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人인터뷰
[충청초대석] 정성욱 금성백조주택 회장“謙讓之德의 자세로 가장 낮은 곳에서 최선을”
김용배·윤주원 기자  |  dailycc@dailycc.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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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08  09면 |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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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성욱 금성백조주택 회장.

[충청신문=대전] 김용배ㆍ윤주원 기자 = 금성백조는 1981년 창립 이후 꾸준히 건설 한 길을 걸어오며 주택·건축·토목·부동산 개발·환경 등의 분야에서 품질을 바탕으로 최고의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2002년에는 '예미지'를 탄생시켜 공동주택 문화를 선도하고 끊임없는 고객의 ‘니즈(Needs)’와 트렌드에 맞춘 상품개발에 지속적으로 힘쓰고 있다. 그 결과 국토교통부 주최의 ‘전국 살기 좋은 아파트 대회’에서 중견기업 최초로 종합 대상을 수차례 받았고 ‘2014 한경주거문화대상 종합대상’과 ‘2015년 경기도 공동주택품질검수 우수시공상 표창’을 받으며 기업의 가치를 전국적으로 인정받았다. 정성욱 금성백조주택 회장에게 37년간 회사를 이끌어올 수 있었던 비결과 그동안의 소감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

 
"건설서비스에 대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새로운 기회와 혁신, 미래를 앞서나가는 윤리경영 실천해야"
 
▲ 창립 37년, 전국 유수의 건설업체로 성장했는데 왜 건설업이었나
5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혼자 4남매를 키우며 많은 고생을 하셨다.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가정형편이 어려워 바로 생업전선에 뛰어들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며 가구공장, 제조공장 등을 돌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던 중 17살에 건설업과 인연을 맺어 건설현장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고 어린 나이에 건설이란 분야를 잘 몰랐기에 목공사의 밑 일꾼으로 일을 시작해 주경야독으로 성실히 배웠다. 21살에 카투사에 입대해 선진시스템을 경험하던 중 11개월 15일 만에 독자라는 이유로 군 복무를 마치고 의가사제대를 했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일하던 중 주변 분들이 앞으로 건설업이 유망하다는 조언을 들었다. 산업화가 한창이던 1978년 유망사업 분야로 건설업을 택했고 군대 제대 후 10여 년간 현장 기사부터 소장까지 바쁘게 지내며 그동안 배운 기술을 토대로 창업의 꿈을 꾸었다. 건설업을 하고 싶었지만 1974년 이후부터는 건설업 신규면허를 내주지 않았고 건설회사 인수도 생각해보았지만 리스크가 컸기에 35살이 되던 1981년 건설업이 아닌 주택건설업체로 먼저 금성백조를 창업하게 됐다.
 
   
▲ 금성백조의 사회공헌사업의 하나인 예미지 사랑나눔 봉사단 모습
▲ 성장 비결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사회에 뛰어들어 돈벌이에 나섰다. 배워야 살아남는다는 일념으로 언제나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주경야독으로 하루 4시간 새우잠을 자며 일을 배우던 어릴 적 습관이 아직도 남아있어 열정을 다해 일한다. 회사가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임직원들의 부지런함과 패기가 원동력이라 생각한다. 또 항상 공부하고 연구하는 금성백조의 모습에 고객이 믿음과 신뢰를 보내준 것 같다. 임직원들의 노력과 한 땀, 한 땀 흘린 분석의 결과가 시장을 조금 앞서 나갈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해줬다.
 
▲ 금성백조는 이제 대표적인 ‘주택’브랜드가 됐다. ‘집을 짓는 것’에 대한 철학은
금성백조는 창립 후 양심과 신뢰라는 경영 이념으로 건설문화 발전을 위해 노력했으며 품질에 있어서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 자부심과 높은 기준으로 프리미엄 주거문화를 선도하기 위해 노력했다. 예미지의 슬로건은 삶이 아름다운 아파트이다. 드러나는 화려함보다 지낼수록 느껴지는 편안함을 짓는다. 현대인의 주거문화가 시대를 따라 변모함에 따라 아파트 역시 공동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고려했다. 주택은 입지선정부터 주택이라는 상품의 미래를 내다보아야 한다. 그래서 금성백조는 토지를 구매할 당시부터 100여 가지의 항목을 분석해 주택의 20년, 30년을 내다본다. 
 
