함께 해 온 정말로 ‘하품밖에 버릴 것이 없는“ 고마운 가축이다. 그런데 그 소가 농촌에 가도 보기 힘든 동물이 되었다. 이젠 소도 동물원에서 길러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과학과 문화가 발전하며 우리 주변에는 어느 사이 사라지는 것들이 많다. 늘 곁에 있었거니 했는데 어느 날 살펴보면 없는 것들…. 올해가 가기 전 추억할 것들을 살펴보고 정리하고 보관하며 마음에 새겨보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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