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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봄날의 이별

허영희 대전보건대 간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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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3.11 18:35
  • 기자명 By. 충청신문

파란 하늘을 감추고 이틀째 내리는 3월의 빗방울은 봄비일까, 겨울비일까, 옛날부터 농촌 어르신들은 ‘봄비’는 매우 귀한 손님으로 ‘쌀비’라고 하였는데 봄에 비가 충분히 내리면 밭 작물의 생육이 좋아지고 모심기도 쉬워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아낙들의 인심이 좋아진다 해서 ‘봄비가 많이 오면 아낙들의 손이 커져 그해 함께 살림살이가 풍성해진다’는 속담도 있다. 봄은 행복한 계절이자 희망의 전령사이므로 가슴절절한 노래와 예쁜 시들을 많이 탄생시켰다.

“어룰없이 지는 꽃은 가는 봄인데/ 어룰없이 오는 비에 봄은 울어라./ 서럽다, 이 나의 가슴 속에는!/ 보라 높은 구름 나무의 푸릇한 가지. /그러나 해 늦으니 으스름인가. /애달피 고운 비는 그어 오지만/ 내 몸은 꽃자리에 주저 앉아 우노라.” 이 시는 봄의 예찬론자 김소월 님의 ‘봄비’이다.

개구리를 비롯한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봄의 시작을 알리는 경침이 바로 어제였는데, 이 좋은 봄날에 늘 나에게는 안타까운 이별 경험이 3-4월에만 존재하였으니, 돌이켜보면 내가 가장 사랑하였던 내어머니와 막둥이 남동생의 제사가 3월이고, 시어머님의 제사 또한 3월이니, 봄날은 나에게 있어 그저 이별의 전령사인 것 같다.

Game over, thank you for playing. 사실인즉 이말은 흔히 연인들 사이에서 이별할 때 쿨하게 쓰는 단어일 것이다. 이별이란 세상 모든 관계에서 새로운 사랑을 위한 첫걸음이라고 하는데 언젠가 연애경험이 일도 없는 가까운 후배가 나한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선배, 아름다운 이별은 그 사람이 나 때문에 너무 아파할 때 놓아주는 것이 아닐까?” 항상 가지는 감정인데 내 후배는 이론적으로는 연애수준이 박사급인데, 왜 실전경험은 제로 수준일까.

2주 전에 나에게 있어 또 다른 이별의 추억이 생겼다. 모 병원의 병원장 이·취임식이 있으니 시간이 허락되면 참석하였으면 좋겠다는 카톡이 도착하였는데, 갑자기 연락받고 참석한 자리라, 경황이 없었고 기분이 어수선하였다. 수도자로서 의료계의 수장으로서 어느 한점 흐트러짐 없이 완벽하셨던 분이시라 사실 많이 당황하였다. 내가 기억하는 병원장 신부님은 마음이 참으로 따뜻하고 지혜로운 분이었고,병원 식구들을 직종에 구분없이 드러나지 않게 두루 챙기시는 보편적인 분이었다. 늘 한결같이 겸손한 모습에 하느님은 참으로 복이 많으시지, 어쩜 저리 고우신 분을 선택하셨을까.

다른 한편으로는 내 자신을 반성하는 동기부여를 주셨던 분이시기도 하고 오늘날 이 어수선한 사회에 간만에 소통이 되는 반딧불 같은 분이셨는데 참으로 많이 섭섭하였다.

“떠나는 이 마음도/ 보내는 그 마음도 서로가 하고 싶은 말/ 다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꼭 한마디 /남기고 싶은 그 말은 여러분을 사랑했노라 /진정코 사랑했노라 /사랑의 기쁨도 이별의 슬픔도 /이제는 여러분과 나 /다시 이룰 수는 없지만 /그래도 꼭 한마디 /남기고 싶은 그 말은 /여러분을 사랑했노라 진정코 사랑했노라. 이날 병원장 신부님은 고별사를 당신의 마음을 담아 노래로써 대신하셨는데, 마지막 모습 또한 너무나도 아름답게 장식한 멋진 리더이셨다. 

눈 떠보니 이별이더라는 말이 있다. 이별은 예고 없이 어느 날 우리의 일상에 갑자기 찾아오며, 어떠한 아픔으로 존재한다. 현대의 사람들은 동물도 사람하고 똑같다는 생각으로 여러 부류의 애완동물들에게 사랑을 주고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나이 든 애완동물과 주인과의 이별 이야기를 다룬 일본작가 고이즈미 사요의 ‘안녕, 초지로’를 보면서 엄청 울었던 기억이 있는데 10년을 키운 고양이 초지로에 대한 라쿠 남매의 이별 이야기가 올해 11살이 된 우리 집 하늘이(말티즈)와 비슷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작년에 친한 교수님 한 분은13년이나 된 강아지를 화장하고 장례하는데 소소하게 비용을 부담하셨다고 하셨는데, 그때 든 생각은 왜 우리나라 법률은 개와 고양이 등 애완동물을 재물로 보는지….

우리들의 만남이 설레임이고 기쁨이고,조건이 없는 순수였듯이, 우리들의 이별도 감당할 수 있을 때, 더욱 사랑할 수 있을 때, 책임을 다할 수 있을 때 존재하는 것이 행복한 이별의 또 다른 조건이라 여겨진다.

허영희 대전보건대 간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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