▲ 경영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와 가장 보람 있었던 때는
1986년 대전 대덕구 비래동에 금성백조 아파트 분양 당시 100세대 중 3세대만이 분양돼 예상치 못한 실패에 너무 힘이 들었지만 여러 차례 아픈 경험을 통해 문제를 극복하면서 한 단계씩 발전할 수 있었고 2년 뒤 1988년 중촌동 금성백조아파트 182세대 분양 시 전국 최초로 147대 1이라는 경이적인 청약 경쟁률을 기록하며 대성공했다. 지옥과 천당을 오갔던 때이지만 중촌동 분양으로 인해 금성백조의 이름을 전국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열심히 노력한 것을 고객이 알아줄 때가 가장 값진 순간으로 기억된다.
 
▲ 여러 분야에서 사회공헌사업을 활발히 하고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특별한 의지가 있어서인가
금성백조는 1981년 2월 9일, 나를 포함한 네 명의 직원으로 시작했다. 건설 경기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사업에 부침이 있을지라도 항상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며 명절 때만큼은 직원들 모두가 복지단체를 찾아 작은 정성을 표하자고 다짐했다. 그 정신이 이어져 예미지 사랑나눔 봉사단이 됐다. 현재는 300여 명의 전 직원들이 예미지 사랑나눔 봉사단에 가입해 함께 활동하고 있다. 지금이야 사회공헌이라는 멋진 말로 불리지만 기업을 이끌면서 어려운 이웃을 돕고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라고 생각했다.
 
▲ 지역사회와 함께 금성백조가 성장했는데 앞으로 비전이나 계획은
국가, 사회, 고객, 그리고 저희 금성백조의 직·간접적인 이해관계자에게 최고의 가치를 제공하고 이를 기반으로 지속성장을 실현하는 것이 저희의 비전이다. 여기서 ‘가치’라 함은 단순히 외형적인 건축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건축을 이용하는 고객에게 건축물과 연관된 모든 삶이나 주거문화에의 최고 수준을 제공하고자 한다.
 
   
▲ 금성백조 본사 사옥.
▲ 오늘을 있게 한 인생 철학은
건설업을 하면서 갖게 된 나의 좌우명은 '가장 낮은 곳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자'이다.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겸양지덕(謙讓之德)' 하는 것, 모든 일에 신뢰가 바탕이 되는 것이 바로 나의 건설 철학이자 인생 철학이다. 
 
▲ 금성백조 회장으로서의 꿈과 개인적인 소망은
금성백조와 대전은 떼려야 뗄 수 없다. 사업을 다각화하고 지역을 다변화하면서도 대전은 금성백조의 모태가 되기 때문이다. 지역의 크고 작은 어려운 일에는 언제나 귀 기울이려고 노력한다. 사회공헌 활동에 적극 나서고 지역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대전에서 금성백조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들에 대한 작은 보답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대전의 자랑스러운 기업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 대전 대표 경제 인사 중 한 사람으로서 또 건설인으로서의 어깨가 무겁다. 대한건설협회 대전시회장, 건단연 회장으로서 후배 지역 건설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과 격려를 한다면
이제는 지역을 넘어 전 세계가 무한 경쟁 시대로 같은 업계 간의 경쟁을 넘어 남다른 기술, 새로운 사업방식, 다양한 대안들이 공존하며 업종을 넘어선 경쟁과 융복합이 보편화되고 있다. 이러한 산업적 상황에서 건설 역시 우선 수주하고 보자는 경영방식보다는 기술경쟁력 향상과 경영혁신이 선행되어야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우리 스스로의 높은 기준과 포괄적 건설서비스에 대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한층 더 수준 높은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새로운 기회와 혁신, 미래를 앞서나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일부 부도덕한 건설사들 때문에 업계 전체의 이미지가 훼손되는 안타까운 일도 이제는 없어져야 한다. 아울러 부정청탁방지법을 계기로 더 높은 윤리의식과 행동으로 윤리경영을 실천해 나가야 한다.
 
대담 = 김용배 취재2부 부국장
정리 = 윤주원 기자 <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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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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