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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의미는 변하지 않기를

강희진 음성예총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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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2.20 16:30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강희진 음성예총 부회장

이번 설 연휴의 최고의 화제는 단연 평창에서 열리고 있는 동계 올림픽이었다. 올림픽 덕분에 연휴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명절 때는 사촌에서 육촌까지 친척들과 만나는 일이 많다. 별일 없으면 다행한 일인데 꼭 한번 씩은 탈이 난다. 친척끼리 모이면 이야기의 단골 메뉴가 정치 이야기이고 의견이 맞지 않는 사람끼리 큰소리로 언쟁을 했던 기억이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여서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 처음에는 안부를 묻고 사는 이야기들을 하면서 분위기가 좋다. 그러다가 술이 한배씩 돌아가고 때마침 텔레비전 뉴스에서 새로운 소식이 전해지면 보수와 진보가 부딪쳐서 결국은 싫은 소리를 하고 분위기는 싸늘했던 일이 종종 있었다. 그랬는데 올 설에는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아 우리나라 선수들의 경기에 박수를 보내면서 온통 시선을 올림픽에 집중하다보니 별 일 없이 지나갔다. 올림픽이 남북의 화해무드만 기여 한 것이 아니라 우리 집에서도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 중에서 단연 인기가 좋은 경기는 컬링이었다. 맷돌처럼 생긴 돌을 얼음판위에서 던지는 경기는 낯설었다. 그런데 ‘헐’ ‘업’ ‘얍’ ‘워’ 선수들이 외치는 활기찬 외마디 소리가 흡인력이 있었다. 뜻이 있는 소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서로 독려하는 의미로 소리를 지르겠거니 했는데 컬링경기 해설을 듣고 그 뜻을 알게 되니 더 재미있었다.

‘헐’은 허리(hurry)의 줄임말이다. 더 빨리 스위핑(빗자루질)을 하라는 의미이며, ‘업’은 기다리라는 구호이며, “이제 빙판 닦지 마라”라는 말 대신에 ‘워’라는 구호를 보내며, ‘얍’은 서서히 스위핑을 시작하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니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경기하는 그들이 낯설었지만 활기찼고, 혼자가 아닌 함께 호흡을 맞추며 경기를 풀어가는 컬링경기에 채널을 고정하게 되었다.

컬링의 유래는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얼음으로 뒤덮인 호수나 강에서 돌을 미끄러뜨려 시합을 하던 놀이였단다. 컬링이란 이름은 스톤이 얼음 위를 미끄러져가는 모습을 보고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식구끼리 모여앉아 “컬링은 10엔드로 진행된대”, “상대팀보다 버튼에 더 가까운 곳에 스톤이 있어야 득점한대”, “두 팀 모두 하우스에 스톤을 하나도 넣지 못하면 그 엔드는 득점이 없대” 컬링의 규칙과 기구 등의 이름을 서로 알려주고 선수들의 경기에 일희일비 하며 즐거워했다.

컬링을 보면서 우리 세대 유년시절의 설을 떠올렸다. 설날 아침이면 동네 친척 어르신들을 찾아가 세배를 올렸다. 그리고 아버지와 그 전날 만들어 놓았던 연을 날리고 오빠와 얼음 위에서 팽이를 치며 추운 줄도 모르고 놀았었다. 할머니는 설을 잘 쇠야 한다고 하시며 초사흗날까지는 혼내는 일도 없어서 그야말로 까치까치 설날이었다. 나중에서야 왜 할머니가 잘못을 해도 혼내지 않았는지 짐작이 갔다. 설이라는 말의 의미는 ‘사린다’라는 옛말에서 유래 했다고 한다. 설날은 일 년을 시작하는 날이니 일 년 내내 별 탈 없이 지낼 수 있도록 삼가고 조심하라는 뜻이 들어있는 날이다. 그러니 할머니는 설날부터 혼내면 일 년 동안 우리가 기죽어 지내실까봐 초사흗날까지는 봐주셨던 것이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세세년년인부동(歲歲年年人不同)이란 구절이 떠올라 숙연해진다.

이번 설에도 자주 만나지 못했던 사촌과 육촌들을 만나고 오랜만에 안부를 물었다. 시대가 변했다고 말들은 했지만 여전히 고속도로는 정체였다. 그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았다는 증거다. 나 또한 가까운 사람들과는 조그마한 선물로 서로 마음을 주고받았다. 바쁘다고 종종걸음하면서도 정성껏 준비한 떡국 차례를 지내고 덕담을 나누었다. 설이 간소화와 간편함으로 조금씩 변해 가지만 그 본질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먼 훗날 우리 아이들이 내 나이가 되어도 지금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강희진 음성예총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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