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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포럼] 나의 꿈 이야기 2

김상균 다트기획 대표·전 대전예술의전당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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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3.15 18:57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김상균 다트기획 대표·전 대전예술의전당 홍보팀장

"세상은 혼자가 아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며 준비하는 자에게는 꼭 기회가 온다. 고교 3학년 2학기에 접어드는 시기에 성악을 시작한 것은 참으로 무모한 짓이었다. 나의 목소리에 반한 친구의 권유로 시작한 성악공부는 그리 쉽지 않았다.

돈이 아쉬웠기에 칭찬 연발하며 음치 여학생을 레슨 하는 친구의 선생님을 보고 실망을 했던 나는 더 이상 그 학원을 갈 수가 없었다. 사실 가져다 드릴 돈도 없었고 말이다. 가족들이 눈치를 못 채도록 집에서는 공부만하는 척 했다.

오기를 발동시키며 황당한 꿈을 갖게 한 죄로, 성악도를 준비하던 그 친구를 첫 번째 스승으로 모셨고 이른 아침과 점심, 늦은 저녁의 음악실 피아노는 내 전유물이 되었다. 한 달쯤 흐른 후에 음악선생님이 우리를 교무실로 호출하셨다.

책상 위에 펼쳐진 각종 음악 콩쿠르 요강 팸플릿 중 하나를 선택해서 경연대회에 나가라고 하셨다. "선생님. 이 친구는 몰라도 이제 한 달도 안 된 제가 콩쿠르를 어떻게 나가요!" 순간, 이렇게 말한 나의 뒤통수를 툭 치시면서 "이놈아! 나가서 상 탈래? 목표를 세우고 공부를 해야 더 발전이 있는 거야! 그렇게 해야 너한테 좋아"

음악 하는 사람은 스쳐 지나가는 사람에게 음악 냄새를 느끼게 할 정도로 미쳐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선생님이셨다.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라는 그 교훈을 아직도 가슴에 담고 살고 있다.

분수에 맞지 않게 전국 콩쿠르를 선택하며 목표를 높게 세웠다. 물론 3년 여 동안 성악을 공부해 왔던 스승이자 친구의 눈높이에도 맞추어야하기도 했다. 친구는 대상, 나는 예선 통과가 목표였다. 그러나 경연일이 다가와도 돈이 없어 반주자를 구할 수가 없었다.

도둑 공부를 하고 있었으니 집에 손을 내밀지도 못할 형편. 다행히 친구를 반주하는 대학생 누나에게 도움을 청하여 경연을 치를 수 있었다.

천안에서 대전까지 오는 기차는 마치 비행기 같았다. 정말 기대하지 않았는데 절반 정도의 예선 통과자 명단에 내 이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주일 뒤 다시 빈대(?)가 되어 여의도에서 본선을 치르고 우리 둘은 모두 목표를 달성했다. 나는 탈락, 친구는 대상.

약 한 달 뒤에 대전에서 가장 권위가 있다는 한국음협 대전지회 주최 음악경연대회에 신청서를 냈다. 첫 번째 콩쿠르를 경험하며 나에게 맞는 곡을 골라야 대학을 갈 수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기에 초보자가 소화하기 어렵다고 하는 독일 가곡을 선택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습했다. 자면서도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반복에 반복을 했다.

그렇지만 경연대회 하루 전까지 반주자를 구하지 못했다. 지푸라기를 잡는다는 심정으로 교복을 입은 상태로 목원대학교를 찾아가 음악대학 건물 앞을 서성였다. 지나가던 밴드부 출신의 고교 1년 선배가 교복을 보고 다가와 서성거리는 이유를 캐묻고는 웃으며 연습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 선배의 여자 친구인 듯한 여대생을 소개받고 반주를 맞추기 시작했다. 초견인데다가 대학교 1학년생이 반주하기에 어려운 곡이어서 반주가 잘 맞질 않았지만 다행히 다음 날을 기약할 수 있었다.

경연대회 날. 나름 대전 최고 권위의 콩쿠르라서인지 대회장이었던 시내의 여자고등학교 강당에는 우리 학교의 음악선생님을 포함한 여러 학교의 음악선생님들과 꽤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순서가 되었지만 무대 경험이 없어서인지 긴장한 어린 피아니스트는 손가락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듯 했다. 노래하며 손으로 박자를 저어주었지만 절반도 못가 반주는 멈추었다.

난 노래를 멈추지 않았고 무반주로 나머지 부분을 부르고 무대를 내려왔다. 놀랍게도 3등상을 받았다. 음악선생님께서 대견하게 생각하셨는지 손목을 이끌고 심사위원장인 대학교수님께 인사를 시켰는데 그 교수님은 극찬을 해주셨다.

반주가 끊겨서 3등상 밖에 못줬다며 귀를 의심할 정도의 칭찬이었다. 그때 음악선생님은 내 귀를 비틀며 이러셨다. "귀에도 담아두지 마, 이놈아!" 우쭐해서 자만에 빠질 수 있는 제자를 걱정하는 음악선생님이 정말 좋았다.

그로부터 약 한 달쯤 뒤에 참가한 가톨릭 주최 충청남·북도 음악경연대회는 조금씩 모았던 용돈으로 반주자를 미리 구해서 준비를 했다. 또한 경연대회가 열리는 날 아침에는 용기를 내어서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저 오늘 콩쿠르 나가요..." 당황한 어머니는 "얌전히 공부만 하는 줄 알았는데 뒤에서 쓸 데 없는 짓 하고 있었다"며 한참을 야단치셨다. 그리고는 내가 집을 나설 때 돈 몇 푼을 손에 쥐어주셨다.

목표를 세워야 연습을 잘할 수 있다는 교훈을 되새기며 참가한 세 번째 콩쿠르 장소는 가톨릭문화회관이었다. 대기실에서 연습하는 참가자들 중 두 명의 여학생 실력이 두드러져 보였다. 내가 아무리 타고난 재능이 뛰어난다 해도 그녀들을 이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순서가 되었고 준비한 만큼 노래했다.

오전에 경연을 하고 시상식이 열리는 늦은 오후까지는 학교로 돌아가 수업을 받았고, 시상 결과가 궁금했던 내 스승이자 친구와 같이 시상식장으로 향했다. 다리가 불편했던 그 친구는 자전거를 지팡이 삼아 끌며 함께 걸었다. 사회자가 고등부 2등상 수상자를 호명할 때부터가 기억이 생생하다. 두 여학생 중 하나를 호명했고 이어 1등은 또 다른 한 여학생이었다.

역시 예상했던 결과였다. 친구의 위로를 받으며 시상식장을 빠져나가려 할 때, 전부문 최우수상을 한 명 더 뽑는다는 사회자의 멘트가 나왔고 이어서 내 이름이 불려졌다. 기분은 말로 형용할 수가 없었고 눈물이 나왔다.

어느새 친구는 절룩거리는 다리로 꽃다발을 사가지고 들어와 상장과 상품을 받고 단상을 내려오는 나의 가슴에 안겨주었다. 아마도 자신으로 인해 새로운 꿈을 갖게 된 친구에 대한 부담이 컷을 것이다.

김상균 다트기획 대표·전 대전예술의전당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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