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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황소도 잡는 여자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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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11.20 18:51
  • 기자명 By. 충청신문
 
병원에 입원했다. 몇 달을 고생하던 기침이 멎질 않더니 천식환자처럼 숨을 쉴 때마다 그렁그렁한 소리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 혹시 폐렴일까. 결핵일까. 그동안 여러 병원을 전전했어도 낫질 않아서 가슴 졸이다가 보따리 싸가지고 병원으로 가서 입원한 것이다.
 
어릴 적 이웃에 살던 어른이 숨을 쉴 때마다 나는 소리가 옆에 있는 사람에게도 들렸다. 해소 천식이 있다고 했다.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답답했다. 병원도 멀고 약도 귀하던 시절이고 가난에 찌든 삶에 약인들 먹었으랴. 그렇게 고생하던 어른의 얼굴이 오버랩되면서 덜컥 겁이 났던 것이다.
 
남편이 먼 곳에서 일하기에 혼자 있고 또 나이가 들어가니 나쁜 생각이 많이 든다. 밤새 혼자 앓는 것도 두려웠다. 병실에 들어가니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가냘픈 여인이 옆 병상을 차지하고 누워있다. 대상포진이 걸려 왔다고 한다.
 
날씬하다 못해 뼈만 남은 모습이다. 이래저래 몇 걸음 거치면 알게 되는 것이 시골 사람들이다. 인사를 마치고 하는 말이 황소도 때려잡을 것 같은데 어디가 아파서 왔느냐다. 자기보다 넉넉해 보이고 아프다고 하면서 뽀얀 내 얼굴을 보고 하는 말이다. 견디기 힘들게 아파도 고운 피부와 얼굴에 띈 홍조로 누구에게도 아픈 것 같다는 말을 듣지 못한다.
 
시골로 이사 오고부터 불어난 체중은 옛날 엄마들이 보았다면 부잣집 맏며느리다. 넉넉하다 못해 하늘 높은 줄은 모르고 땅 넓은 줄만 알게 되었다. 흐물흐물하던 팔다리는 단단해져 갔다. 병원에 갔더니 죽을 때까지 골다공증 염려는 안 해도 된다고 의사는 말한다. 건강해졌다고 좋아했는데 한번 아프면 오래간다.
 
요즘은 지병으로 병원에 자주 간다. 검사하고 약을 주면서 의사는 늘 같은 말을 한다. 운동하고 살 좀 빼라고. 그 이후 하루에 이만 보 이상 걸었다. 그랬더니 입병이 심해져 횟수를 줄여야 했다. 운동하면 살은 빠지지만 입병이 더 심해지고 입병이 좋아지면 살이 쪘다. 
 
며칠 전 벤치마킹을 다녀왔다. 그곳엔 문인협회 회원과 음악협회와 합창단이 함께 탑승했다. 우연히 사회를 보게 되고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노래를 마치고 난 후 합창단 단장이란 분이 합창단에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난 몸이 좋지 않아 못한다고 했더니 건강해 보이는데 어디가 아프냐고 한다. 황소도 때려잡게 생겼다는 말을 참은 건 아닐까. 가는 데마다 듣는 소리에 무심하게 넘기려 하지만 속으론 기분이 상한다.
 
넉넉한 몸이 되면서 자주 듣는 말이 참 건강해 보인다란 말이다. 네발로 기어 다닐 정도로 아파도 아무도 믿지 않는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의 일이다. 허허벌판에 집을 지었다. 빈 공간이 많다 보니 세찬 바람이 불면 쌩쌩 소리가 들렸다. 허전한 곳을 가꾸라며 마침 동생 친구가 정원석을 두 차나 가져다주었다. 마당에 쌓아놓고 있자니 답답했다. 남편은 아직 퇴직 전이라 울산에 있었다. 일 할 사람은 오직 나 혼자였다. 정원석을 옮기는 일을 내가 할 수밖에 없다. 처음엔 난감했다. 작은 것이야 별 힘 안 들이고도 할 수 있지만 큰 것이 문제다. 지렛대 원리를 생각했다. 큰 짐을 옮기는 끌차를 돌 밑에 밀어 넣고 배를 이용해 돌을 옮겼다. 힘은 들었지만 그런대로 정원을 꾸밀 수 있었다.
 
그 모습을 지나가는 이웃 사람이 보고는 막노동판에서 일하다 왔느냐고 묻는다. 그냥 빙그레 웃고 말았다. 집 안 청소도 제대로 하지 않고 살았다면 믿을까. 우리 올케도 한마디 한다. 공주같이 살더니 시골 와서 무수리가 다 되었다고.
 
어설프지만 제법 정원다운 모습을 갖추었다. 너무 커서 옮기지 못했던 돌은 휴가차 집에 온 남편과 옮겼다. 돌 옮기기가 생각보다 힘들다던 남편이 저렇게 많은 돌을 어떻게 옮겼느냐며 새삼 놀랐다. 힘보다는 요령이라며 어깨를 으쓱하며 씨~익 웃었다.
사람의 능력은 어디까지일까. 절대 못 할 것 같은 일은 없을 것 같다. 하지 않으려고 해서 그렇지 하려고 한다면 인간의 능력은 무한하리라 생각한다.
 
나를 보는 사람마다 황소도 잡을 수 있는 여자라 말한다. 아무리 그렇게 보여도 말 좀 예쁘게 해주면 안 될까. 너무 강하다는 말만 들어서일까. 나도 작은 곤충에 놀라고 개미도 못 잡는 연약한 여자라 불리고 싶다.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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