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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부자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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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1.15 15:34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혜숙 수필가

며칠 전, 아침에 일어나더니 남편은 불쑥 그 애를 결혼시켜야겠다고 한다. 그러더니 우리나라로 일하러 온 베트남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마침 그 친구의 여동생이 있다고 한다. 전화 통화로는 한국말이 서툴러 대화가 되지 않자 당장 대천으로 가보자고 한다. 대천에서 일하는 그 친구의 여동생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고 돌아왔다.

베트남 아가씨 사진을 보더니 그 애도 좋다고 해서 일을 진행시키려고 했다. 베트남 여인들은 조혼을 하는데 나이가 많아서 이상했지만 워낙 성실하게 일하는 친구라 믿었다. 집에 돌아와 있는데 베트남 사람에게서 문자가 왔다. 여동생이 이혼한 지 3년 됐다면서 죄송하단다.

다시 전화해서 사실대로 그 애에게 말했더니 이혼한 것은 이해하겠는데 자식이 있다면 꺼려진다고 했다. 30이다 된 여인이 결혼했으면 자식이 없을 리가 없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물어보니 자식이 하나 있는데 이혼한 남편이 키운다고 했다. 마음만 앞섰는지 허사가 되었다.

그 애는 올해 39살이다. 아버지는 어부였는데 바다에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고 모친은 떠났다. 아기 때 홀로 되면서 고모와 살았다. 28년 전, 후원봉사를 시작하면서 처음 만난 애였다. 처음 본 그 애는 까무잡잡하고 또래보다 작았다.

후원하게 된 후부터 금전적인 것도 물론이거니와 사랑도 함께 주었다. 정이 그리운 아이는 자기에게 잘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좋았는지 방학이 되면 우리 집으로 와 지내다가 갔다.

고등학교 때까지 후원해 준 우리가 편했는지 졸업하고 나서 취직이 되지 않자 우리 집에서 빈둥거렸다. 데리고 있으면서 기술이라도 배우라고 친구네 공장에 취직을 시켜 일 년 정도 함께 지내다가 남편이 다른 곳으로 발령 나면서 헤어졌다.

입대하면서도 연락을 안 하더니 철이 들었는지 아니면 외로웠는지 다시 연락이 왔다. 몇 년 전 어느 날, 턱하니 차까지 몰고 왔다. 아직도 어리바리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차까지 몰고 나타나니 신기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어버이날 이곳으로 온다고 했는데 내가 사우나 가느라고 전화를 받지 못했다. 벌써 왔나하고 전화를 걸었더니 아들 만난다고 목욕가셨느냐고 한다. 이번에 가면 맛난 것 사 줄 테니 기다리란다. 부모의 정을 그리워하는 느낌을 받으니 가슴이 짠했다.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고 집으로 오면서 여러 곳으로 여행을 가자고 했었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춥기도 하지만 이런저런 작은 일들이 발목을 잡았다. 대충 일을 마무리하고 그 애가 있는 남쪽지방으로 가 보자고 했다. 어떻게 지내는지. 또 어떤 곳에서 일하는지. 사주(社主)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간다고 미리 연락했는데 걱정이 되는지 수시로 전화를 한다. 연말이라 납품이 밀려 조금 더 일해야 한다며 발을 동동 구른다. 알아서 갈 테니 걱정하지 말고 일하라고 했다. 퇴근 시간에 맞춰 일터 문을 열고 들어가서 이름을 부르니 기쁜 기색을 가득 담은 얼굴로 반긴다.

나에게는 아주 소중한 인연으로 만난 아들이 있다. 너를 만난 게 행복이라 하면 어머님 만난 것이 행운이라고 말하는 아들. 그런 아들에게 살갑게 구는 소리를 들은 그 애는 샘이 났는지 자기도 아들임을 자처했다. 그런 마음을 알기에 이번에 그 애의 직장까지 내려온 것이다. 언제나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는데 이 시간 이후부터 너에게 부모가 되겠다고 했다. 그 아이는 큰 절을 하는 걸로 자식이 되었다.

돌아오다가 운문사에 들르고 지인들과 만나느라 울산도 들렀다. 수시로 전화해서 어디쯤 갔느냐고 묻는다. 시간 날 때마다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 목소리가 명랑하다. 함께 시간을 더 갖고 싶지만 일을 하는 아이에게 방해가 될까 봐 돌아왔더니 전화를 하며 아쉬움을 달래는 것 같다.

시간 되면 우리에게 오겠다는 말에도 설레는 마음이 느껴진다. 부모가 생긴 것이 든든해서일까. 행복해서일까. 한층 높아진 목소리에 나도 사랑을 실어 화답한다.

딸 하나 밖에 없는 나에게 또 한명의 아들이 생겼다. 새해 벽두부터 아줌마 아저씨에서 엄마 아빠라 부르는 아들이 생겨 자식 부자가 되었다. 혈혈단신인 그 애가 힘들 때 기댈 수 있고 편히 쉴 수 있는 노거수가 되어야겠다.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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