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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 삶의 버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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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3.14 12:26
  • 기자명 By. 충청신문
세상을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 요즈음 우리 곁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사건 사고들을 보며 나의 존재에 대하여 돌이켜보면 사건사고의 주체들과 확연하게 구별되는 삶을 살았다고 자신하기엔 매우 부족함을 느낀다.

춘추전국시대의 순자는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기위해 상대방에게 해악을 끼치는데 아무런 죄의식 없이 권력을 행사하고 그 밑에서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비참한 백성들의 생활을 통감하여 이를 바로잡고자 성악설을 주장하며 인간의 도덕성 회복을 도모하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성악설의 본질은 사람의 본성은 악한 것이니 그것이 선하다고 하는 것은 거짓이라는 거다. 본래 인간의 본성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득을 따르기 때문에 분쟁이 생기고 양보란 없는 것이다. 요즈음 표현으로 사람은 자기보다 나은 사람들을 인정하고 칭찬하기에 인색하고 시기하고 질투를 일삼으며 그로 인하여 남을 해하고 상하게 하므로 질서를 부정하고 신뢰감이 없어지게 한다는 거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긍정적이지 못하고 자신을 신뢰하지 못함과 함께 상대방도 신뢰하지 못한다면 불안과 초조의 연속으로 이어져 올바른 삶을 살아가기란 상상조차 어려울 것이다. 순자는 “선함을 보면 마음을 가다듬고 반드시 스스로를 살펴보고 선하지 않은 것을 보면 반드시 스스로를 반성해야 한다, 선함이 자신에게 있으면 반드시 스스로 좋아하며 선하지 않은 것이 자신에게 있으면 걱정스러운 듯이 반드시 스스로를 싫어해야 한다. 그러므로 설사 누군가 나를 비난하더라도 올바른 사람은 나의 스승이고, 나를 옳게 여기며 올바른 사람은 나의 친구이고 나에게 아첨하는 자는 나를 해치는 자이다”라고 하였다. 혼란 속에서 자기 자신을 다스림에 있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새기고 가야할 좌우명이라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 생각된다.

필자는 요즈음 지인의 권유로 하나님의 가르침에 감동 받아 심취해가는 중인데 교회에 나갈때마다 신앙의 필요성에 대하여 절감하고 있다. 한 주간 흐트러진 나를 뒤돌아보며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지표를 얻게 된다. 담임목사의 말씀을 듣다 보면 한없이 나약한 나의 존재를 보게 되고 창조주의 말씀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꼭 필요한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창조주께서 우리에게 명시하신 삶의 기준, 더 나아가 빛과 소금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에 대하여 세속의 미물들인 우리는 순종하며 믿음을 키워 서로간에 소통하고 공감하며 동역하고 동행하는 삶은 인간의 삶에 있어 가장 으뜸가는 가치가 아닌가. 하면 믿음의 원천은 창조주 앞에 미물임을 인정하고 일시적인 삶에서 영원한 삶으로 가는 것일 것이며,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인정하고 따름에 있는 것일 거다. 아무리 어려운 시련일지라도 그를 극복하는 것은 영혼을 믿고 과감한 모험으로 실천해가야 한다는 것. 즉 “모험은 믿음이고 진정한 믿음은 행동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고, 실천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일
터다. 다시 말하면 무작정 모험이 아니라 이루어질 수 있다는 신뢰, 즉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모험은 반드시 그 귀결점에서는 은혜를 얻을 수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이렇듯 인간은 창조주의 피조물임을 인정하고 하나님과의 신뢰관계 회복으로 올바른 삶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절제된 생활과 깊은 묵상에 잠기는 이 시대의 선도자들을 보며 탐욕에 눈 멀고 혼탁해가는 세속에 빠지지 않기 위한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고 믿음으로 가득찬 신앙생활이 곧은 삶의 버팀목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기도와 묵상의 봉사가 어우러지면서 즉 소통하고 공감하고 동참하고 동역하며 동행하는 삶은 어지러운 세속의 생활 속에서도 자신을 알고 올바른 길을 걷게 함으로써 일시적인 삶에서 영원한 삶으로, 영생의 길로 가는 것으로 이는 우리 모두의 바람이 아니던가.

세상은 자연법칙과 음양조화로 이루어지듯이 우리의 삶은 세속적인 삶과 비세속적인 삶의 차이로 잡거나 놓아 버리는 둘 중의 하나다. 그렇지만 모두를 내려놓고 가뿐하게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떠나는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이니 감사하고 사랑하는 마음과 선하게 살려는 노력, 창조주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삶, 그것만이 지금 이 시대의 혼란으로부터 우리가 영생할 수 있는 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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