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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내 인생의 만남

허영희 대전보건대 간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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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1.14 15:32
  • 기자명 By. 충청신문
▲ 허영희 대전보건대 간호학과 교수
동화작가 정채봉 님의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 중에 이런글이 있다. ‘가장 잘못된 만남은 생선과 같은 만남이다. 만날수록 비린내가 묻어 오니까. 가장 조심해야 할 만남은 꽃송이 같은 만남이다. 피어있을 때 환호하다가, 시들면 버리니까. 가장 비참한 만남은 건전지와 같은 만남이다. 힘이 있을 때는 간수하고 힘이 닳아 없어질 때는 던져 버리니까. 가장 시간이 아까운 만남은 지우개 같은 만남이다. 금방의 만남이 순식간에 지워져 버리니까.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손수건과 같은 만남이다. 힘이 들 때는 땀을 닦아주고 슬플 때는 눈물을 닦아 주니까.
 
그러면 나는 나의 주위 사람들과 지금 어떤 만남을 가지고 있는 걸까? 부부의 만남은 전생의 원수였던 사람들이 이승에서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는 것이라고 돌아가신 친정 어머니가 나한테 자주 말씀하셨다. 처음에는 어머니의 말씀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했지만 결혼생활 20년을 훌쩍 넘긴 이 시점에서 되돌아보면 인정하긴 싫지만 많은 부분이 공감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부모와 자식간의 만남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여겨진다. ‘어쩌다 내가 이런 집안에 태어나서 이 고생인가?’, ‘내가 이씨 성을 가진 누구와 같은 부잣집에 태어났더라면’ 내 부모는 금수저로 키우지 못할 거면 나를 도대체 왜 낳았을까? 성장과정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해보곤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와 자식 간의 만남은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만남이 아닐까?
 
어쩌면 우리의 삶은 태어나면서부터 만남의 연속인 것 같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서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일상을 보내고, 함께 의미 있는 만남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사람이 사람다운 것은 서로 의미있는 만남을 통해서 아름다운 관계가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에서는 옷깃 한 번 스치려 해도 전생에 3000번의 인연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네 만남 중에 어떤 만남은 우리를 힘들게 하는 반면, 어떤 만남은 행복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혹은 우리의 가치관을 바꾸어 놓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직업을 가지게 되면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이 나의 인생에 존재한다. 전에는 내 주위에 병원에 근무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학교생활과 관계있는 다양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과의 만남이 있다. 그 만남 중에 학생들과의 만남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선생은 있어도 스승이 없다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스승과 제자의 만남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인생에서 평생 잊지 못할 스승을 만난 경험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진정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제자가 스승으로부터 지식을 배우는 것보다 아름다운 것은 배운 내용을 실천하는 것이며, 제자가 스승의 삶을 배워 새로운 인생의 길로 나아간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나의 바람이 있다면 스승의 가르침과 삶을 평생 인생의 길라잡이로 삼는 제자를 많이 두는 것이다.
 
사제 간의 만남에서 출발하여 학문적으로 벗이 되거나 한편으로는 스승이 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의 관계가 그러하다. 신기하게도 이들은 많은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스승과 제자로서 관계를 맺는다. 퇴계와 고봉이 처음 만난 것은 고봉이 과거 시험을 위해 서울에 왔을 때라고 하는데,당시 고봉의 나이는 서른두살, 퇴계의 나이는 쉰여덟 살이었다고 한다. 퇴계는 고봉이 비록 나이가 어리지만 총명한 학자로 신뢰하고, 고봉 역시 존경하는 선배 학자로, 때로는 존경하는 스승으로 학술 논쟁을 이어 갔다고 한다. 나와 내 제자들과의 만남이 부디 고등어와 같은 만남이 아니길 빌 뿐, 내 팔자에 언감생심 무슨 손수건 같은 만남을 꿈꿀 수 있을까.
참으로 오랜만에 두 딸과 함께 아침미사에 다녀왔다. 솔직히 조금은 찬공기가 거슬렸지만 아침햇살이 너무 고와서 용서가 되었고, 미사 후 딸들이랑 동네 작은 카페에서 향기 그윽한 진한 초콜릿을 마시기로 약속하였는데, 미사 내내 나의 머릿속을 온통 차지하고 있었던 것은 단지 밀 향기 한껏 품은 빵이랑 초콜릿뿐. 그런데 신부님과 신자와의 만남은 어떤 의미의 만남일까?
 
허영희 대전보건대 간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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