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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런천 효과

한기연 시인. 평생교육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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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11.27 15:48
  • 기자명 By. 충청신문
 
주말저녁, 오랜만에 금방 지은 밥으로 저녁상을 차렸다. 반찬은 많지 않지만 햅쌀로 지은 밥 냄새가 식욕을 돋운다. 식탁에 남편이 얻어 온 김장김치 한 포기를 꺼내 놓고 찰기가 흐르는 밥 한 그릇을 펐다. 밥상을 차려 두고 돌아서니 함께 먹자며 채근한다. 간식을 먹은 터라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갓 지은 밥과 김장 김치가 구미에 당기고, 마주 앉아 식사한 지도 오래라 미안한 마음에 함께 밥을 먹었다.
 
요즘에는 집에서 요리를 하는 일이 드물다. 바쁘기도 했지만 남편과 둘이 지내면서 끼니를 챙기는 일에 대해 소원해지기도 했다. 이틀에 한 번 밥을 해서 냉동실에 얼려 놓고, 찌개만 끓여 놓고 김과 계란만 준비해 놓는 정도의 살림을 살고 있다. 고맙게도 남편은 불평불만 없이 냉동실에 얼려 둔 밥을 데워 먹고 출근을 하고, 퇴근 후에도 혼자 차려 먹는 일이 많아졌다. 밖에 음식보다는 집밥을 좋아하고 혼자 밥 먹는 것을 유독 싫어하는데,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혼밥족’이 되어 버렸다. 
 
생활 패턴이 대가족 시대에서 핵가족시대로 변화되고, 1인 가족이 늘어나면서, 혼자서 생활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개인의 사적인 생활과 공간,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불편한 관계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여유를 즐기고 싶어 하는 솔로들이 증가하면서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을 가리켜 혼밥족이라고 부른다. 유사한 의미로 혼자 술을 마시는 것을 ‘혼술’, 혼자 노는 것을 ‘혼놀’ 등 다양한 신조어가 늘어나고 있다. 나 또한 시간에 쫓기는 일을 하다 보니 끼니를 혼자서 해결할 때가 많다. 처음에는 식당에 혼자 가는 것이 낯설었으나 이젠 혼자서 레스토랑까지 갈 정도로 익숙해졌다. 그러나 나의 혼밥은 20대가 혼자의 시간을 여유 있게 갖기 위한 것이기보다는 시간에 쫓겨 어쩔 수 없는 혼밥족이 된 것이다.
 
가끔 주방에서 요란한 도마 소리와 함께 풍성한 식재료로 요리를 할 때도 있다. 멀리 외지에 나가 있는 아들이 올 때 바쁜 틈틈이 재료를 준비하고 음식을 만든다. 아들이 맛있게 먹을 상상을 하며 즐겁게 요리를 한다. 그런데 그때조차도 가족이 함께 밥을 먹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고작 네 명인데도 시간을 내서 식사를 같이하는 일이 어려웠다.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밥을 함께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고 감정을 나누며 공감하게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잘 하는 거짓말 중에 하나는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이라고 한다. 나도 오랜만에 반가운 이를 만나거나 지인을 만나면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을 한다. 그런데 이 말에는 ‘당신과 소통하고 싶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 런천효과(luncheon effect)를 경험할 수 있다고 하는데, 런천(luncheon)은 런치(lunch)와 같은 뜻이지만, 메뉴가 알찬 오찬을 뜻한다. 심리학에서 ‘런천효과(luncheon effect)’는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은 사람에게 긍정적인 감정과 호감이 생기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밥을 함께 먹으며 끈끈한 정을 나누는 삶을 살아왔는데, 가족체제의 변화와 개인 삶의 중요성으로 인해 가족과도 밥을 함께 먹는 일이 일상을 벗어 난 일이 되어 가고 있다. 주말에도 함께 하는 시간이 어긋나는 우리 부부도 특별한 날이 아니면 밥 한번 먹기도 힘들다. 햅쌀의 고소함과 김치의 매콤함이 모처럼 함께 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언쟁을 높이며 싸웠던 어제의 일도 밥 한 끼로 눈 녹듯 사라졌다. 
 
친정집에 들를 때마다 엄마가 늘 하시던 ‘밥은 먹었어?’라는 말도 함께 밥 먹자는 뜻이었을까?
 
한기연 시인. 평생교육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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