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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나에게 조금 더 시간을 주자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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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12.25 16:39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부유한 귀족 가문에 딸이 태어났다. 그 가문에는 딸이 태어나면 돼지코를 갖게 된다는 저주가 있었다. 그 아이는 돼지코를 가지고 태어났고 저주를 풀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다. 그녀와 같은 종류의 사람이 그녀를 사랑해 주는 것이다. 부모는 그 아이를 대저택 속에서 외부인과의 접촉을 차단한 채 25년을 키운 후 그녀를 사랑해 줄 귀족 집안의 자제를 물색했다. 부유한 귀족 가문의 사위가 될 욕심으로 많은 남자들이 자원했지만 돼지코를 보면 모두 도망가 버렸다. 
 
그 가문의 비밀을 파헤칠 욕심을 가진 기자가 몰락한 귀족 가문의 남자를 고용해서 사윗감 후보가 되게 한 후 그녀에게 접근토록 하였다. 둘은 사랑에 빠졌고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한 남자는 자신이 돼지코의 저주를 풀지 못할 것을 알고 말없이 그녀를 떠난다. 사실 그 남자는 귀족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돼지코 때문에 떠났다고 생각한 그녀는 집을 떠나 세상을 만난다. 그러던 어느 날, 거울 속 자신의 돼지코가 참 사랑스럽다는 생각을 한다. 순간 놀랍게 저주가 풀리고 더 이상 그녀의 코는 돼지코가 아니었다. 그녀와 ‘같은 종류의 사람’이란 바로 ‘그녀 자신’을 의미한 것이다. 
 
영화 ‘페넬로피’의 줄거리다. 동화 같지만 이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성장 스토리라고 할 수 있다. 페넬로피만이 아니라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돼지코를 가지고 성장하며, 성장 과정에서 저주받은 돼지코를 가리고 숨기고 원망하고 부인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돼지코의 저주를 푸는 방법은 자신의 돼지코를 사랑하는 것이다. 
 
물론 자기를 사랑하기란 쉽지 않다. 못나고 지질한 점들을 많이 알고 있는데 자기를 사랑하는 일이 어찌 쉽겠는가? 게다가 남이 보는 것보다 자신의 눈에는 더 못나고 커 보이고, 남의 돼지코는 잘 보이지도 않고 심지어 돼지코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엄친아’, ‘엄친딸’도 모두 자신만의 돼지코를 가지고 있다. 
 
필자도 필자의 돼지코가 있었고 어느 날 페넬로피처럼 돼지코의 저주를 풀 수 있었다. 저주를 푸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자신을 믿고 기다리며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며 어제보다 조금 나은 내가 되는 것이다. 조급해하지 않고 그렇게 시간이 쌓이면 조금씩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나로 변해 가고, 어느덧 내 눈에 돼지코가 보이지 않는다. 돼지코의 저주는 이렇게 어느 날 갑자기 풀리게 된다. 
 
‘멋진 사람이 되어야지’라는 결심만으로 멋진 사람이 되는 일은 결코 없다. 멋진 나를 만나는 일은 결심으로 되는 게 아니라 기다림으로 되는 것이다. 페넬로피가 자신의 돼지코를 사랑스럽다고 느끼게 된 것은 ‘내 돼지코를 사랑해야지’라는 결심 때문이 아니라 세상과 만나며 그 속에서 보낸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서 된 것이다. 우리에게 조금 더 시간을 줄 필요가 있다. 자신을 믿고 기다리는 속에서 돼지코의 저주는 스르르 풀린다.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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