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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반딧불이

강희진 음성예총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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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1.09 15:56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강희진 음성예총 부회장

아주 오래 전에 소설 하나를 읽었다. 지금 다시 읽고 싶어서 제목을 생각해 보려고 하지만 도무지 생각나지 않아 안타깝다. 소설 속 주인공이 군대에 있을 때 편지로 이별을 통보하고 떠난 여인이 있었다. 군 제대 후에도 연인을 잊지 못해 수소문하다가 외국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고 그녀를 찾아 비행기를 탄다. 우여곡절 끝에 연인을 만나지만 결국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임을 확인한다. 연인의 멀어져 가는 뒷모습 뒤로 붉은 석양이 물들고 벤치에 앉아 황홀한 석양이 바다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여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고 있는 것을 마지막으로 소설은 끝이 났다. 소설 속에 펼쳐진 그 노을을 작가가 얼마나 아름답게 묘사했던지 꼭 한번 가보리라 마음먹었는데 세월 속에 묻혀 그 소설제목을 잊어 버려 그 장소를 기억하지 못한다.

코타키나발루의 석양이 세계 3대 석양 중 하나라는 말을 듣고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 여행지로 선택을 했다. 대학원 선후배 4명이 가기로 했는데 출발 당일 독감으로 2명이 못 간다는 연락이 와서 잔뜩 기대했던 여행이 바람 빠진 풍선이 되어 버렸다. 취소를 하고 싶었지만 단순 변심으로 인한 당일 취소는 50%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는 여행사측의 답변을 듣고 대충 짐을 꾸려 2명만이 떠나게 되었다.

코타키나발루의 석양은 3월에서 5월 건기에 와야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다고 가이드는 설명했다. 그래도 아쉬운 대로 바다 위로 펼쳐지는 노을을 감상했다. 소설로 읽었던 그 노을의 감동은 아니었지만 이국의 정취가 잠시 나를 황홀하게 물들였다. 그 다음 일정이 반딧불이를 보러 가는 것이었다. 코타키나발루 중심지에서도 한 시간 30분을 달려 바다와 강이 만난다는 강가로 갔다. 보트를 타고 강 한가운데로 나갔다. 비 온 후라서 달님은 구름 속에서 희미하게 얼굴을 내 밀고 있었다. 달빛에 비친 물그림자의 아름다움만으로도 충만했다. 보트 위에서 소리 없이 반딧불이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 주위가 깜깜해지고 맹그로브 나무 위에서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반딧불이가 빛나기 시작했다. 모두들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보트 위의 관광객들은 아쉬움과 감동의 감정들을 쏟아냈다.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어린 시절 이후 처음 본다는 분들이 많았다. 이런 아름다운 반딧불이를 환경의 변화로 더 이상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없다는 아쉬움에 대해 얘기들을 했다. 30분 정도 보트를 타고 다니면서 반딧불이를 감상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반딧불이의 빛은 암컷이 수컷을 유혹하기 위한 사랑의 신호라고 알고 있다. 그것을 이용해서 가이드가 손전등 불빛으로 유혹하자 우리 보트 위로 반딧불이 들어와 머리 위로 가득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두 손으로 가만히 잡아 소원을 빌고 날려 보내라는 여행사 측의 이벤트였다. 두 손으로 잡고 보니 ‘형설지공(螢雪之功)’의 고사가 무색할 정도로 희미한 불빛을 내 뿜었다. 반딧불이의 종류가 1900종이라는데 어릴 적 내가 잡고 놀았던 우리나라 반딧불이 보다는 작고 빛도 희미했다. 손 안의 반딧불이는 화려하게 빛나지 않았지만 날려 보내 줬더니 그 무리로 돌아가 다시 반짝반짝 빛나는 반딧불이 트리를 만들었다.

하나하나는 미약한 빛이었지만 돌아가 맹그로브 나무 위에서 펼치는 춤사위는 황홀했다. 그것을 보면서 지난해 광화문의 촛불을 떠올렸고, 세월호 참사 때 자원봉사자의 물결이 스쳐 지나갔다. 우리 모두는 이름 없는 반딧불이 처럼 화려하지도 빛나지도 않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사회라는 이름으로, 국가라는 이름으로 모여 빛을 발하면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물결이 된다는 것을 경험했다. 풍광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진리의 깨달음이 있는 코타키나발루의 석양을 찾아 떠난 여행은 오랫동안 감동으로 남을 것 같다. 독감으로 인해 함께하지 못한 후배들과 만나 여행이야기를 하면 ‘우리’라는 아름다운 반딧불이 공동체 이야기로 꽃을 피울 것 같다.

강희진 음성예총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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