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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취미가 뭐예요

강희진 음성예총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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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12.12 16:41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강희진 음성예총 부회장
지난 여름 시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텔레비전이 고장 났으니 빨리 좀 고쳐달라는 내용이었다. 내가 구입했으니 서비스센터에 연락을 하라는 말씀이었다. 알았다고는 했는데 이틀이 지나가버렸다. 다시 전화하신 어머니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텔레비전이 유일한 친구인데 없으니 못살 것 같다고 하시며 끊었다. 속으로 ‘참 유별나시기도 하시지. 마을 경로당에도 나가시고 마실 오시는 분들도 많은데 텔레비전 안 보신다고 뭘’ 하며 혼자 흉을 봤다. 지난 주말에 우리 집 텔레비전이 고장이 났다. 
 
주중이면 나가서 활동하는 시간이 많으니 별로 필요성을 못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 주말이었고 남편은 출장을 갔다. 학기도 끝나서 강의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됐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보지 못했던 최신영화를 다운 받아 보면서 휴식을 취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추위에 나가지 않고 아랫목에서 뒹굴며 영화를 본다는 생각에 즐거움으로 충만했다. 텔레비전을 트니 소리는 나오는데 화면이 나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할 수 없지 하는 생각으로 핸드폰을 가지고 놀았다. 싫증나서 책을 읽고, 미뤘던 청소도 하고 요리도 해 먹고 시간을 보냈다. 토요일은 그렇게 지나갔다. 일요일에 눈을 뜨자 바로 리모컨을 찾았고, 거실에 앉으면 또 리모컨을 들고 나오지 않는 텔레비전에게 다가가서 어디가 고장이 났는지 살펴보고 만져보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는 쓴웃음이 나왔다. 지난여름 흉보았던 시어머니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결혼 예물을 장만할 때도 남편과 상의해 텔레비전은 사지 않는 것으로 했다. 친정식구들이 그래도 있어야 한다며 만류해서 가장 작은 것으로 구입했었다. 신혼집을 방문한 시부모님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작은 텔레비전을 보고 놀라워했다. 별로 좋아하지 않아 작은 텔레비전으로도 불편함 없이 살았다. 아이들 키우면서 텔레비전을 좋아하는 큰 아이와 전쟁을 치르며 텔레비전을 사온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그리고 고장이 날 때까지 수십 년을 사용했다. 그랬던 터라 텔레비전에 대한 미련이 없다고 생각했다. 남들처럼 드라마에 빠져 보지도 않았던 터라 난 어머니와 다를 것이라는 우스운 생각을 했었나 보다. 많은 세월을 살아오면서 자연스럽게 미디어가 내 생활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노인의 취미 1등 순위가 텔레비전 시청과 라디오 듣기라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지금의 노인들은 어려운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다. 일제치하를 거쳐 6·25전쟁의 소용돌이를 거치고 자식들의 교육에 올인하며 살았던 분들이다. 취미활동은 고사하고 노후대책도 못하고 사신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텔레비전이 최고의 친구이며 동시에 취미활동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 어르신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방송주제가 취미였는데 손자들이 “취미가 뭐예요?” 하고 물으면 난감하다 했다, 먹고살기 바빠서 취미활동은 꿈도 못 꾸었고 아이들 독립하고 퇴직하면 시작해야지 했었다고 한다. 막상 퇴직을 하니 몸이 늙어 그렇게 하고 싶었던 등산도, 테니스를 치는 것도 할 수가 없었다면서 최소한 퇴직하기 10년 전부터는 노인이 된 후를 생각해서 취미활동도 준비해야한다는 인터뷰를 보았다. 
 
맞는 말이다. 그 교훈 또한 우리에게 해당하는 말이지 싶다. 그들은 노후준비를 못하고 이미 노인이 된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의 정서적 지지는 미디어가 해 주고 있고 세상 읽기도 가장 접하기 쉬운 텔레비전을 통해서 하고 있다. 시청률을 생각해야 하는 방송국은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젊은 층에 맞춰져 있다. 최근 우리나라는 노인인구가 늘어나 고령사회에 살고 있다. 이제는 노인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에도 신경을 써야 하지 않을까? 우리 모두 바빠서 자주 찾아가지도 못한 어머니 아버지들이다.
 
강희진 음성예총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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