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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또 한 번의 퇴직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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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12.18 17:10
  • 기자명 By. 충청신문
 
두 손을 마주 잡더니 큰 병에 든 음료수와 포장 테이프 두 개를 건넨다. 줄 것이 이것밖에 없다는 말과 함께 더 줄 수 없음을 아쉬워한다. 그 마음이 느껴지면서 감사함에 마음이 찡해온다. 헤어짐을 안타까워하면서 언제든지 이곳에 오면 자기를 만나고 가라고 한다.
 
우편물 취급소를 하는 분인데 남편과 아주 친하게 지냈나 보다. 칠십을 넘긴 분이 서운한 마음을 그렇게 표현하는 모습에 남편이 성격이 유순해서 여러 사람과 잘 지낸 것 같아 뿌듯하다. 
 
4년 정도 근무한 곳을 떠나려 한다. 퇴직을 한 후 일 년 정도 집에서 쉬다가 재취업을 해서 대천에서 유람선 선장으로 일했다. 집에서 두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를 오간 세월이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세월이 부쩍 지나가 버렸다.
 
내년 2월까지 하려고 했는데 내가 자주 아프다 보니 혼자 두면 건강이 더 악화될까 걱정이 들었나 보다. 후임이 오지 않아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일할 사람이 오면서 마음 편히 그만둘 수 있다면서 좋아했다.
 
나는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기 4일 전에 대천으로 갔다. 그동안 정을 나누며 산 사람들과 작별 인사도 하고 혼자 짐 싸는 쓸쓸함을 느끼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마음이 약한 사람이고 나이가 들면서 외로움을 많이 타는 남편은 나를 보자 만면에 가득한 미소를 띤다. 
 
섬에 살면서 작은 어선을 갖고 대천으로 삼치를 잡으러 온 부부가 비 오는 날 추위에 떨면서 식사하는 것을 본 남편이 유람선으로 불러 따뜻한 곳에서 편하게 식사하게 한 것이 인연이 되었단다. 대천으로 나오면 남편부터 찾아오곤 했단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라 많은 사람들을 도와줬나 보다. 어부 부부는 돔과 돌미역을 여객선으로 보내왔다. 함께 식사할 시간도 갖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면서 마음의 선물을 보내온 것이다. 
 
작은 어선의 선주들도 유람선을 찾아와서 인사하고 간다. 그동안 마음을 주고받은 모습인 것 같아 보고 있는 나도 흐뭇해진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4년 동안 많은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며 살았다는 증거이다. 
 
어선 일을 하러 온 베트남 사람들과도 친분을 쌓았다. 더운 나라에 살던 사람들이라 추위에 약하다. 찬 바닷바람에 덜덜 떠는 것을 보고는 옷이며 이불들을 구해달라더니 그 사람들에게 전해주었다. 외국인 어부들을 자식이나 동생같이 대해주니 크고 작은 어려운 일들과 어려운 일이 있으면 찾아와 상의했단다.
 
베트남 사람들도 우리나라 사람들과 같이 정이 많은 것 같다. 생선을 잡아오면 남편 것을 따로 준비해 두었다가 먹으라고 주었다. 우리가 가면 반가운 얼굴로 다가와 이것저것 이야기하고 작은 것도 나누어주려고 한다.
 
열악한 숙소와 선주들의 차가운 대접에도 그들은 불평 한마디 못하고 산다. 요즘 베트남에선 일자리가 없다며 힘들어도 일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한다. 포근한 숙소를 마련해주면 좋을 텐데 컨테이너에서 사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깨진 창문, 전기난로와 장판으로 추위를 견디는 모습에 가슴이 아프다. 
 
선주가 자식처럼 대해주길 바라지만 그의 행동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런 사정을 알고 위로해 주고 아껴주어서 그런지, 정이 듬뿍 들어서인지 헤어짐이 서운한가 보다. 남편보고 안 가면 안 되냐고 한다. 남편은 그들이 힘들게 사는 게 안타깝다며 작은 선물을 건넸다.
 
삶은 어울려 살아야 하는데 나는 사람을 가려서 사귄다. 남편은 누구에게나 친절하다. 누구에게나 친절을 베푸는 남편보고 과잉 친절이라고 나무라곤 했다. 이곳 사람들이 남편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정이 없는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집에 와서 쉬면서도 그동안 함께 한 사람들과 자주 연락한다. 그들도 보고 싶다며 헤어진 지 오래지 않았는데도 다녀가라 한다. 그동안 든 정이 서로의 가슴에 그리움을 남겼나 보다.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사람 인(人)자는 서로 기대고 도와가며 살라는 뜻이다. 그걸 실천하고 산 남편이 존경스럽다. 거리를 두고 상대를 대하지 말고 너그럽게 품을 수 있는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 같다. 참다운 삶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 남편과 술 한 잔 기울이며 그간의 수고에 대한 감사를 해야겠다.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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