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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김영란법 개정, 본래 취지 흔들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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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12.13 16:11
  • 기자명 By. 충청신문
부정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이 결국 손질을 받게 됐다. 공직자 등이 받을 수 있는 선물 상한액을 농축수산품과 농축수산물 함량이 50%가 넘는 가공품에 한해 10만원으로 올리고, 경조사비 상한액은 5만원으로 내리는 게 개정안의 골자다. 이로써 식사·선물·경조사비 상한액은 ‘3만·5만·10만원’에서 ‘3만·10만(농축수산물)·5만원’으로 조정됐다.
 
축의금·조의금 등 경조사비 상한액을 반으로 줄이기로 한 점은 환영할 만하다. 법 시행 이후 10만원이 표준 경조사비로 굳어졌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국민의 경조사비 부담이 외려 커졌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5만원으로 내린 것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국민이 지난해 경조사비로 쓴 돈은 무려 7조2700억원, 가구당 50만8000원에 달한다. 경조사비 부담으로 허리가 휘는 국민의 고통은 줄여주는 게 마땅하다.
 
선물 상한액 조정에 대해서는 긍정과 우려의 시각이 교차한다. 기존 5만원에서 농·축·수산물에 한해 10만원으로 선물 상한액을 높인 건 농어민의 처지를 감안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힘든 업종은 비단 농어업 분야뿐만이 아니다. 특정 업종만 배려해준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충청신문은 어제 김영란법 개정과 관련해 엇갈리는 업종별 ‘희비’를 보도했다. 농업유통업계는 환영하는 반면 외식업계는 망연자실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식사비를 3만원에서 5만원으로 올려야 한다고 요구해 온 외식업계가 이번 시행령 개정을 계기로 목소리를 다시 높일 가능성이 많다. 외식업계 등의 반발에 권익위는 어떤 대답을 내놓을 것인가. 예외를 계속 허용하면 법의 취지와 체계가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불과 2주 전 개정안이 부결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김영란법은 한국 사회를 크게 바꿔 놨다. 관행처럼 행해지던 부정한 청탁과 과도한 접대에 제동이 걸리면서 청렴문화를 확산시켰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국민권익위도 ‘부정청탁금지법 시행 1년의 변화와 발전방향 대국민 보고대회’에서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공직사회에서의 반부패 체감효과가 뚜렷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청탁금지법은 거절하기 부담스러운 청탁이 들어와도 떳떳하게 뿌리칠 수 있는 좋은 근거가 됐다. 선물을 받으면 뇌물이 아닌지 생각해보게 했고, 과한 환대를 받으면 부정한 접대는 아닌지 되돌아보게 했다. 학교, 기관 등을 방문할 때 번거롭고 찜찜했던 ‘인사치레’를 신경 쓰지 않게 해줬다. 학교 ‘촌지’가 줄고, 기업 접대비가 축소됐다는 조사에서도 법의 효능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법 시행 1년3개월 만에 서둘러 시행령을 개정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가뜩이나 예외 조항이 많아 허술하다는 비판을 받는 게 이 법이다. 그런데 예외를 더 두기 시작하면 형평성 문제가 커지고 서서히 누더기로 전락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권익위는 대국민보고에서 “(선물과 경조사비 등의) 가액 범위를 일부 조정한다고 해서 법의 본래 취지가 후퇴하는 건 아니다”고 강조했지만, 그 판단과 평가는 국민들의 몫이다.
 
부패 척결을 목적으로 만든 법을, 산업 안정을 이유로 개정하는 것이 옳은지도 따져보아야 한다. 법이 현실과 지나친 간극이 있으면 지속성과 실효를 거두기 어려운 만큼, 일부 조항을 현실에 맞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를 핑계로 법 자체를 후퇴시키려 하거나 형평성을 상실하면 갈등만 양산할 따름이다. 자칫 잘못하면 둑을 무너뜨리는 ‘개미구멍’이 될 우려가 있다. 이번 개정안이 자칫 김영란법의 긍정적 변화와 그 기류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청탁금지법의 기본 골격은 훼손돼선 안 된다. 중요한 건 금액제한이 아니라 부정청탁 또는 과도한 접대문화가 사라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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