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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초록나무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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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2.18 15:43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겸임교수
2월, 각급 학교에서 졸업식을 거행하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대학교, 대학원 졸업에 이르기까지 졸업식을 경험하면서 그 때의 풍경과 의미는 달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벼농사를 짓는 농부가 나락을 물에 담가 싹을 틔우고 모판에 뿌려 여린 모를 키워 논에 옮겨 심는다. 아마도 졸업을 하고 상급학교에 진학한다는 것은 너른 들판에 심겨지는 모와 같은 것이 아닌가. 모는 햇빛 공기 물 흙의 양분 모든 걸 자신을 위해 붙잡고 자란다. 
 
우리도 모처럼 자신을 사랑하며 주위의 모든 도움을 받고 자신을 성장 시킨다.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온몸을 관찰하고 성장시키며 청년 벼가 되어 마을에 돌아와 누렇게 익으면서 이삭을 달고 고개를 숙이는 벼와 같다. 잘 익은 벼처럼 졸업하는 학생들이 성장한 모습으로 사회의 주인공이 된다.
 
‘졸업’하면 설렘 속에 재학생이나 졸업생이 석별의 정을 떨칠 수 없어 흐느끼며 흘리던 눈물이 생각난다. 그 뿐인가. 교문 앞을 가득 채운 꽃들이 떠오른다. 헤어짐이 아프지만 다시 만남을 기약하기에 졸업은 시작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지 않은가.
 
나의 경우 아주 오래 전에 국민학교를 졸업했는데 그것은 늘 시들지 않는 추억 속에 있다. 집안 조카가 초등학교 졸업을 하게 되어 우연한 기회에 졸업식장을 가보게 되었다. 코흘리개 1학년 손수건을 달고 입학하여 6년 2100여일을 하루같이 다녔으니 초등학교 졸업은 메달로 친다면 금메달 그 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식이 시작되기 전에 축하공연이 있었다. 3학년 동생들이 파랑, 분홍 캡 모자를 쓰고 기악합주를 하는데 지휘도 어린이가 하고 멜로디언, 리코더, 트라이앵글, 큰북 작은 북 저마다 맡은 악기로 연주하는 모습은 귀엽고도 대견하다. 나도 어린 시절로 돌아가 선생님이 쳐주신 풍금 소리가 다시 들려오는 듯 뜻밖의 공연선물에 큰 박수를 보내주었다. 
 
개회가 선언되고 드디어 졸업증서 수여식 차례가 되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천사처럼 나타난 여자 교장선생님이 먼저 단상으로 나왔다. 졸업식장이 환하고 아이들이 예쁘다며 소곤소곤 시선을 모았다. 한복치마는 홍시감색으로 고와 맵시며 자태가 돋보인다.
 
초등학교의 전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6년 만에 졸업장을 받는 것은 수여하는 교장선생님이나 받는 학생에게 역사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모두 숨죽여 지켜보는데 어떻게 연습을 하였는지 사회자의 호명에 따라 한사람씩 의젓하게 단상으로 걸어 나온다. 빛나는 졸업장을 받고 뒤로 돌아서 지켜보는 재학생, 학부모, 내빈들에게 허리 굽혀 인사하는 졸업생의 태도와 표정은 당당하고 의젓함이 깃들어 보일 정도였다. 
 
학교장 식사(式辭)는 졸업생에게 주는 교장선생님의 마지막 덕담이자 가르침이다. 교장선생님이 나오자 사회자의 구령에 맞추어 ‘사랑합니다’라는 졸업생의 목소리가 우렁차다. 교장선생님은 학생들을 향해 ‘thinking tree’를 연호하며 다함께 외치자고 주문하였다. 주제는 ‘나무 생각’이었다
 
“나무는 모진 비바람을 맞고 눈보라를 이겨내며 모두 말라 생명이 다할 것 같은 한여름 가뭄도 어찌 이겨내는지 봄에는 어김없이 뾰족한 새싹을 내 놓습니다. 한시도 쉬지 않고 햇빛과 바람을 받아 안고 여름에는 큰 잎을 달아 새들과 매미의 집이 되어 줍니다. 그러더니 가을에는 빨강 노랑 열매를 매달아 사람에게 건네줍니다. 나무는 말없는 성자입니다. 나는 졸업생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치 나무처럼 살아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나무의 참음과 슬기 그리고 기다림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나무는 그 자리에서 한 발짝 움직일 수 없고 말할 수도 없지만 불평하기보다 사색의 자세로 주위와 어울립니다. 여러분은 말할 수도 걸어 다닐 수도 있는 위대한 한 그루 나무인 것입니다. 물론 이 자리에 함께 하신 선생님과 부모님들은 비바람을 막아주고 지혜의 그늘을 드리워주고 때로는 쓰러지는 나무를 붙잡고 밤을 지새워야 하는 날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졸업하는 학생들은 초록 새싹을 단 ‘봄의 나무’라 할 것입니다. 늘 서서 자야 하는 나무는 더 넓은 세상을 보려 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한 그루 나무가 되어 밤낮없이 교정을 지키겠습니다. 힘겨울 때 나무를 생각해 주십시오. 모진 비바람에서 슬기롭게 몸을 지켜내며 희망으로 초록 잎을 다십시오. 하늘은 어느 날 열매를 달아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졸업생 여러분! 지난 가을 서울·수원으로 수학여행을 다니면서 친구사이가 되었습니다. 나는 미래의 어느 날 여러분을 가르쳐 주신 두 분 담임 선생님과 함께 친구 만남의 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정말로 아이들과의 만남을 실현할 수 있을까. 미래의 그 어느 날 조카와 함께 모임 가는 날을 상상해보며 꿈을 꾸듯 가슴이 벅차오른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할 일 도 많아지므로 그 귀한 순간순간을 지나치는 경우도 허다한 것이 사실이다. 지켜보는 사람들까지 눈시울을 적시는 졸업식 노래 제창. 그 옛날 졸업식과 달리 노래를 부르면서 우는 아이들은 거의 볼 수 없었다. 애써 자녀를 가르친 선생님들에게 고마운 인사 한마디 건네지 않고 돌아서는 부모들도 보인다. 사람의 삶이란 고독을 넘어 정으로 이어져야 한다. 물질의 풍요 속에서 고운 정서를 다스리기에는 험난한 고개가 많기도 하다. 
 
오늘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이 이 땅에 영원히 푸른 나무로 살아가기를 기도하면서 또 하나의 만남을 위한 서로의 노력도 이어져야 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졸업생들이 큰 박수로 화답하며 장내는 숙연하였다. 정작 깨달음을 얻은 것은 나였다. 내가 마치 ‘초록나무’로 다시 태어난 듯 소망이 가슴을 뛰게 한 것이다. 사람은 저마다 한 그루 나무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오늘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저 학생들이 이 땅에 영원히 푸른 나무로 살아가기를 기도하였다. 교정 정원에 우아한 자태로 드리운 반송나무도 따듯한 배웅을 잊지 않았다. 고통을 인내처럼 행복은 달콤함을 주지만 시련은 자신을 강하게 지켜준다고 말이다.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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