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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어머님의 손 만두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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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12.19 17:52
  • 기자명 By. 충청신문
 
겨울이 오면 으레 생각나는 음식 중 하나가 만두다. 작은아이가 온다는 전화를 받고 만두 좀 만들어 먹여 보내야겠다는 생각에 김치냉장고를 연다.  
 
김장김치는 쫑쫑 썰어 다지고 당면은 삶아서 썰고 버섯은 쪽파와 함께 잘게 다지고 돼지고기 간 것은 맛술과 생강과 소금을 넣고 조물조물해 볶아서 만두 속을 먼저 만들어 놓는다. 만두피를 만들 밀가루도 찬물로 반죽해 한참 치대어 비닐봉지에 싸놓는다. 만두피를 밀 때 사용하는 도마와 짜리몽땅한 밀대도 준비한다.
 
만두 만들 재료를 다 준비해놓고 나니 젊은 날 어머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르며 먹먹해져 온다. 내가 시집와 두 달 지난 섣달그믐날 밤은 너무 추었다. 그 추운 설 전날 밤 어머니는 만두를 만드신다고 부산하게 움직이셨다. 설날에 큰집에서는 만두 차례를 지내서 낮에 만두를 많이 만들었기 때문에 그 밤에 만두를 만들 필요가 없었다. 아니면 진즉에 만들어 놓던지 차례를 지내고 나면 그걸 나눠 먹으면 되는데 어머니는 부득이 만두를 만들려고 하시는지 야속했다. 
 
하루 종일 입식부엌도 아닌 큰 댁에 가서 설 음식을 만들고 온 터라 몸도 얼고 고단하여 따뜻한 아랫목에 눕고 싶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김치를 이겨서 탈수기에 짜는가 하면 살코기보다 비계가 더 많은 돼지고기와 지 고추를 다지고 두부는 체에 받쳐 놓고 밀가루 반죽은 또 어찌나 많이 치대고 계시던지 정말 질리게 하였다. 반죽이 어지간히 되었는지 방바닥에 푸대 종이를 깔고 큰 도마와 홍두깨를 갖다 놓으시더니 한술 더 떠 칼국수 미는 것처럼 반죽을 둥그렇고 얇게 밀어보라고 하셨다. 
 
어깨너머로 친정어머니가 칼국수 만들려고 안반만하게 밀어 놓은 반죽은 보았지만 홍두깨는 만져 보지도 않았는데 이 노릇을 어찌할지 황당했다. 어머니께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말씀드리니 당신이 미는 걸 보고 배우라고 하셨다. 갓 시집온 새색시임은 안중에도 없으시고 장씨 집안 맏며느리에게 전수할 숙원사업인 양 어머니가 먼저 열심히 치대며 시범을 보이시더니 한번 해보라고 하셨다. 홍두깨가 무거워서 힘에 부쳤다. 널빤지 같은 반죽을 홍두깨로 한번 말아서 손바닥을 양옆으로 밀고 또 기를 쓰고 밀어보았지만 자꾸 삐뚤삐뚤 넓어지기는커녕 얇고 두꺼워 더 망쳐놓았다. 
 
이 모습을 보다 못한 어머니는 다시 홍두깨를 조절하여 반죽 위에 밀가루를 훌훌 뿌리고 이리저리 돌려가며 밀더니 금세 작은 멍석만하게 만두피를 만들어 놓으셨다. 손놀림이 그야말로 예술이고 어머니의 온전한 삶이 배어있었다. 널빤지 같은 만두피가 매끄러우니 그 위에 붓으로 그림을 그리면 한 폭의 산수화가 탄생할 것만 같았다. 
 
산수화 대신 우린 어머님이 시키시는 대로 초등학생인 시동생과 시누와 함께 만두피를 사발로 찍어냈다. 동그랗게 떼어지는 만두피가 신기했다. 만두는 친정에서 만들어 보아서 제법 만들 줄 알았다. 만두피에 속을 넣고 꼭꼭 여며서 양쪽 끝을 붙이면 둥근 모양의 만두가 완성된다. 만두의 끝을 맞대어 둥글게 빚은 것은 돈처럼 생긴 만두를 먹으며 부자가 되기를 기원했던 것에서 유래된 풍습이라는데 어머님도 둥그렇게만 만두를 만드셨다. 밤이 이슥하도록 만든 만두는 두레상에 가지런히 널렸고 어머님은 가마솥에 장작불을 지펴 그날 밤 만든 만두는 죄다 쪄서 대소쿠리에 담아놓으셨다. 
 
제사를 지내지 않아 설음식을 많이 하지 않는 우리 집에 설 쇠러 온 자식들한테 만두라도 들려 보내려고 어머님은 잠도 주무시지 않고 만두 만들기로 섣달그믐밤을 보내셨다. 섣달그믐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 하여 우리를 못 자도록 하기 위하여 만두 만들 계획을 하셨을지도 모른다는 짐작으로 시동생과 한통속이 되어 가설을 쓰기도 하였지만 모두가 지나갔고 그 모든 것이 그리움뿐이다.
 
비닐에 싸놓은 말랑말랑한 반죽을 엄지손가락만큼 둥글둥글 썰어서 밀대로 민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만두 만드는 도구만 다를 뿐 속 재료는 똑같다. 나도 둥그런 만두를 만들어야겠다. 그런데 만두 속이 푸슬푸슬하니 영 이상하다. 두부가 빠졌다. 이래가지고 어머님의 손 만두 맛이 날까. 일단 한 솥 만들어 쪄보자. 
쿵!쿵!. 아이 발소리가 들려온다.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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