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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밤마실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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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1.02 16:36
  • 기자명 By. 충청신문
▲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저녁밥을 먹고 별들의 경호를 받으며 아줌마 셋이 카페에 모였다. 밤중에 친구 집으로 마실 가는 것도 좋지만 가족들에게 부담을 준다 하여 이곳으로 정했다. 저녁식사를 같이하고 2차로 차를 마시는 것도 아니고 일부러 차만 마시러 밖에서 만난다는 것은 드문 일이므로 우린 여기 카페로 밤마실 온 기분이었다. 식구들 저녁을 챙겨주고 운동복 차림으로 나온 친구와 슬리퍼를 끌고 나온 친구의 얼굴이 평안해 보였다. 해방감을 얻은 모습이랄까. 왠지 그래보였다.

우린 가족이야기, 지인들이야기, 옛 추억을 왔다 갔다 하며 아메리카노를 시켜 마셨다. 개업한 지가 얼마 안 되었는지 주로 젊은 층의 손님이 있는 공간에서 우리는 말 한마디라도 뒤질세라 열을 올리며 수다를 떨었다. 남편 흉을 보는 친구는 이상하게 칭찬으로 들렸고 외성적인 친구는 어떻게 그렇게 남의 소식을 잘 아는지 동네 소식 듣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렇게 여유있게 밤마실을 온 우리는 행복했다.

집에 텔레비전이 없던 시절, 남녀노소 동네사람 거의가 이집저집으로 마실을 다녔다. 어둠이 동네골목으로 들어오면 집에서 들락날락 거리며 친구들이 모였나를 살폈다. 또래들은 밤하늘에 겨울별이 총총해지면 슬슬 동네 어귀로 모여들었고 오늘은 뉘 집에 가서 놀 것인가를 그 자리에서 정하여 몰려갔다. 낮에는 주로 밖에서 제기차기 고무줄놀이, 땅따먹기, 썰매타기 같은 놀이를 하며 즐겁게 보냈고 밤에는 따뜻한 방에서 놀 수 있는 윷놀이와 귀신놀이, 공기놀이, 실뜨기, 화투치기를 하고 놀았다. 놀이도구는 자연과 생활 주변에서 찾기도 하고 직접 만들었으며, 놀잇감을 만드는 과정도 놀이의 하나였다.

겨울밤에 게임을 하며 한참 놀고 나면 배가고파서 밤참을 즐겨 먹었는데 그날 밤참은 그 집에서 먹을 것을 준비하였고 각자 조금씩 싸들고 온 것을 먹기도 하였다.

어떤 날은 화투를 쳐서 지는 팀이 밥 훔쳐오기도 하였고, 훔쳐온 밥은 화롯불에 얹어 김치, 고추장, 들기름 넣고 비벼 먹기도 하였다. 냄비 바닥에 누른 밥을 긁어 먹는 맛은 그 어떤 맛과 비교가 될 수 없었다.

한번은 내기에 져서 친구와 짝을 지어 윗집으로 밥 서리를 하러 갔다. 어린 가슴은 콩닥콩닥 서로 망을 보고 도와가며 떨리는 손으로 가마솥뚜껑을 여니 밥주발 하나가 들어있었다. 들키면 큰일이니 머뭇거릴 새 없이 재빠르게 움직여 밥을 쏟아 가지고 나와야 하는데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날 밤은 임무완수를 하지 못해 밤참을 먹지 못했다.

“에구 달랑 밥 한 그릇 있는 것을 누가 가져 갔누” “우리 집에 와서 달라고 하지 않구 딱해라” 창호지 문틈으로 들리는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이른 아침부터 담 너머로 넘어온 그 댁 할머니의 성화가 있었다한다. 할아버지께서 장에 가셔서 오시면 드리려고 밥 한 그릇을 따뜻한 가마솥에 넣어두었는데 그 밥이 없어져서 할아버지는 밥 대신 고구마로 끼니를 드셨다고 한다. 도대체 우리 말고 또 어느 팀이 일을 벌였을까? 잠결에도 귀가 쫑긋 하니 의문이 갔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얼마나 안쓰러우셨을까. 할머니는 밤새 속상해서 잠도 못 주무시고 식전부터 푸념을 하신 것 같다.

저녁을 먹고 그 밤중에 또 무슨 밥을 먹는다고 서리를 하러 다녔는지 모르겠다. 하필이면 밥내기를 하였는지 하긴 그때에는 그것도 놀이의 하나였으니까. 동네 어른들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일부러 솥에 밥을 더 많이 넣어두는 집도 있었다. 밥이 밤참이 되고 간식이 되기도 했다. 겨울철 간식은 고구마가 흔한 간식이었지만 매일 먹는 고구마는 질려서 먹지 않으니 고구마 말랭이를 만들어 먹기도 하였다. 어머니의 특선요리다. 찐 고구마를 삐져서 양지바른 곳을 찾아 발에 널면 따스한 햇빛과 차가운 바람이 내통하여 쫀득쫀득한 고구마 말랭이가 만들어져 겨울철 최고의 간식이 된다. 우리는 밤마실을 다니면서 많은 놀이를 즐겼고 어린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마실 다녔던 겨울밤이 나의 정서의 척추였다.

지금 아이들은 우리가 카페로 갔던 것처럼 밤마실은 주로 피시방이나 카페로 간다. 전자기기가 발달함에 따라 아이들은 보드게임, 컴퓨터 게임, 비디오게임 같은 놀이를 즐긴다. 과학이 발달하여 새로운 놀이기구가 자꾸 생기고 외국놀이가 들어오니 당연히 놀이가 변할 수밖에 없겠다 생각하지만 아이들에게 우리가 했던 전통놀이를 많이 체험하게 해주고 싶다.

아이들은 사회적으로 무서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니 긴장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친구 집 오가는 일과 모든 일들을 부모의 허락을 맡아야 하고 또 지정된 장소에서 놀 수밖에 없다. 우리어른들도 지인의 집에 가는 일도 아무 때나 불쑥불쑥 들어가지 않지만 왠지 집보다 밖에서 만남이 편할 때가 많다. 아이들 놀이가 변하는 것처럼 마실 가는 일도 시대적 변화에 흐름이려니 생각한다. 씁쓸하지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나 싶다.

카페 문 닫을 시간이라는 주인의 멘트에 다음번 밤마실을 기대하며 일어섰다.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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