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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포럼] 다시 처음처럼

박상희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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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12.28 16:47
  • 기자명 By. 충청신문
▲ 박상희 피아니스트

시간이 흘러간다. 가만히 앉아있으면 해가 뜨고 지고, 바람이 불고, 다시 달이 차고 기우는 것을 노상 평범하게 받아들일 텐데, 이 시간이라는 것이, 날짜라는 것이 사이클을 만들고 시작과 끝을 만들어버렸다.

무한궤도로 달리는 시공 속에 있으면 아마도 끝없는 우주 유영을 하듯 아득하고 정지된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시작과 끝 점이 우리들을 다시금 마음을 추스르게도 하고, 희망을 품게도 하며, 고통을 덮는 기회를 주는지도 모르겠다.

마냥 좋을 것 같았던 새해는, 늘 시간이 흐르면서 깨닫는다. 아, 어제와 다르지 않구나. 내가 세운 새로운 계획들은 다시 올 새해에도 새로운 다짐에 올라가겠구나. 새 희망은 다시금 일상을 살아내면서 방향을 비틀기도 하고, 뭉개지기도 한다.

오랜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해가 반복되면서 알게 되는 것 같다. 꿈을 꾸어도 되는 일과, 꿈을 꾸면 안 되는 일, 그리고 꿈이 이루어지게 해야 할 일들과 이루기 위해 해야 할 일들도. 변화한다는 것, 발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일인지도 새삼 깨닫는다.

그래도 새해를 맞으면 알 수 없는 벅차오름을 느낀다. 마치 인생의 새로운 막이 펼쳐질 것 같은 두근거림,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은 기대감 등. 이런 느낌을 음악과 함께 느끼고 싶다면 빈 필하모니의 신년 음악회를 찾아보자.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와 빈 국립 발레단의 춤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1839년에 시작된 이 음악회는 가장 많은 관객이 찾는 클래식 공연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암울했던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음악회였다고 한다.

요란한 새해맞이 보다는 정갈한 다스름을 원한다면, 조용하고 사색에 잠길 수 있는 음악도 있다. 새해 메시지가 담겨있지는 않지만, 생각을 정리하고 내면의 소리에 집중할 수 있는 음악들을 찾아보자.

개인적으로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추천한다. 사 장조(G Major)가 주는 따뜻함과 편안함이 잘 녹아있는 곡으로 첫 번째로 연주되는 ‘아리아(Aria)’는 매우 유명하다. 슈베르트는 사 장조(G Major)가 주는 느낌에 대해 목가적인 소리, 평화로운 열정, 진정한 우정과 사랑이라고 표현했다.

생상의 동물의 사육제 중 ‘백조’는 피아노와 첼로 두오 곡으로 역시 같은 조성의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같은 조성은 아니지만, 바이올린 현의 G선에서만 연주하게 하였다고 하여 이름이 붙은, 바흐의 'G 선상의 아리아'도 감상하길 추천한다.

드뷔시의 '꿈'은 피아노 독주곡으로 살랑거리는 나뭇가지가 창밖에서 아른 거리듯, 은하수를 건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에릭사티의 ‘짐노페디’는 단순한 구조와 선율이 복잡한 생각이나 마음을 정리하는데 도움을 준다. 베리오가 작곡한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작품들도 추천한다.

2017년 한 해는 세상이 변하는 소리를, 모습을 보아왔던 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조금은 숨통이 틔였던 해가 아니었나싶다. 빛을 받은 공연계 외의 모습들에 대해 일일이 적을 수는 없지만, 고군분투하며 자신의 자리에서 빛을 발산했던 모든 음악가(를 비롯한 모든 예술가)들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윤이상 탄생 100주년을 맞았던 2017년, 위기에 처할 뻔 했던 통영 국제음악제가 잘 치러진 것도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고 신영복 교수의 ‘새해’라는 글을 함께 나누고 싶다. “세모(歲暮)에 지난 한 해 동안의 고통을 잊어버리는 것은 삶의 지혜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잊지 않고 간직하는 것은 용기입니다. 나는 이 겨울의 한복판에서 무엇을 자르고, 무엇을 잊으며, 무엇을 간직해야 할지 생각해봅니다.”

새해에도 모두들 소원성취하시고, 건강하시기를 바란다.

박상희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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